티베트의 별 역사 인물 찾기 28
멜빈 골드스타인 외 지음, 이광일 옮김 / 실천문학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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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살아 움직이는 것. 바로 국가권력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부터 국가의 권력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실상 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권력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다. 물리적인 죽임이든 정신적인 죽임이든.

 

때문에 난 굳이 아나키스트라 말할 깜냥은 지니지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국가를 혐오한다. 특히 이는 이른 바 한민족이라 불리는 한반도에 태어나 살고 있는 이들에겐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 땅위에 역사라는 것이 발명된 이래 단 한 순간도 국가라는 것에게 온전한 지킴을 받지 못했다. 다만 국가가 필요할 때 동원되어 부역하고 죽었을 뿐이다.

 

최근 천안함 참사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절감한다. 국민의 숭고한 의무라 불리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끌려간 꽃다운 청춘들이 차가운 물 속 아래에서 끝없이 가라앉고 있는 동안 국가 권력은 그들을 구해내지 못했다. 온갖 호들갑을 떨며 설치는 언론들도 그들을 살리지 못했다. 그들을 구하려다 다른 생명들이 희생되었을 뿐이다.

 

국방력 세계 10위를 맴도는 대한민국은, 그러나 국가권력을 위해 복무하는 이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다만 소모품일 뿐이다. 미국의 모습이 겹쳐 떠오른다. 이미 싸늘히 식은 시신위에 성조기를 덮어주며 온갖 화려한 치장으로 영웅화한다. 국가를 위해, 정의를 위해 죽어갔다고 칭송한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 부모들에게 말한다. ‘댁의 아드님은 조국을 위해 장렬히 자신을 희생한 영웅이었다’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꼴들이 이제 대한민국에서도 당당히 벌어진다. 도대체 속절없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이들이 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가. 조국을 위해서인가. 그 조국은 도대체 무엇인가. 부모들의 피눈물을 토해내도록 만드는 그 조국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에게 조국은 다만 괴물일 뿐이었다. 자식들을 구해달라는 눈물어린 절규를 차디찬 총으로 가로막는 권력. 그들을 폭도처럼 취급하는 권력. 자신들의 실수를 가리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는 권력. 그랬다. 이것이 권력이란 괴물의 실체였다.

 

개인의 죽음을 영웅화하여 사회적 규율을 다잡는 것.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전형적인 특기다. 미국은 물론이다. 아니 이건 비단 제국주의뿐만 아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모두 다 이런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들에게 국민은, 혹은 인민은 소모품일 뿐이다. 그냥 그렇게 가는 거다.

 

생명은 너무나 소중하다. 말해 무엇 하랴.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안 된다. 우리는 동족끼리 피터지게 싸운 민족이고, 아직도 ‘북괴(!)’는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단다. 언제나 국가 예산 중 국방비는 최우선 되어야 하고, 국민들은 자신이 멋모르고 갖다 바친 돈들이 도대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도 모른다. 다만 국군 장병 아저씨, 용감한 대한민국 군대를 믿을 뿐이다. 아프간이든, 이라크든, 그 어디든 우리의 돈이 피로 변할 수 있음을 알려 하지 않는다. 군산복합기업체에 로비자금으로 들어가는지, 군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 우리의 돈이, 노력이 살인무기가 되어 우리를 겨눌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티베트의 역사를 다룬 책을 말하며 왜 이리 사족이 긴가. 책을 읽고 있을 때 연이어 터진 사건들이 절묘했다. 기가 막혔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내 동생들이, 친구들이, 선배들이 그렇게 바다 속에서 죽어가야 하는 영문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욕만, 더러운 권력에 대한 더러운 욕만 튀어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이를 악물며 티베트의 역사를 읽어내려갔다.

 

푼초 왕계, 그는 푼왕으로 불린다. 티베트족 사람들의 이름은 대부분 네 글자로 되어있고, 앞 글자를 따 두 글자로 불린다고 한다. 푼왕. 그는 어린 나이에 부조리한 티베트의 현실에 울분하고, 민족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애정으로 평등한 티베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칠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이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투쟁한다.

 

열일곱의 나이에 티베트 공산당을 창건하고, 구태의연한 귀족주의, 봉건체제에 안주해 있던 티베트를 바꾸기 위해 투신한다. 티베트 지배층으로부터는 사회주의자라고 낙인찍혀 추방당하고, 중국 국민당 정부에는 공산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추격을 당하던 그는 마오의 중국공산당이 국민당 군벌세력을 몰아내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중국공산당에 가입한다. 그것은 티베트 민족의 완전한 자치와 스스로의 번영을 위해서였다. 모든 티베트 민족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그의 꿈이었다.

 

중국공산당은 국민당 세력을 몰아낸 후 국민당 세력 하에 있던 티베트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는 결국 군사적인 지배냐 평화적 합의를 통한 편입이냐의 갈림길이었다. 이때 푼왕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 중국 최고 지도자들과 달라이 라마의 회담에 함께 해 중국과 티베트 간의 17개조 협정을 성사시키는 데 큰 역할을 맡게 된다.

 

푼왕이 꿈꾼 것은 사회주의 대가정이었다. 그는 이론과 실천적인 면에서 철저한 공산주의자였지만, 그만큼 순수했다. 때문에 중국과 티베트가,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고 함께 이상을 그려갈 수 있는 사회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최선을 다해 양 국가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당시 푼왕의 노력이 없었다면, 티베트가 중국과의 협의를 거부했다면 중국은 군사력으로 티베트를 점령했을 것이다. 결국 지금의 상황과 무엇이 다르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중국은 티베트를 자치구로 인정은 하지만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2009년에도 총칼로 티베트를 짓밟은 사례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푼왕은 믿었다. 진정한 사회주의, 모두가 평등한 세상. 소수이든 다수이든 사회주의라는 공통의 목적을 지닌 이들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그는 그 믿음을 가지고 평생을 투쟁한 것이다.

 

결국 그의 노력은 문화대혁명, 대약진운동 그리고 중화주의의 폭풍 아래 가라앉게 된다. 그는 그토록 헌신했던 공산주의 바로 그것에 의해 유배되어 18년이란 세월을 차디찬 독방에서 보내게 된다. 죄목이 무엇인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영문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그는 세상에서 지워진 것이다. 20세기 중국의 바스티유라 불리는 베이징 친청 제1교도소에서 보낸 18년의 세월. 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자신의 꿈을, 자신의 이상을 버리지 않았다.

 

민족 간의 진정한 자치와 평등. 이 화두를 위해 평생을 헌신했기에 그의 꿈은 현실화될 수 없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투옥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볼 수 있었던 신문 가장자리 여백을 잘라 밥풀로 붙이고 또 붙여서 백지를 만들고, 염료가 배어나온 옷 빤 물을 증발시켜 물감으로 사용해 그는 기록해 나갔다. 자신의 이상을, 자신의 신념을. 종이가 없기에 작게 써야 했다. 깨알같이 써내려간 것이 10만 자에 이르렀다. 감옥도 그의 영혼을, 그의 신념을 죽일 순 없었던 것이다

 

56살의 나이로 석방된 그는 지금도 싸우고 있다. 티베트를 비롯한 중국 내 모든 소수민족들이 진정한 자치와 평등을 얻기 위해 그는 지금도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여든여덟의 나이. 이미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아버지도, 부인도, 친구들도 세상을 떠났다. 광포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그는 모든 걸 잃었지만, 또한 소중한 것을 지키고 살아남았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다시 한 번 혁명을 생각해 본다. 푼왕의 삶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제 치하 중국에서 중국 공산당에 가입해 함께 독립운동, 반제국주의 운동을 펼쳤던 수많은 조선의 혁명가들을 떠올렸다. 《아리랑》의 김산을 떠올렸다. 민생단 사건으로 스러져간 수많은 사회주의자들,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중국을 도와 일제를 몰아내면 진정 평등하고 조화로운 세상이 열릴 줄 알았다. 그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쳐 투쟁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시대에, 신념에 배반당해 그렇게 죽어갔다.

 

모든 것이 완벽한 세상은, 물론 없다. 하지만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도 없다. 역사는 반복되고 또한 재해석된다. 새로운 역사는 새로운 과거일 뿐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미래를 찾는 이유이기도 한다. 눈의 나라 티베트에서 민족의 완전한 자치와 평등을 위해 싸웠던 혁명가. 자신의 신념이었던 공산주의에 의해 삶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혁명가. 이제 노구의 몸을 이끌고 다시금 티베트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혁명가.

 

이 땅. 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땅 위에, 혁명가는 어디에 있을까. 온갖 더러운 음모와 계략이 판치는 똥물 같은 세상 속에서 진정 민족을 위해 혹은 내 가족, 내 이웃을 위해 싸우고 있는 혁명가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 시대 김산은 어디에 있는가, 이 땅의 푼왕은 어디에 있는가. 거짓을 밥 먹듯 일삼으며 일신의 안위와 부귀를 위해 힘없는 이들을 착취하는, 살해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지금 이 땅을 지배한다고 믿는 세력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성과를 거두었다고 믿고 있다. 이 땅 곳곳을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이 땅 모든 민중들을 서로 이간질 시키며, 더러운 돈의 노예로 만들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언론을 장악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아이폰 촛불에도 연행을 일삼는 찌질이 짓거리를 하면서도 자신들은 겁먹지 않았다고 믿을 것이다. 전직 총리는 잡범 대하듯 오라 가라 하면서, 아무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차기 대선 전까지만 감옥에 집어넣으려 발악을 하면서도, 검은 돈을 받아먹고 배를 튕기던 공정택 교육감은 죄가 드러났음에도 조심조심 모신다. 서울을 디자인 도시로 만들며 아이들 밥값을 가로채고, 전 국토를 살린다면서 파헤친다. 북한을 이용해 여전히 국민들을 협박하고, 정작 국민들에겐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외친다. 다시 한 번 월드컵을 통해 뭉치자고 개소리한다.

 

그래, 바로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더욱 절실하고 치열하다. 살아가려는 이들을 죽이는 것. 그것은 국가도 뭐도 아니다. 때문에 지금의 현실은 정상이 아니다. 극도로 뒤틀린 아비규환일 뿐.

 

선거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스스로 살아있음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더러움 앞에 침을 뱉지 못하는 소인배는 되고 싶지 않다. 더러우면 더럽다고 외치는 것이 사람이다. 그게 진정한 사람이다.

 

나는 국민이 아닌 사람이고 싶다.

 

천안함 희생자들과 이들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바친 이들의 명복을 빈다.

 

대통령은 제발 그런 곳, 가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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