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단 한번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입으로는 혹은 글로는 구구절절 옳은 말씀만 하시는데, 정작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건 아닌데’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뭐 멀리 안 찾아봐도 당장 우리나라의 대통령님을 비롯해 그 주변에서 기생하고 있는 이들만 봐도 그렇지요. 말만 들으면 어찌나 다들 훌륭하신지…아주 그냥.


그래서 옛 선현들은 그렇게도 언행일치를 강조하셨나 봅니다. 또한 차라리 악인이어도 적어도 위선적이지는 않았던 이들을 흠모하는 이들마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쩔 때는 차라리 그들이 더 낫다는 생각까지 한다니까요. ‘나는 나쁜 놈이다’라고 인정하며 나쁜 짓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겉으로는 성인군자처럼 행세하며 실은 음흉한 짓거리를 서슴지 않는 것들보다는 차라리 낫다고. 물론 둘 다 그리 바람직한 것들은 아니겠지요.


저는 참 무지합니다. 거기에다 게으름까지 신의 경지에 올랐죠. 때문에 장안의 소식들에 항상 몇 박자 늦게 반응하고, 최신 유행은 솔직히 버겁습니다. 뭐 그런 것이 아쉬운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한창 주가를 올리며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나 엄청난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도 나중에라도 찬찬히 볼 수 있으니까요. 좀 늦는다고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에 대한 부분은 정말 난처합니다. 아울러 책을 쓴 이들을 뒤늦게 알게 될 때의 후회와 당혹감이란…. 더구나 그 분이 이제 세상에 안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제 게으름이 그렇게도 미울 수가 없습니다.


장영희 교수님 역시 그런 후회와 안타까움을 전해준 분입니다. 뭐 제가 아무리 무식해도 장 교수님의 존함은 알고 있었고, 그 분이 어떤 삶을 살아오신 분인가 정도는 알고 있었죠. 하지만 언젠가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그 분의 책을 접하지 못했습니다. 순전한 게으름 탓이었죠.


그러다 지인이 선물해 준 이 책을 뒤늦게야 읽게 되었습니다. 이미 장 교수님은 부친의 곁으로 떠나고 난 뒤였죠.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정말 아프게 와 닿은 문구였습니다.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고, 사람들을 사랑했고, 스스로를 사랑했던 분. 책을 읽고 난 뒤 제가 느낀 장 교수님의 모습입니다.


에세이는 자유로운 형식에 자유로운 내용을 담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자칫 가벼워질 수 있고, 때론 신변잡기에서 그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무리 유명인사라 해도 그들이 내놓는 에세이에서 실망을 느낄 때가 많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용의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솔직하게 썼나, 저는 그게 에세이의 중요한 미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보여 진다는 전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꾸미게 됩니다. 가공하게 되고, 덧붙이며, 보다 아름답게 치장하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글은 활력을 읽게 되고, 결국 좋은 글이 되지 못하죠.


장 교수님의 글을 읽고 절감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내보이는 용기, 듣기 좋은 사탕발림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전달한 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하는 모습들. 저는 거기에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장애우라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도 아름답지만, 모든 장애우들이 받고 있는 고통과 상처를 어루만지고, 잘못된 사회 관습에 비판을 아끼지 않는 모습. 저는 그 모습에서 장영희라는 분의 마음 속 깊이를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아직 그 분의 모든 책들을 읽지 못했습니다. 저에겐 이번이 그 분과의 첫 데이트입니다. 하지만 왠지 한 번으로 헤어질 사이는 아닐 듯 합니다. 두고두고 아껴가며 그 분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고, 글이라고 다 글이 아님을 아프게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을 만나면 행복합니다. 저 역시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함에 흔들립니다.


하지만 장영희 교수님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음에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 우리는 디자인이고 경쟁력이고 다 필요 없이 이것부터 어서 키워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안의 상처 때문에 타인을 눈물을 볼 수 없다면 그것보다 더 큰 장애는 없을 테니까요.


책에 여러 가지 이야기 중 어처구니없는 일을 목격한 교수님이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대목이 두 번 정도 나옵니다. 그 자리에서 잘못을 지적하고 혼쭐을 내주지도 않고, 훈계를 늘어놓지도 않고, 그냥 자리를 피합니다.


그 모습에 가슴이 아련했습니다. 눈물이 맺힐 뻔 했습니다. 교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애틋하고도 여린 마음이 보입니다. 차마 지켜볼 수도 직접 나가 항의하거나 화를 낼 수도 없었던 교수님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저는 조금이나마 짐작이 갑니다. 저 역시 그런 경험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강하려 했지만, 누구보다 여렸던 분. 아름다운 글로 오래도록 우리를 지켜 주리라 믿습니다. 교수님의 바람처럼 이 땅의 모든 장애우들, 세계의 모든 장애우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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