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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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때, 반대로 엉뚱한 사람에게 별안간 위로의 말을 듣고 싶을 때…. 그럴 때가 있다. 나름 타인을 이해하고 또한 상처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살지만, 번번이 실패할 때가 많고, 거꾸로 상대방은 생각도 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고 싶어 서성거릴 때가 있다.



감동을 준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다. 무뚝뚝한 사람들, 인정머리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감동에 겨워 눈물 흘리는 모습은 얼마나 놀라운가. 아름다운 음악으로, 글로, 그림으로, 그리고 자신의 모습 그 자체만으로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녕 아름답고도 고마운 일이다.



어릴 적, 암만 생각해봐도 도통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모르던 나는 엉뚱하게도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따뜻한 이야기, 때론 즐거운 이야기를 많이 해 사람들을 기쁘게 해야 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어느 순간 겁 없게도 글을 통해 타인에게 울림을 주리라 결심한 것이다. 물론 음악에 푹 빠지기 전에 일이다.



주제 넘는 일이었다. 될 법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꿈은 오래된 책장 속에 숨겨진 보물처럼 내 마음에 남아있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글만 쓰고, 그 마저도 온전히 제대로 쓰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나에겐 영원한 꿈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느낀 것은 위로였다. 슬픔에 겨워 더 이상 갈 곳을 몰라 하는 이들을 조용히 안아주는 위로. 그 대상이 누구이든, 얼마나 가까운 사이든 상관이 없다. 다만 상처받고 눈물 흘리는 이들을 감싸 안는 위로가 느껴졌다. 그리고 글을 통해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는 저자를 바라보게 됐다.



“나는 세상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왠지 지고 싶지는 않아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책에 담겨있는 단편들은 모두 상실과 상처, 고독과 방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끝이 있으리라 믿고 걸어온 길이지만, 결국 그 끝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난처함, 그리고 슬픔. 하지만 저자는 그 슬픔과 난처함을 구차하지 않게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비록 너무 벅차고 거대해 차마 다가갈 수 없는 고통이라 하더라도, 그 길을 다시 걸어가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똑같다. 하지만 그의 걸음걸이는 남루하지 않다.



황폐해진 지금의 삶, 더 이상 위로받지 못하는 이들. 어딘가 바쁘게 걸어가지만 그 어딘가를 찾지 못해 이리 저리 휩쓸리는 이들. 누구 앞에 엎드려 울어야 하는지, 그 누군가는 정작 어디에 있는지, 그 누군가는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저자는 비록 내일을 볼 수 없다 하더라도 지금 간직하고 있는 상처를 온전히 내보인다. 만남이 없으면 이별도 없는 것처럼, 상처와의 조우는 결국 극복으로 연결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처연한 슬픔을 터뜨리지 않고, 가만히 쓰다듬는 저자의 위로가 울림으로 다가온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혹은 상실 후의 슬픔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저자의 작품 역시 언뜻 그 중 하나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책을 읽으며 안심했다. 불편한 삶의 조각들이 마냥 그대로 떠내려가지 않고, 누군가 바라보고 있으며 누군가 소중히 감싸 안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삶은 그렇게 내버려지지 않았다.



젊은 작가이기에 앞으로 더 많은, 하지만 잠잠히 소설을 써내려 가리라 믿는다. 그러는 와중에 내 허전함과 난처함도 어느 새 다독거려질 것이다. 주저함 없이 글을 읽어 내려갔고, 작은 한숨이 결코 허망하지 않았다. 덕분에 조금은 더 용기도 얻었다.



누구나 주머니 속에 위안을 넣고 산다. 문득 문득 참 난감하고 어려울 때 주머니속의 그것을 살며시 쥐게 된다. 아직은 내가 알고 있는 그 무엇이 있음을 느끼고, 그것이 무엇이든 잃지 않고 있음에 안도한다. “심장과 닮은”아프리카든, 색 바랜 단추든, 오래된 꿈이든. 든든함에 감사한다.  

 

참 어려운 부탁이겠지만, 저자의 위안과 수줍은 용기. 꾸준히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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