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이승환 옮김 / 김영사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주위에서 나를 어느 정도 관찰한 이들은 나의 경제관념 혹은 경제 관련 지식이 턱없이 미천하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한다. 그렇게 경제에 대한 지식 없이 대체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 것이냐고 묻기도 한다. 뭐, 억울하지만 반박의 여지가 없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경제학원론 같은 수업을 들은 바 없고, 따로 경제학을 공부한 기억도 없다. 그렇다고 재테크나 ‘몇 년 안에 얼마 벌기’ 따위의 책들을 읽은 것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무슨 이유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주식에 대한 길잡이 책을 한 권 구입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행방이 묘연하다. 2페이지나 읽었을라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장기간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스테디셀러다.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1994년 당시 경제학 서적으로는 이례적으로 30만 부라는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지금도 경제 서적 분야에서 이루기 어려운 수치다.


이렇게 책이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저자의 뛰어난 통찰력과 함께 어려운 경제 문제를 매우 재미있게 풀어놓은 입담 덕분이다. 경제학이라면 일단 겁부터 먹고 보는 내가 재미있게 읽었으니 가히 그 재미는 장담할 만하다. 저자가 하버드 대학 ‘최우수 강의상’을 받았다던데,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읽는 내내 즐거웠고, 유익했다.


이른 바 ‘우울한 과학’이라 불리는 경제학. 우리는 경제학자들에게 때론 야멸차게 굴고, 때론 신처럼 숭배한다. 하지만 경제학자가 속 시원한 정답을 제시하는 경우는 언제나 매우 드물다. 과거 수많은 경제학의 별들이 미래를 예측했지만, 100% 들어맞는 경우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경제학은 난해하고 때론 무정한 학문인 듯하다.


저자는 《국부론》의 애덤 스미스로 시작해 맬서스, 마셜, 루커스, 케인스, 카너먼 등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삶과 그들이 주장했던 이론들을 마치 옛 이야기를 들려주듯, 흥미롭고 쉽게 풀어가고 있다. 경제학의 진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교과서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의미심장한 문장들이 적지 않았다. 저자가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유머와 재치를 섞어 책을 썼지만, 중요한 주제들은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독자들에게 안겨준다. 아울러 300년 경제학의 역사를 통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골치 아픈 경제적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도 남겨주고 있다.


경제학은 자원의 희소성과 그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에 관한 것이다. 무한정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면 애시 당초 경제학은 그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가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으로 비쳐지기도 하는데, 경제학 원리에 충실한 이들에게 ‘없는 자들을 위한 배려’‘연대와 복지’등의 개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제학자들이 모두 악마라고 할 수는 없다. 그들은 모두 최소한의 희생 혹은 소비, 투자 등으로 최대한의, 적어도 가장 효율적인 성과를 얻어내려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여타 학문과 마찬가지로 경제학 역시 정치적 의도와 개인적 성향에 따른 변수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원칙적으로 경제학은 ‘우울하지만 필요한’과학인 것이다.


그야말로 경제, 경제관념, 경제학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던 내가 이 책에 대해 무어라 평가할 수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딱딱하고 어렵고, 때론 눈물 나게 냉정하고 야속한 세상사에서 경제학이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와 역할, 지금껏 시대를 풍미하며 ‘세상의 효율화’와 ‘풍요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해 온 많은 이들의 고민을 쉽고도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내가 경제학의 기본적인 지식을 갖춘 멋진 경제인이 되었다거나, 재테크와 국내외 경제 흐름 등에 새로운 눈이 뜨였다는 것은 아니다.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책이 원하는 것도 그것은 아닐 터다.


최근 책의 세 번째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내가 읽은 것은 초판이니 그 사이 또 얼마나 많은 변화들이 있었을까. 미국 경제를 그야말로 초토화 시킨 서브모기지 사태나 중국의 부상에 따른 세계 경제 구도의 변화, 에너지 수요 증대, 지구 온난화, 노령화, 이주노동자 문제 까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도 유효하게 살펴볼 수 있는 개정판이라 하니 다시 한 번 읽어볼 요량이다.


그 흔한 그래프나 통계 수치 하나 없이 명쾌하게 경제학의 역사와 이론들을 소개하는 저자의 탁월한 통찰력과 명석함은 역시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한 현실인 경제 이해에 대한 유쾌한 첫 인사가 될 것이다.


“경제학자 및 정치철학자의 아이디어와 힘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다. 세계는 그 아이디어들이 움직여 나간다……선용되는 악용되든 궁극적으로 위험한 것은 아이디어지 사리(私利)가 아니다.”


-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일반이론」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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