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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다케나카 치하루 지음, 노재명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전 세계 난민과 이재민 약 3900만 명(아이티 지진으로 더 늘었을 것), 무력분쟁 사망자의 90%이상이 일반 시민, 그 중 80%이상이 전쟁과 아무런 상관없는 여성과 어린이, 전 세계적으로 매설된 소형지뢰의 수 약 2억 개 이상, 매달 800명의 어린이가 지뢰를 밟아 죽거나 발목 등 신체 일부가 절단, 시에라리온의 경우 반군의 80%가 18세 미만 소년병, 2002년~2006년에만 전 세계 어린이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42개 국가 약 15억 명의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강도 높은 분쟁 상황에 휘말림》
아이티 지진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건물더미에 파묻힌 아이들, 끝없이 이어지는 시신들의 행렬. 절망과 비탄에 빠진 아이티 국민들을 바라보는 그 누구도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전 세계가 아이티를 돕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서고 있다. 우리 역시 의료진을 파견하고 천만 달러의 구호금을 내기로 했다. 당연하고도 잘 한 일이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군이 마치 점령군처럼(점령군 맞다) 아이티 대통령 궁을 접수하고, 이에 대해 프랑스는 심기가 영 불편해 보인다. 천재지변 앞에 선진국들의 모습이 이상하다. 왜 그럴까. 아이티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이티는 서구 열강이 발견(발견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엄연한 공동체였다.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게 아니라 원래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공동체였던 것과 같다. 뭔 얼어 죽을 신대륙. 지랄하고 있다 아주.)한 이래 에스파냐의 식민지였다. 에스파냐인들은 아이티에 원주민들을 학살과 질병으로 멸종시켰고, 그들의 노동력을 대신할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이주시켰다. 그들이 현 아이티인들의 조상이다.
이후 에스파냐에 이어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아이티는 당시 유럽에서 소비되는 커피, 설탕, 노예무역의 주 공급지가 되었다. 때문에 당시 서인도 제도 프랑스 식민지 가운데 가장 번창했다고 하지만, 그 번성은 오직 유럽인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기록엔 당시 아이티 흑인 노예들의 평균 수명이 21살에 불과했다고 전해진다. 21살!
한편 아이티의 흑인 노예들은 인간적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이는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이들이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독립을 꿈꾼 아이러니! 아이티는 결국 피의 대가로 1804년 세계 최초로 노예 해방 혁명을 성공했고,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독립 국가를 세울 수 있었다.
이는 훗날 중남미, 쿠바 혁명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아이티의 독립은 커다란 시련을 함께 가져왔다. 강대국들의 폭압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아이티에서 물러난 프랑스는 그러나, 해상 봉쇄를 통해 아이티를 고립시켰고, 자국 노예들에게 독립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우려로 미국 역시 무역 제재 조치를 취했다. 이제 막 태어난 신생 국가 아이티를 고사시키려는 속셈이었다.
결국 아이티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대가 역시 잔혹했다. 프랑스는 해상 봉쇄를 풀어주는 대가로 1억 5천만 프랑의 배상금을 요구했다. 지금 환율로 210억 달러의 금액이다. 상상해보라. 210억 달러.
신생 국가로서 돈이 없던 아이티는 결국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프랑스, 미국, 독일 등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돈을 빌려야 했다. 오늘날 아이티가 살인적인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티는 다시 옛 주인들의 돈에 묶인 노예가 되었던 것이다.
아이티가 배상금을 갚은 건 1947년이었다. 122년이 걸렸다. 그 와중에 미국은 1915년부터 1934년까지 아이티를 점령했다. 언제나 써먹는 더러운 레퍼토리지만 아이티의 내정이 불안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본 목적은 당시 확대되던 독일의 영향력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 후 아이티는 군사 독재, 무장 소요, 쿠데타, 외세의 개입, 서구 열강의 경제 재재로 이어지는 참혹함 속에서 살인적인 그리고 만성적인 빈곤과 고통의 악순환을 견뎌야만 했다. 그래놓고 세계 선진국들은 아이티를 세계 최빈국이라 비아냥거렸다!
그리고 이제 대지진. 지금 아이티의 모습이다.
책을 이야기하는 와중에 왜 아이티의 역사를 주절거릴까. 너무 역겹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하루에 중국인들 몇 백명이 사용하는 에너지를 물 쓰듯 써버리며 온갖 추잡한 짓거리는 다하고 돌아댕기는 스타들이 아이티를 돕자며 파티 열고 술 처먹는 모습이나, 아이티를 돕겠다며 군 병력을 파견해 미리 깃발 꽂고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이는 미국이나, 슬쩍 가서 돌 몇 개 나르고 뽀샵한 사진 우르르 찍어서 이미지 관리 하는 몇 몇 연예인들이나, 전쟁을 실시간으로 생중계해서 먹고 사는 CNN이 방송 도중 아이가 죽었다고 울먹거리는 꼬라지나.
너무 엿 같아서 그런다. 그들은 역사를 알까. 자신들의 선조랄 것도 없고, 아버지 세대, 할아버지 세대가 저지른 짓으로 아이티 아이들이 진흙으로 만든 쿠키를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말이다.
전쟁? 인류 역사 5000년 중 92%의 시간을 서로 살육하며 보낸 인류다. 여전히 지금도 지구 어디에선가는 죽이고 죽고 있다. 그 전쟁의 근본적 원인을 살펴보자는 말이다. 지금 “피스!! 신에 가호가 영원하기를!!”주절거리는 새끼들이 먼저 뼈를 깎고 반성부터 하잔 말이다. 그럼 전쟁의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현 상황에선 기대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우리는 베트남에 군대를 보냈다. 말할 것도 없이 지금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그 많은 베트남 신부들의 아버지 혹은 삼촌, 오빠들을 살육했다. 우리는 이라크에도 군대를 보냈다. 이라크에 살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은 태극기를 보며 환호보다는 저주를 퍼붓는다. 우리는 아프간에도 다시 군대를 보내려 한다. 그리고 원전이라는 빌어먹을 “국가적 성취” 때문에 아랍에미리트에도 군대를 보내야 할지 모른다.
이런 우리는 결코 전쟁에 대해 무관하지 않다. 60년 전에 같은 형제끼리 무참히 살육을 저질렀던 민족이다. 우린 평화를 논하기에 앞서 전쟁을 기억하고 참회하고 성찰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원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프랑스가, 영국이 감히 평화를 말하고 공동체를 말하려면, 무엇보다! 지금 당장 전쟁을 멈추고 성찰해야 한다.
탱크로 짓밟아버리고, 다 죽여 버리고, 그 다음에 평화를 논하겠다는 개수작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노벨상을 땡겨받은 오바마는 이라크, 아프간 그리고 전 세계 곳곳에 진치고 앉아있는 미군을 빼야 한다. 당연한 것 아닌가. 싫으면 토해내라. 얼마하지도 않는 메달을.
책은 전쟁이 왜 일어나며, 전쟁으로 얼마나 무고한 이들이 죽어나갔으며, 죽어나가고 있으며, 죽어나갈 것인지를 명쾌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일개 시민인, 하찮은 개인이 어떻게 전쟁을 막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답은 물론 하나뿐이다. 고통과의 연대다. 타인의 고통에 눈물 흘릴 수 있는 감성을 되찾는 길이다. 그게 뭔 도움이 되냐고, 엉엉 울어 제낀다고 세상이 바뀌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바뀐다.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에 전 국민이 울어, 미국은 빌어먹을 소파 협정을 바꾸려는 시늉이라도 했고, 이라크 파병을 요구할 때에도 조심조심했다. 별 것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별 것이 아니다. 절대 우리는 하찮지 않다.
전쟁마저 이벤트로, 돈벌이로 치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인간성을 지켜나가고 타인의 눈물에 관심을 갖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하지만 기억하라. 우리의 눈물은 타인의 관심과 애정 속에서 마를 수 있다. 그 반대도 물론이다. 우리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살고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고 있는 우리가 먼저 전쟁의 지독한 고리를 끊어버려야 한다.
때문에 책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