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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능성이다 - 기적의 트럼펫 소년 패트릭 헨리의 열정 행진곡
패트릭 헨리 휴스 외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어려운 환경, 혹은 선천적인 정신·육체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이들이 용기와 신념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빛나는 삶을 영위하는 감동의 스토리. 그동안 적잖은 이야기들이 있어왔다. 사지가 제대로 펴지지 않는 관절장애와 척추장애, 거기에다 무안구증을 안고 태어나 평생 앞을 볼 수 없는 패트릭 헨리의 삶은 때문에 조금은 식상할 수 있는 이야기다.
물론 그의 신체적 장애가 평범한 것이 아니고, 그의 삶 역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 그리고 가슴에 와 닿은 것은 그의 삶에 대한 긍정적 자세보다, 그의 열정과 의지보다, 오히려 그를 믿고 지켜주는 가족들이었다. 평범하지 않게 태어난 헨리를 최대한 평범하게 키우기 위해 노력한 가족들의 헌신. 그 헌신에 난 더 큰 울림을 받았다.
미국은 생각보다 복지가 잘 갖춰진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생각보다 선진국이 아니다. 물론 지난 시절 우리 머릿속을 가득 세뇌시켰던 “미국이 최고”라는 생각이 쉽사리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사실 그리 잘난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미국이라 해도, 아무리 비합리적이고 오만한 국가라 해도, 적어도 우리와 비교한다면 미국은 많은 부분 앞서 가고 있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보기엔 천박한 자본부의에 찌든 “무식한 양키”에 불과할 지라도 말이다.
장애우에 대한 복지 정책, 여성에 대한, 나아가 사회적으로 보다 관심과 애정,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대한 정책만을 놓고 봐도 그렇다. 우리는 그야말로 한심한 수준이고, 미국은 그나마 우리보단 낫다는 소리다.
예전에 장애를 가진 자녀를 버리거나 살해라는 끔찍한 일까지 저지른 부모의 이야기가 종종 뉴스를 장식하곤 했다. 내 기억으로는 부모 역시 자살을 시도했던 것으로 안다. 그런 뉴스들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부모를 욕하고 비난하고, 천륜을 저버린 극악무도한 이들로 매도한다.
물론 그들의 행동이 정당화될 순 없다. 하지만 그들이 왜 그러한 선택까지 하게 되었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들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장애를 가진 자녀를 키웠다면, 과연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쫓겼을까. 우리가 장애우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들을 위해 과연 어떤 노력들을 기울여왔는지 되돌아본다면 과연 그래도 비난만 할 수 있을까.
장애를 가진 학생이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려는데, 학교 측에서 “네가 우리 학교에 입학하려면 장애로 인해 겪는 어떤 불편도 감수하겠다. 이에 대해 항의나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고 했다. 다른 어떤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이야기다.
유럽이나 하다못해 미국에서라도 이런 요구를 하는 학교가 있다면, 과연 그 학교는 무사할 수 있을까. 참담한 이야기다.
패트릭 헨리의 삶은 이른 바 정상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이 보기엔 한 없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고통과 불편은 어쩌면 우리가 안고 사는 한심한 편견과 무관심,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는지 모른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장애우들이 느끼는 고통과 슬픔엔 딱 그만큼의 우리의 책임이 있다. 이 땅의 장애우들에게 패트릭 헨리는 단지 부러운 친구일 뿐이다.
패트릭 헨리는 책을 통해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긍정적인 사고, 두려움에 대한 의지, 용기와 투지. 모두 다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중요하고 또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먼저, 사랑을 해야 한다. 먼저 사랑이 필요하다. 그 사랑이 있어야만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사랑이 있어야만 주위를 돌아볼 수 있고, 이웃들을 바라볼 수 있다.
그는 당당히 자신이 가능성이라 말한다. 그 가능성을 먼저 우리가 구해야 한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버스 몇 개 만들고 마치 장애우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다했다는 양 거들먹거리는 이들이나,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장애를 보지 못한 채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모든 이들의 ‘인간답지 않은’심성을 버릴 수 있는 가능성. 그 가능성에 주목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곁들이로 힘겹게 살아가는 모든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용기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멋지게 살아가는 패트릭 헨리에 박수를 보내며, 이 땅의 모든 장애우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장애우들의 삶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한 것만으로도 이 책은 사명을 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