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이반.김종철 옮김 / 녹색평론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녹색평론》을 통해 국내에도 익히 알려진 저자의 책이다. 경제성장, 민주주의, 평화, 지속가능한 문명, 미국의 패권주의 등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은 대부분 매우 중요하면서도 당연시되어 온 개념들이다. 때문에 그의 주장이 낯설거나 조금은 거부감이 들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모든 것을 세뇌 받아 온 측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기에 특히 많이 들린 이야기가 ‘지속가능한 발전’이었다. 말 그대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할 게 없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기에 경제를 넣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니 적어도 난 거기부터 뭔가 막힌다고 느껴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루어왔던 경제성장 방식으로, 그 형태로 발전이 가능하다? 난 재앙을 떠올렸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 경제성장이 추구된다면, 그것이 지속가능하도록 만들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끔찍한 재앙이 일어날 것인가. 상상만 해도 어둡다.

고도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온 일본, 그리고 그러한 일본을 그대로 따라해 온 한국. 우리는 고도경제성장 시기를 밟아오며 엄청난 생산과 소비의 증대를 통해 엄청난 물량적 풍요와 낭비에 근거한 소비주의 문화를 만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인간다움은 사라지고, 존엄성은 훼손당했으며, 재앙과도 같은 생태적 붕괴를 가져왔다.

책을 옮긴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은 “우리는 경제성장을 통해서, 가난에서 벗어나고, 고용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문명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가정을 의심해보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가슴 쓰린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오직 경제가 성장할 수만 있다면, 솔직히 말해 돈이 된다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아왔다.

베트남 전쟁에 34만 명을 파병한 한국. 명분은 자유주의를 수호한다는 것이었지만, 기실 한국의 배를 찌우기 위함이었다. “한국군이 지나간 자리엔 풀도 자라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베트콩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던 주월 한국군. 우리는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같은 분단국가의 전쟁에 뛰어들어 살육을 자행했다. 
 

 

이라크에도 우리는 군대를 파견했다. 역시 자유주의 수호,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이었다. 하지만 석유, 폐허가 된 이라크 재건을 위한 경제 복구 동참이 주 목표였다. 미국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이뤄진 것이라 변명해도 구차할 뿐이다.

언론은, 말 좀 한다는 이들은 국민들의 물질주의,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곤 한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노예라고 욕한다. 하지만 정작 국민들을 그렇게 만들어온, 그 길로 밀다시피 끌어온 주체가 누구였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언론은 그야말로 파렴치하게도 모든 탓을 국민들에게 돌린다. 펜을 들되 정신으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풍요롭다는 단어는 분명 이 땅에서는 잘못 이해되고 있다. 물질적 측면, 물질생활의 풍족이 전부인양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다. OECD에 가입하고, G20에 들어가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양극화는 심화되고, 대학을 나와도 할 일 없이 빈둥거려야 하는 잉여인간들은 늘어간다. 그들을 잉여의 상태로 만들어버린 세력들은 오히려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충분히 경쟁할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선, 사회에선 노무현도, 이명박도 다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고, 돈으로 환산하는 사회에서 건강한 개혁, 건강한 사회 변화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엔, 경제적 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어쩌면 그 부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인간이라고,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점점 인간을 인간이 아닌 상품 생산기계나 소비기계로 전락시킨다. 그렇다고 예전 영국 아저씨들처럼 기계를 부숴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당장 구속감이다.

돈 많은 노예가 되어가는 우리. 점점 더 정신적 빈곤과 물질적 풍요를 맞바꾸고 있는 우리. 해답은 의외로 간단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 찌든 생각과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길들여진 우리는 쉽사리 늪을 빠져나올 수 없다.

저자는 지금의 경제성장, 경제성장을 바라보는 이들의 인식을 “타이타닉 현실주의”라고 말한다. 앞에 거대한 빙하가 있음에도 그대로 달려가고 있다. 그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이미 중독된 자본주의의 습성은 쉽사리 깨지지 않는다.

‘가난’과 ‘부유함’‘잘 사는 것’과 ‘못 사는 것’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 우리가 보기엔 한 없이 가난한 불행한 나라일 뿐인 라오스의 국민들은 그러나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미국, 일본 등 잘 산다고 떠드는 나라의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경제 11위인 한국에 사는 당신은 과연 세계에서 11번째로 행복한가?

길지 않은 분량에 충실한 자료와 객관성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은 한 번쯤 나의 인식과 습성을 돌아보게 만든다. 단 보름만 전기 공급이 멈추어도, 결국 농촌을 약탈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 나. 그 잘난 빌딩숲 사이에서 항상 갈 곳 몰라 서성이는 나.

반성하고 성찰하고 느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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