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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로 된 책들 - 장석주의 책읽기 1, 반양장본
장석주 지음 / 바움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시인이자 장서가로 잘 알려져 있는 저자의 책읽기 첫 번째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면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곤 한다. 한 자 한 자 한 페이지씩 정성을 기울여 읽었을 그의 책들을 몰래 훔쳐본다는 느낌이랄까. 온전한 그의 생각에 도달할 수는 없어도 덕분에 많은 책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감사한 책이다.
재작년이었나. 한 학생이 일 년에 무려 천 권이라는 책을 읽고, 그것을 책으로 낸 바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책을 슬쩍 살펴보고 씁쓸하게 웃는 기억이 있다. 읽은 책들도 그 깊이가 만만치 않은 책들이 많았고, 저자가 써내려간 평가랄까. 서평이랄까. 아무튼 영 볼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쉽지 않은 책들을 일 년이란 짧은 시간에 천 권이나 읽었다니. 과연 책 한 권 한 권을 곰곰이 제대로 읽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왜 꼭 일 년에 천 권이라는 기준이랄까. 목표를 정하고 쫓기듯 책을 읽어야만 했을까.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책은 그야말로 정성을 다해, 온 힘을 다해 읽어나가야 한다. 내 기준은 그렇다. 만화책을 우습게 보는 건 절대 아니지만, 만화책이라 할지라도 정독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때문에 천 권을 일 년에 읽는다는 것은 내 기준에서는 적어도 불가능이거나 책을 온전히 읽은 것이 아니다.
《강철로 된 책들》의 저자 역시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는다고 알려져 있다. 책 속에 소개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저자는 한 해에 책값으로 오백만 원 정도를 지출하고, 시집과 정기간행물을 제외하고 삼백여 종의 책을 한 해에 읽는다. 한 해에 대략 칠백 권에서 천 권 정도가 새로 그의 서가를 채운다고 한다. 어마어마하다. 나 같은 어설픈 독서가가 보기엔 경이로울 정도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책을 대충 읽지 않는 듯하다. 물론 모든 책을 같은 기준으로 읽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는 책에 대한 일정한 ‘예의’를 지키는 것 같다. 때문에 안심이 되고 믿음직스럽다. 그가 써내려간 서평들은 결코 쉽지 않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고, 허투루 쓴 글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진정한 독서가만이 가능한 모습이다.
책을 통해 다양한 책들을 접한다. 책 한 권을 읽으면 그 책과 더불어 읽고 싶은 책들이 반드시 생겨난다. 이 과정 또한 책 읽는 사람의 빼놓을 수 없는 기쁨 중 하나다. 《강철로 된 책들》처럼 책을 소개하는 책이면 그 수고랄까, 기쁨을 덜어주기도 한다. 저자는 책 한 권을 소개한 후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을 소개한다. 또 다른 책을 찾아나가는 기쁨을 빼앗은 것 같아 아쉽기도 하지만, 사실 편하기도 하다.
매일 매일 엄청난 수의 책이 태어난다. 그러다 채 알려지지도 못한 채 사라지는 ‘좋은 책’들도 얼마나 많을까. 홍보의 부족, 역으로 생각하면 일부 대형출판사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 홍보하는 책들에 묻혀 사라지는 책들. 하지만 눈이 밝은 독서가들은 반드시 그런 책을 찾아내고야 만다. 내 눈이 어서 밝아져 숨어있는 보물을 더 잘 찾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하지만 책을 읽고 싶지 않다. 책을 느끼고 싶다. 그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숨 쉬고 싶다. 여전히 짧은 생각과 일천한 지식, 턱없이 부족한 상식과 치우친 아집으로 책을 읽어나가는데 일방적이고, 또 편협하다. 솔직히 인정하는 내 지금의 모습이다.
하지만 저자와 같은 고수들이 친절히 소개하는 이런 책들을 통해, 또 내 스스로의 부단한 탐험과 노력을 통해 점차 눈이 깨어져 가리라 믿어본다. 희망은 가지고 살아야 하니까.
소중한 책들을 즐거운 문장으로 소개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저자가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밝혀도 하나도 밉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누누이 말하지만 저자 같은 보수주의자는 언제나 환영이다.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든다. 내 삶에 있어 적지 않은 기쁨과 감동을 전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편리하고 저렴한 쾌락. 난 책 읽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저자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