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2007년에 책이 나왔으니 어느 새 시간이 꽤 흘렀다. 그 사이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일단 ‘88만원 세대’라는 단어가 일종의 고유어가 되었고, 적어도 지금 10대, 20대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전보다는 그나마 많은 이들이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책은 현재 진행형이다. 책이 담고 있는 고민과 절망은 여전히 젊음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등록금 상환제를 정부에서 실시했지만, 3천만 원 빌려 9천만 원으로 갚아야 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니, 왠지 정부가 악덕 고리대금업자로 보인다. 대학생을 상대로 돈 놀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온갖 생색은 다 내면서 말이다.

저자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버린 이 책을 꽤 많은 이들이 읽었으리라 생각한다. 때문에 여기에 그 내용을 보탤 필요는 없어 보인다. 간단히 말해 기성세대들에게 제 몫을 모두 빼앗겨 버린 지금의 10대, 20대들이 과연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 책이다.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고작 4년이 흘렀을 뿐이다. 여전히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몫은커녕 뒤 세대의 몫까지 땡겨 쓰고 있으면서도 토해내지 않는다. 거기다 이들에 보다 나은 삶과 ‘꿈 꿀 수 있는’여지마저 신나게 없애고 있는 중이다. 그들에겐 그들 나름대로의 논리와 명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삶의 막다른 벽에서 신음하고 있는 세대들에겐 배부른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4년제 대학을 나와도 결국 대부분 비정규직이 되어야 하고, 평균 88만원의 돈으로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 이들에게 보다 큰 꿈을, 비전을, 야망을 요구하는 이들은 도둑이다. 아니 강탈자이다. 최소한의 판을 만들어주지 않고 일방적인 경쟁만을 강요하는 현 사회의 적나라한 몰염치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페어플레이를 요구하는 것은 코미디다. 어떤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결국 먼저 개미지옥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협동과 연대, 이웃과 타인에 대한 관심, 배려는 실종된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결국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을 밟고, 죽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협동은 카르텔로 변질되고, 배려는 일 년에 한 번 씩 적선하듯 던지는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면 된다. 사실 그것도 아깝다.

이 책의 씁쓸한 성공 이후 많은 관련 서적들이 출간되었고, 비판과 찬사가 교차했다.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판짜기를 주장하는 이들부터, 여전히 ‘개인’의 노력과 경쟁에 중요성을 강조하는 따위의 책들도 줄을 이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충분치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청년실업이 극에 달하고, 실업급여를 수령 받는 이들이 백만을 넘는 지금, 새로운 변화의 절박성을 인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기득권을 쥔 세력들의 인식은 확고하게 멈춰있는 현실. 과연 20대는 지금의 상황에서 토플 책을 던져 버리고 바리케이드를 칠 수 있을까. 짱돌을 쥘 힘이나마 남아있을까.

연대와 협동의 가치를 분쇄시켜버리는 것이 기득권이 목숨 걸고 해온 일이고, 지금도 목숨 걸고 하고 있는 일이다. 그들의 그런 노력 끝에 지금의 젊은이들은 힘겨운 각개전투를 진행 중이다. 옆에서 전우들이 픽픽 나자빠져 나가도 돌아볼 겨를 없이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힘을 모아라!’‘연대만이 살길이다’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그들에겐 한낱 개소리일 뿐이다. 판을 만들어주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당장 비정상적인 사회 구조를 뒤엎겠다는 생각이 충만해야 한다. 당장 없앨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불가능은 유감스럽지만 존재한다. 하지만 희망은 다른 문제다. 그것이 한낱 위로와 격려의 자위수단이 아닌, 한 발씩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도록 형태를 갖추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에 힘을 실어야 하고, 그런 형태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짱돌을 던지라고만 할 수는 없다. 대신 잡혀갈 건가? 음. 이건 좀 유치하다.

중요한 것은 판을 짜주고, 바리케이드가 어디에 있는지, 짱돌을 어떻게 쥐어야 하는지, 어느 순간 어디에 대고 던져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바보냐고? 그런 걸 일일이 가르쳐줘야 하냐고? 일단 닥치시라. 당신은 앞서 말한 것들의 정답을 알고 있는가? 정확히 인식하며 살고 있는가?

특정 대학의 특정 과, 특정 고교의 특정 지역 출신이 사회를 장악하고, 기득권을 쥐고 있으며, 대를 이어 부와 명예를 세습한다. 북한 욕할 것 하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야말로 몸뚱어리 하나로 버텨야 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체적 이야기다. 현실적 가능성이다. 그리고 포기할 수 없는 꿈. 정상적인, 상식적인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믿음이다.

그 믿음을 주는 작업은 아무리 서둘러도 이르지 않다. 되돌릴 수 없는 파국을 막기 위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아니, 움직여야 할 시점이다.

《88만원 세대》는 때문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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