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사진
이치카와 다쿠지 지음, 양윤옥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이치카와 다쿠지의 소설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고 하기엔 약간 부족한 점이 있다. 부러 찾아서 읽는 편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읽고, 또 영화를 몇 번이나 보며 눈물을 쏟곤 했다. 찌질이라 해도 할 말 없다. 정말 그의 작품들을 접할 때면 난 찌질이가 된다. 꺼이꺼이 울기도 했다. 완전 창피하다. 그래도 정말 할 수 없다.

흔해 빠진 것이 연애소설이고, 사랑이야기다. 하지만 왜 그것이 흔할 수밖에 없는지 생각해보면, 결국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고, 또 사랑받기 위해 살아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통속적인 사랑이야기라고 궁시렁 거리는 인간일수록 정말 가슴 쓰린 사랑의 기억이 있거나, 아님 정말 사랑이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치카와의 소설엔 특징이 있다. 일단 뚜렷한 악역이 없다. 주인공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모두 평범하고, 또한 착하다. 순수하다고 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다. 요즘처럼 흉악무도한 악역들이 난무하는 TV드라마나 영화, 소설들에 비해 그의 소설이 편안한 이유다.

물론 단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다분하기도 하다. 갈등을 일으키는 악역 없이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자칫 아무런 감동도, 감정의 동요도 불어오지 못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디에서나 악역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다.

때문이다. 이치카와의 소설이 여타 소설들에 비해 한층 빛을 발하는 이유가. 그의 소설엔 악한 캐릭터들이 문제가 아니다. 정말 가능할 것인가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순백의 사랑 이야기 속에, 또는 그 사랑의 가슴 아픈 맺음 속에 이미 독자들은 빠져든다. 때문에 굳이 악역이 등장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물론 실재 등장하지 않고, 언급만 되는 인물 중에는 악역이 있다. 예를 들어 여주인공 시즈루의 계모 정도? 하지만 큰 영향은 미치지 못한다. 이치카와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깔려있다. 그 신뢰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기에 더욱 애련하고 또한 아름답다.

특이한 피부병으로 인해 항상 야릇한 냄새를 풍기는 연고를 발라야 하는 마코토. 때문에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항상 거리를 둬야 하는 남자. 짝사랑은 그야말로 프로급이지만 아직 여자의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남자. 그리고 시즈루.

성장이 느려 아이처럼 보이고, 또 아이 취급을 받는, 하지만 너무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여자 시즈루. 이들이 만들어가는 어설프고 순수한 사랑은 읽는 이로 하여금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과 애틋함을 전해준다.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되는 비밀을 간직한 시즈루가, 사랑하는 마코토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은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과 먹먹함을 전해준다.

세상은 아름답지 않다. 물론 지당한 말이다. 정말 어지럽고 더럽고 슬프고 맥 빠지고 짜증나고 열 받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지극히 지당한 말이다. 세상엔 사랑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사랑해야 할 이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소중히 아끼고 지켜줘야 할 것들이 존재한다.

이미 지나간 후에 우리는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 아쉬움과 미안함, 그리고 후회가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되어 준다. 추억이 있기에 사람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또 살아갈 수 있다.

한 문장도 그냥 버리기 아까운 이치카와의 문체와 ‘이치카와’ 전문 번역가가 되어버린 역자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냐 라고 겁만 주는 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소설이다. 물론 세상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사랑은, 그리움은 그리고 바로 우리 사람들은 더더욱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책을 쥔 순간부터 너무나 예쁜, 그리고 가슴 아픈 사랑에 빠지게 해 준 소설. 새해 첫 책으로 손색이 없다.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가슴 벅찬 깨달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책이다.

유치하지만 눈물 나는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권한다. 난 유치한 게 너무 좋다.

「너를 만날 날을 기다리며 나는 하루하루 힘껏 노력 할꺼야. 그리고 또 편지할게. 그러니까 그때까지, 조금만, 안녕이야.

이 세상 누구보다 마코토를 좋아하는

시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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