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아워 웨이 On Our Way -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지음, 조원영 옮김 / 에쎄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루스벨트는 분명 미국 역사상 매우 뛰어난 대통령이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물론 경배하는 대상이고, 공화당마저 루스벨트의 업적에 대해선 대놓고 부인하지 못한다. 공개적으로 루스벨트를 비난하는 것은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 정도다.

책은 오바마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선물해 화제를 낳은 바 있다. 루스벨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그 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가던 대공황의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국정을 운영했는지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는 책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는 오바마가 이 책을 선물한 이유가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과 이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다는 녹색 뉴딜 정책의 유사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백악관 역시 비슷한 뉘앙스로 말했던 것 같다.

모르겠다. 오바마가 어떤 생각으로 책을 선물했는지는 사실 본인만이 알 터. 하지만 역시나 해몽은 좋았다. 정치라는 것이 항상 자기 편한 대로만 생각하는 이들의 행위 아닌가. 뭐 얼추 오바마가 그런 의도로 주었겠지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크게 틀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어쩌면 오바마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노하우 따위를 전수하려는 것이 아닌, 진정 국가를 운영하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 본인부터 생각해야 할 덕목이긴 하다.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 중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가 생각했을 바로 그 부분을 생각하며 책을 읽었을지는 알 수 없다. 솔직히 그 책을 제대로 안 읽었을 것이다에 만 원 건다. 그나마 성의가 있었다면 아래 시켜 요약본을 가져오라고 했을 것이다. 너무나 바쁘신 분이 책을 온전히 읽기는 힘들었을 것 아닌가.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백악관은 헛수고를 한 듯하다. 도덕적 리더십을 말하기엔 이명박 대통령도, 그 측근들도 이미 너무 많이 나갔기 때문이다. 해외 토픽감이 되고도 남을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사태가 벌어진 것은 이미 모두 알고 있다. 범법자에게 “평창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라는 해괴한 명분을 주며 사면시킨 이가 바로 이 대통령이다. 거기에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용산참사 유가족들에게 보상해 준다는 절묘한 타이밍. 뭔가 느껴지지 않나. 이건희를 사면시키기 위해 감히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이용한 것이다. 이 절묘하고도 파렴치한 작태를 벌이는 인간들에게 도덕적 리더십을 말하기엔 솔직히 너무 늦지 않았나.

루스벨트는 단순히 대규모 삽질공사를 통해 무너진 미국의 경제를 살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확고한 믿음이 먼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가난한 이들, 힘없는 이들부터 국가가 먼저 돕는다는 원칙이었다. 또한 철저한 법 집행과 도덕적 명분으로 전체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이는 4대강, 세종시 등으로 국론을 분열시킨 누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는 어느 한 산업의 발전을 위해 다른 산업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고, 정부의 행동이 옳지 못하다면 언제든지 국민들이 나서서 이를 바꿀 수 있음을 말했다. 국민의 뜻과 상이한 정책을 펼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우리의 정책 변화는 미국 시민의 태도의 변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 헌법의 입안자들을 인도했던 기본 원칙들을 충실하게 따랐다는 점이다. 아울러 미 국민 대다수의 전반적인 동의라는 형식을 밟았으며 마지막으로 만약 한순간이라도 그들이 우리가 폐기해버린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가고자 원할 경우 무기명 투표라는 단순한 방법을 통해 어느 때고 되돌릴 수 있다는 항구적인 약속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인의 “창조한 힘이 아닌 설득의 승리”라는 설파는 시공을 초월해서 옳은 지적이다.」

「저는 언제나 이 나라 국민들에게 정직하게 임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국민들로 하여금 지금의 성장을 또 다른 투기 열풍으로 되돌리는 어리석은 과정을 겪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기초한, 과잉생산과 높은 가격으로 거래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기대에 국민들이 현혹되는 것을 더 이상 원치 않습니다. 그러한 과정은 우리를 잘못된 번영으로 이끌거나, 또 다른 경제적 혼란으로 이끌지도 모릅니다.」

그는 무너진 경제를 살리려 애썼지만, 그렇다고 도덕적 정당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박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삶보다 오로지 이익만을 앞세우는 기업 경영자, 경쟁자와 직원들을 일터에서 내몰기 위해 부당한 음모를 꾸미는 경영자, 내부 정보를 동원해서 투기하는 경영자, 허위 정보로 대중을 속여 이들을 보는 경영자”들을 비난했다. 그는 “훌륭한 통치자는 인류를 위해 더 나은 무언가를 꾸준히 찾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루스벨트는 한반도에 사는 나의 입장에서는 마냥 경배할 수 있는 이는 아니다. 우리의 분단과 전쟁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연구와 독서가 요구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있다. 그는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국정을 수행한 썩 훌륭한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부인하기 어려운 점이다.

그의 위기 극복 사례는 경제적 위기에 처한 많은 국가 지도자들에게 많은 영감과 적절한 교훈을 준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는 경제 전문가도 대기업 CEO 출신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많은 이들의 소중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절충하여 위기를 이겨나갔다. 돈이 먼저가 아닌 미국 국민들을 우선순위에 두고 정책을 집행해 나갔다. 자신 스스로 도덕적 정당성과 명분을 단단히 한 채 국민들에게 희생을 요구했다. 동참을 호소했다.

이게 정말 다른 점이다.

원전을 수주했다고 호들갑이고, 선진국에 당당히 들어섰다고 신났다. 삼성은 정말 염치 없이도 김연아를 앞세워 정초부터 제로 제로 주절거린다. 이건희가 국민들에게, 이명박이 국민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가능성이 제로다. 이 상황에서 루스벨트의 말이 새삼 대단한 것이었다고 느낀다. 이런 마인드를 갖춘 이들이 정말 희박한 우리에겐 그렇다.

「저는 우리가 이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점을 부인하고 싶진 않습니다. 저는 타석에 설 때마다 매번 안타를 기록할 것이라 기대하진 않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다만 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팀 전체를 위해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다음 대선 때는 어떤 이를 뽑을까 고민하시는 분들.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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