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1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혹시 ‘야설’을 아시는가? ‘야동’이란 단어가 ‘야구 동영상’이 아님을 아는 분들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 야설은 ‘야한 소설’을 뜻한다.

야동과 마찬가지로 야설 역시 평범하지 않은 내용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 중 전형적인 것을 든다면? 바로 직장 상사 부인과의 스캔들이다. 어찌 보면 식상한 설정이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야설 전문가인 것 같아 민망하긴 하지만, 어린 시절 《Red Book》한 번 안 읽어본 남자와는 사랑과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아, 더 민망하다. 

아무튼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게 된다면 아마도 대부분은 “뭐야, 이 식상한 야설은!”이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소설은 단순한 야설이 아니다.

일단 작가를 보자. 옌롄커는 루쉰 문학상과 라오서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그저 그런’ 작가가 아니라는 말씀. 또한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아울러 제목이 주는 의미심장함도 주목해야 한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이는 마오쩌둥이 1944년 발표한 유명한 정치적 슬로건이다. 1944년, 혁명동지였던 중국공산당 전사 장쓰더가 목탄 탄광에서 갱도 붕괴로 사망하자 마오는 “장쓰더 동지는 인민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의 죽음은 태산보다 중요하다”며 인민을 위해 헌신할 것을 강조했다. 그 연설의 제목이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였다.

그 후 이 말은 혁명언어의 경전이 되었고 무소불위의 금언이 되었다. 혁명 정신의 상징이 된 것이다. 바로 이 혁명의 상징을 작가는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직장 상사와의 대책 없는 사랑에 마오의 위대한 어록을 접목시킨 것이다. 소설에서 이 말은 섹스를 위한 최음제 역할을 맡는다. 파격적인 변신이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은 2005년 중국의 어느 격월간 문예지에 발표되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분량이 삭제된 채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은 중앙선전부의 긴급 명령에 의해 3만 권에 달하는 책이 전량 회수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이른 바 5금(禁) 조치가 취해졌다. 5금은 출판,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벌하다. 무슨 반혁명적인 내용이 담겼기에 이리 가혹한 조치를 취했을까.

혁명은 가혹하다. 혁명은 거저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구속과 고통이 따른다. 그럼에도 혁명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마오라는 결코 범상치 않은 인물로 인해 중국의 모든 인민들은 혁명의 길로 나섰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중국의 역사가 말해주듯, 중국 혁명의 역사는 인민들의 피로 얼룩진 역사였다.

그 과정에서 인간 본연의 욕망은 억압될 수밖에 없었다. 홍위병의 광기는 어쩌면 억압되었던 중국 인민들의 뒤틀린 분출이었을지 모른다. 지금도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한 가정에서 한 자녀 이상을 낳지 못하게 하고 있다. 산하제한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국가다.

소설은 혁명 앞에서 억압당해온 인간의 본성,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마오의 위대한 어록을 섹스의 상징으로 만들어버리는 파격은 때문에 현 중국공산당 지도부를 당혹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아울러 아마도 이 책이 금서로 지정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 마오의 석고상을 실수로 부셔버린 주인공 우다왕과 사단장의 부인인 류롄이 이어 마오 선집, 글이 담긴 액자, 상징물 등을 모조리 부셔버리는 장면. 그야말로 압권이다. 김일성의 사진이나 선집을 북의 인민들이 파괴한다고 생각을 해보라. 상상이 가는가.

불륜의 두 연인은 자신의 사랑이 진실함을 증명하기 위해 마오의 모든 것을 부순다. 하지만 결국 그것 역시 불륜인 것은 사실이다. 영원할 순 없다. 젊은 남녀의 뜨겁고도 격정적인 사랑은 현실 앞에 무력하기만 하다. 저자의 파격적이고도 섬세한 성애의 묘사는 때문에 흥분과 자극보다는 씁쓸함을 전해준다. 그 어떤 사랑도, 열정도, 욕망도 혁명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시골에 있는 아내와 부모, 자식을 도시로 데려오기 위해 군 복무에 충실히 임하던 우다왕은 사단장의 전속 요리사로 차출되어 사단장의 관사에서 머물게 된다. 하지만 사단장은 오랜 시간 관사를 비우게 되고, 그의 젊은 아내 류롄은 우다왕에게 집요하게 접근하고, 요구한다. 마오의 위대한 말씀과 같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고. 류롄 역시 사랑을 갈구하고 보살핌이 간절했던 인민일 따름이다.

우다왕의 심리적 갈등과 류롄에 대한 욕정.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둘의 뜨거운 관계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하지만 그 끝은 비극이 아닌 씁쓸함이 먼저 느껴진다. 더 이상 언급하면 안 될 듯하다.

표지의 모습만 보고 행여 라도 《색계》를 떠올려 책을 집어든 이라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책은 색계에서처럼 유연한 신체를 가진 자들만이 도전할 수 있는 희한한 체위가 등장하지도 않고, 급박함이 덜하다. 하지만 곱씹어 읽을수록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수려한 문체와 섬세한 심리 묘사, 격정적인 섹스 장면은 분명 이 작품의 미덕이다.

중국은 알듯 하면서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나라다. 우리와 오랜 시간동안 애증의 역사를 공유해왔지만, 아직도 우리는 서로 어색하다. 그 어색함을 영영 내버려둘 일은 아니다. 혁명의 치열함 속에서 짧은 시간 동안 자본주의의 맹아로 변해버린 중국. 그리고 그러한 중국과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우리.

중국을 이해하는데, 중국의 혁명을 바라보는데 적잖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물론 재미도 쏠쏠하다. 야설의 추억을 기억하는 그대여. 그렇다고 몰래 숨어서 보진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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