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겐 철학이 있습니까?
박이문 지음 / 미다스북스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이라 하면 일단 어렵다고 생각한다. 난해하고 심오할뿐더러 형이상학적이며 현실과 동떨어진 저 멀리 있는 그 무엇. 엑스파일의 멀더는 항상 말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고. 어쩌면 많은 이들에게 철학이란 저 너머에 있는 외계 생명체와 같은 느낌을 줄 지도 모른다.

때문에 평생을 철학에 바친 노학자의 다정한 물음은 의미심장하면서도 따뜻하다. “나에겐 철학이 있는가, 나는 철학적 사유를 하고 있는가?”철학적 사유는 어린이와 같은 사유라고 말하는 저자는 투명한 진실을 강력하게 요청한다고 말한다. 투명한 진실이 곧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크게 실존적 선택과 사회적 규범으로 나누어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은 삶과 죽음, 윤리와 도덕, 고독과 사회, 공평과 부조리, 인권과 주권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주제가 아니지만, 동시에 어느 것 하나 우리 삶과 직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살면서 철학적 사유를 무의식중에 맹렬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이 방황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 때문일 것이다. 생존을 위한 사고, 생존을 위한 행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인간에겐 있다. 관성에 따라 살기도 하지만 무수히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선택의 기준은 때론 사회적 규범에 구속되기도 하지만, 온전히 자신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과연 그 어떠한 규범과 가치를 가지고 행동할까. 그 행동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아니 옳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가면 갈수록 어려워진다. 하지만 어느 종교로도 덮을 수 없는 실존적 고뇌와 고독은 결국 인간 스스로의 몫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결국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따름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말이다. 때문에 인간은 외롭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죽음이란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물론 님이 가신 길 따라 가겠습니다. 이런 건 아니었다. 살아남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반드시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대통령의 죽음은 나에겐 많은 충격이었고, 죽임이란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되풀이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다. 죽음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아직까지 이를 선택사항으로 바꾼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물론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고, 산다. 당장 내일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음에도 우리는 삶의 테두리에서 죽음을 애써 외면한다. 그렇다고 피할 수 없는 것임에도 말이다.

파스칼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쇠사슬에 묶여 자신의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이다.”라고.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형기가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고, 어느 날 집행이 이뤄질지 모르지만, 집행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죽어야 할까. 선문답의 연속일 뿐이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헌법에 명시된 것도 없고, 규율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종교의 가르침이 있고, 사회적 규범이 있다고? 미안하지만 그건 그거다. 결국 인간은 자기 맘대로 살아간다.

오늘 친구가 사고로 죽어도 나는 내일 아침이면 밥을 먹고 배설을 하며, 경제생활을 통해 돈을 번다. 그래야 내가 생존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부모님이든 그 누구든 다를 수 없다. 산자는 결국 살아간다. 뼈를 깎고 애간장이 녹는 듯한 고통을 겪는다 해도 결국 살 수밖에 없다. 아무도 내 삶을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죽음 역시 온전히 본인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원불멸의 법칙.

책을 읽어도 내 머릿속이 명쾌해지진 않는다. 저자가 아니라 그 어떤 철학자가 책을 쓰고 말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삶에 있어, 죽음에 있어 정답이란 것은 애초부터 없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생각할 것, 고민할 것들을 안겨주긴 하지만 단순명료한 객관식 해답은 도출되지 않는다.

『나는 자기기만적인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철저히 정직한 삶을 희구하고, 금방 죽더라도 정말 자신에게 정직한 인간인 자신을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 확인해보고 싶다. 아무리 말이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런 소망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책은 노 철학자가 오랜 시간동안 가슴에 담아왔던 여러 가지 철학적 단상들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책장을 넘길 필요는 없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당연한 고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삶에 대한, 그리고 죽음마저도 따뜻하게 주시하는 저자와 함께 편안한 마음으로 철학 여행을, 자신과의 만남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살짝 먼저 다녀온 나로서는 적극 추천하고 싶다. 만만치 않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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