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도시 - 21세기 차이나 신세대의 방황과 질주
한한 지음, 박명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21세기 중국, 살벌하다. 엄청난 경제성장과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 때문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모순들이 치열하게 부딪치고 있는 곳. 오늘 중국의 모습이다. 당장 세계 제일의 패권국가라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닌 국가. 사실 우린 참 커다란 국가들 사이에 끼여 있는 애매모호한 입장이기도 하다.

중국에서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작가군을 일컫는 ‘80후’ 작가의 대표주자라는 한한. 《포브스》지에 이름을 올릴 만큼 엄청난 부를 쌓은 젊은 벼락부자. 여배우와의 염문, 프로급의 카레이싱 실력. 그야말로 온갖 뉴스를 만들어내는 화려한 작가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왜 그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중국의 차세대 대표 작가라 불리는지 《연꽃도시》는 말해준다.

《호밀밭의 파수꾼》《노르웨이의 숲》거기에다 성석제의 입담과 오쿠다 히데오의 유머감각 까지.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것들이다. 멈출 줄 모르는 경제 성장 속에 방황하는 이 시대 젊은 중국의 고민을 느낄 수 있는 책은, 그러나 낄낄거리게 만드는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작가가 범상치 않음을 보여준다. 사실 심각한 이야기를 심각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일 아닌가. 일단 페이지 넘기기가 매우 수월하다는 점에서부터 작가는 먹고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보수 지식인인 기 소르망의 《중국이라는 거짓말》을 재미있게 읽은 바 있다. 물론 저자의 성향을 감안하고 읽었지만, 꽤 건질 내용들이 적지 않았다. 아직 서평은 올리지 못했다.

책은 중국의 갖가지 비합리적인 모습들을 고발한다. 아울러 민주화를 억압하는 공산당 중심의 사회 체제를 비판한다. 사실 지금의 중국공산당을 공산당이라 불러도 되는지 살짝 고민스럽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1당 독재 국가다.

이런 상황에서 한한과 같은 작가가 성공하고 그의 책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아이러니이자 시대적 추세다. 돈은 많지만 정작 자신들이 행복한지 자신할 수 없는 중국인들의 애매모호한 입장. 오직 돈으로만 설명되는 시대에 퇴색해 가는 혁명. 더구나 그 혁명조차 겪어보지 못한 젊은이들의 방황. 그들에겐 ‘랑콤’을 살 수 있는지, ‘벤츠’를 굴릴 수 있는지가 혁명보다, 인간보다 우선이 되어버렸다.

저자는 자신과 같은 젊은 세대들의 이기주의, 물질 숭배, 향락주의를 비판한다. 아울러 여전히 부패한 정부와 온갖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인민들을 고발한다. 돈을 위해 사기도 마다하지 않는 사회, 그러한 사기가 오히려 미덕이, 실력이 되어버린 시대를 개탄한다. 책에는 중국의 오늘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주인공이 다친 친구를 데리고 간 병원에서 의사의 대답은 압권이다.

“아무래도 심각해 보여. 입원과 수술 보증금을 먼저 내야 해.”

“얼마죠?”

“선불로 일천 위안이야.”

왕차오가 우리들에게 물었다.

“형들, 얼마 있어?”

내가 대답했다.

“집에 놓고 왔는데.”

젠수도 대답했다.

“나도 안 가져왔어.”

그러자 왕차오가 말했다.

“난 오십 위안이 단데.”

“오십 위안 가지고 어떻게 치료를 받겠다고 그래!”

왕차오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일단 먼저 좀 봐주세요.”

“돈이 부족하면 치료받기 어렵지. 며칠 전에 한 환자가 돈이 부족한데 수술을 해달라고 해서 수술을 하긴 했지. 그런데 가진 돈이 딱 여기까지라서 수술 부위를 꿰매지 못했어.”

내가 물었다.

“그럴 리가요. 꿰매지 않으면 큰일 나게요?”

의사가 당장 우리들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상처가 벌어져 있는 거지. 지금까지도 벌어져 있다고.”

“의사 선생님,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고 상처 입은 사람을 돕는 게 인지상정이죠.”

“시장경제의 원리를 따를 뿐이야.”

웃겨야 하는 부분인데. 사실 서글프다. 우리와 별 차이 없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공산주의는 만인에게 평등한 사상이다. 책에는 그렇게 나와 있다. 하지만 현실상 그런 공산주의는 존재한 적이 없다. 꿈일 뿐이고, 유토피아일 뿐이다. 중국 역시 철저히 시장경제의 원리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하게 일을 해 돈을 벌겠다는 지극히 개념 찬 생각보다는 복권 당첨 한 방으로 인생 역전을 하겠다거나, 인터넷 게임 사이트를 만들어 대박을 치겠다는 생각을 하는 주인공들이 차라리 현실적이다.

BMW 수십 대가 지나간 뒤에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를 본 기억이 있다. 아마 청도였을 것이다. 빈부의 격차가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나라가 지금의 중국이다. 기억나지 않는가. 아이를 등에 업은 엄마가 다른 아이의 구두를 닦고 있는 모습. 한 가정에서 아이를 하나만 낳을 수 있도록 한 법에 따라 중국 가정에 아이는 그야말로 ‘소황제’의 대접을 받고 있다. 물론 부자인 한에서 말이다.

오직 자기만 알고 자란 아이들이 청년으로, 성인으로 성장한 다음의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 이미 그런 모습들이 보이고 있긴 하지만 철저한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마오의 말씀은? 당연히 쓰레기장으로 직행할 수밖에.

오바마가 쩔쩔매고 굽실거려야 할 정도로 달러가 많은 중국, 전 세계 자원을 모조리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 그러면서 다시 중화의 부흥을 꿈꾸는 돌아온 대국 중국. 하지만 수억의 농민들은 굶주림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오로지 도시로, 도시로 밀려드는 빈민의 대열은 다시 처절한 노동환경을 만들어낸다. 농촌의 희생으로 발전하는 도시의 모습은 과거 우리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우리와 중국이 다른 것은 그 스케일이 비교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낄낄거리며 웃었지만, 유쾌한 웃음 속에서도 묻어나오는 씁쓸함을 어쩔 수 없었다. 뛰어난 입담과 재치로 마치 잘 만든 코미디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지만, 역시 블랙코미디였음을 부인할 수 없겠다.

그 어떤 혁명과 고귀한 이데올로기도 액면가가 얼마인지, 할부가 되는지, 몇 개월까지 무이자인지, 그리고 포인트가 쌓이는지 따져야 하는 세상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찌질이가 되기 십상. 오늘도 어느 방구석에선가 혁명을 꿈꾸며 열심히 고전을 독파하고 있을 그대여. 일단 이 책을 먼저 읽고 심각하게 재고해 보시라. 어쩌면 당신의 신용등급 때문에 혁명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니.

정말 재미있게 잘 만든 소설이지만, 정작 나는, 그리고 세상은, 하나도 우습지 않은 넋두리처럼 보인다. 통장 잔고가 얼마 남았더라.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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