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군화 잭 런던 걸작선 3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87년 6월 항쟁 이후 무수히 많은 사회과학 서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를 뿌려 얻어낸 민주화의 결과 중 하나였다. 과거 금기시 되어온 책들이 비록 조악한 수준인 책들도 많았지만, 다양한 지적 요구를 충족시켜주었다.

《강철군화》역시 그 중 하나였다. 미국 최고의 사회주의 작가로 알려진 잭 런던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강철군화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소름끼치도록 정확히 예언한 책으로 악명이 높았다. 옮긴이의 말처럼 단순한 고전이 아닌 이유이다.

미쳐버린 자본주의가 한계에 이르러 과두제라는 괴물을 낳고 그 괴물이 지배하는 ‘강철군화’의 시대. 넘치는 잉여자본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전쟁이라는 참혹한 수단을 이용해 모순을 풀어나가는 모습. 놀랍도록 유사하지 않은가. 사실 자본이라는 원인을 제외한 전쟁은 지금 그리 많지 않다.

자본주의의 대표국가답게 미국이 그 모범을 보이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 미치광이 부시가 사라지면 전쟁 역시 동반 자살할 것이라고 믿었던 이들에겐 지금 오바마의 모습이 충격일 수도 있겠지만, 오바마가 아니라 그 누구라 하더라도 미국의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전쟁의 시스템을 쉽사리 바꾸진 못한다. 전쟁의 수준이나, 시기를 조금 늦추었다는 이유로 그들이 노벨 평화상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은 미래소설이다. 27세기 인류형제애 시대(the Brotherhood of Man) 어느 낡은 가구에서 고문서가 발견된다. 이는 자본주의의 종말과 이어지는 과두지배 체제에서 극한의 투쟁을 전개했던 어니스트 에버하트의 일대기다. 그의 부인인 에이비스가 기록한 어니스트의 생애는 투쟁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자본주의가 결국 종말에 다다를 것이며, 그 사생아인 과두지배 체제 즉, ‘강철군화’의 시대가 도래 할 것임을 정확히 예견한 어니스트. 그는 다가올 사회주의 국가, 사회주의 세계를 위해 몸 바쳐 투쟁한다.

미래소설이긴 하지만 잭 런던은 책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 광기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독과점으로 엄청난 부를 획득한 자본가들이 늘어날수록 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빈민과 프롤레타리아가 발생한다. 대공황을 알리는 불황이 덮치고 은행과 기업은 파산한다. 노동자들은 죽지 않을 정도의 임금과 빈곤에 시달리다 죽어가고, 파업과 저항으로 최후의 생존을 도모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참한 시대에 잭 런던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정의가 사라진 시대, 필요한 것은 힘과 정의를 갖춘 초인을 갈망했다. 책 곳곳에 드러나는 그의 의식은 레닌의 엘리트 지배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무지몽매한 노동자, 농민에 기대기보다는 철저히 자각한 엘리트들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 잭 런던의 한계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은 런던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리고 날카로운 비판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그의 통찰력이 지금까지 유효한 이유다. 노조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무력화시키는 모습, 잉여자본을 해외로 돌려 또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충돌하는 모습. 그리고 전쟁. 노동자들을 철저한 폭력으로 지배하는 과두체제의 모습까지. 런던이 묘사한 세상은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다름없어 보인다.

책을 읽으며 일본의 노조 문화와 우리를 비교하게 된다. 한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던 일본 노조는 현재 무력화된 상태이다. 서경식 선생이 일본에서 처음 대학교수가 되어 자랑스럽게 교수 노조에 가입했지만, “우리는 절대 파업이나 투쟁 같은 것 안 하니 안심하세요”라고 말한 노조 간부의 말을 듣고 절망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바 있다. 일본 노조는 급여의 높은 인상과 개인적인 복지 서비스를 동원한 정부에 그대로 침몰 당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물론 보다 객관적인 눈이 필요하겠지만, 일본의 굴복과 전혀 다르다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귀족 노조라는 단어가 비록 조중동 같은 찌라시들의 전용어이긴 하지만, 결코 100% 과장이나 왜곡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권리가 짓밟히고, 농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가 얼마나 되었나. 김대중 정부 이전부터 이러한 비극은 이어져 왔다. 노무현 정부도 다르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야 입만 아프다. 4대강 죽이기 사업과 세종시 수정에도 볼 수 있듯 철저히 대기업 위주, 자본 위주로 돌아가는 시스템에서 약자들이 들어갈 구멍은 없다.

책을 읽다 쓴웃음을 짓게 만든 구절이 있다. 그 어떠한 명확한 논리와 현실 가능성을 논거로 들이대도 자본, 정부는 이 한 마디로 일축한다고. ‘이상주의자’‘무정부주의자’  


정말 유사하다. 지금의 우리 모습과. 사실을 말하고, 가능성을 이야기해도 자신의 이익과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은 이상주의자요, 무정부주의자일 뿐이다. 보수 진보 다를 바 없다. 유치한 수준을 넘어서 비열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긴 비열하지 않으면 정치인이 아니지. 그냥 사람이지.

세상이 나 하나로 바뀌겠나 체념하는 이들이 많다. 기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이 상태로 유지시켜 나가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라고? 혼자 테러라도 할까? 어쩌란 말이냐. 이렇게 항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기실 그런 이들이 모이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한 채. 그렇다. 우리는 비록 나약하지만 또한 멈출 수 없이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명박이 아니면 대안이 무엇이엇냐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대안이라고 하는 것들이 애매하긴 했다. 하지만 이명박은 차악이 아니라 최악이었음이 정부 출범 이후부터 바로 드러났다. 그렇게 지금 오고 있다. 아직 좀 많이 남았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큰 교훈은 하나 얻었다.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이가 경제적으로 성공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은 국민 전체가 아니라 1%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4대강 죽이기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영산강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도지사인지, 뭔지는 “존경하는 이명박 대통령님을 모시고 이렇게 기쁜 행사를…”어쩌구 저쩌구 했다. 용비어천가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당신도 살아야 겠지. 나중에 국회의원이라도 한 자리 다시 해먹으려면 그렇게 살아야겠지. 혼자 더럽고 말겠다는 희생정신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지금은 물론 ‘강철 군화’의 시대는 아니다. 그렇다고 형제 우애의 시대도 물론 아니다. 지금은? 돈의 시대다. 오직 돈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서 노동자, 농민 그밖에 모든 돈 없는 이들은 처참하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이들에게 올 겨울은 더욱 더 춥고 배고플 것이다. 그런 고통들이 4대강을 또 한 번 죽인다 해서 나아질 것이 아님은 지나가는 봉식씨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행복 사업, 희망 사업이라 떠든다. 수혜 대상자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는 점은 그나마 양심적이라 해야 할까.

잭 런던이 말해주는 형제 우애의 시대를 언젠가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선덕여왕의 상대등이 지배하는 골품제가 아닌,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 하나가 뭔 변화를 이끌어내겠어? 라는 생각부터 쓰레기봉투에 담아야 할 일이다. 생각보다 당신이 할 일이 많다. 내가 할 일이. 우리가 할 일이 많다. 정확하게 3개년 계획을 만들어 달라고? 난 레닌이 아니다. 그처럼 똑똑하지도, 머리가 빛나지도 않는다. 당신이 만들어야 한다. 당신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다들 알고 있다. 기득권 세력은 힘이 있고, 돈이 있고, 또한 영리하기까지 하다. 지배 계급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지식인들, 전문가들이 그들의 더러운 계획을 깨끗해보이게 만들어주고, 화려하게 포장해준다. 때문에 쉽지 않은 싸움이다. 연구해야 하고 배워하야 하고, 토론해야 한다. 고뇌해야 한다.

그 과정에 있어 죽비 같은 깨달음은 아니더라도, 느닷없이 바늘에 찔린 듯한 자각. 《강철 군화》는 그런 짜릿한 고통과 자각을 줄 것이다.

어찌 보면 좀비 영화보다 더 무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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