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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나라, 가난한 시민 - 진정한 풍요란 무엇인가
데루오카 이츠코 지음, 홍성태 옮김 / 궁리 / 2007년 12월
평점 :
아주 짧게 일본을 다녀온 적이 있다. 도쿄만 다녀왔으니 일본을 온전히 여행했다고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나름대로 생각하고 느낀 것은 많았다.
일단 도쿄는 화려했다. 그리고 정신이 없었다.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들 가시는지, 모두들 분주한 모습이었다. 물론 잠시 동안의 관찰이었기에 단정할 순 없지만, 서울과 아주 비슷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뭐 사실 서울이 도쿄를 본떠 만든 도시이긴 하지만 말이다.
일본은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다. 물론 미국이 있지만, 경제력만 따지고 본다면 일본 역시 만만치 않다. 중국의 부상이나 러시아, 인도 등 새롭게 경제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국가들도 많지만 여전히 일본의 경제적 위상은 높다.
그런데 일본인 중에는 한국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혐한류라 해서 재일 동포를 비롯해 조선인(북한), 한국인에 대한 거부와 증오를 가지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그런 약간은 과격한 이들을 제외한다면 대체적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단 기본적으로 그네들이 깔고 있는 ‘무시’라는 감정은 분명 존재한다.
이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바로 역동성이다.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과거 김대중 정부의 캐치프레이즈도 있었지만, 한마디로 뜨거운 가슴을 안고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부럽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 스스로 우리의 역동성을 절감하며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그네들이 보기엔 그런 측면이 다분히 있다고 한다.
말이 좋아 역동성이지 부정적으로 본다면 냄비 근성, 쏠림 현상, 이성적 판단이 아닌 감정적 행동, 극단주의와도 통할 수 있다. 우리가 일본인보다 다혈질이라고 하는 데 사실 과학적인 증거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일본인들은, 그리고 일부 한국인들은 분명 한국과 일본은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일본이 섬나라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섬나라기에 온순하다? 글쎄, 우리도 사실상 반세기동안 섬나라로 살아오지 않았나? 우리는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 해외여행이라 하지 않나. 땅으로는 어디든 갈 수가 없다. 섬나라 맞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일본인들은 과연 온순할까. 아니 일본인들의 심성을 온순하다고 표현해도 되는 것일까. 세계 2차 대전의 악역 중 하나로 우리를 비롯해 세계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던 가미카제의 후손들이 온순하다고?
일본 역사에 대해 해박하지 못하다. 그들의 정신세계, 가치관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한 적도 없다. 《국화와 칼》등의 몇 권의 일본 관련 책만 읽었을 뿐, 단정하기엔 지식의 폭이 너무 짧다. 하지만 《부자나라, 가난한 시민》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있었다. 그들의 온순함이란 것이 사실은 온순함이 아니라 체념이 아닐까 하는. 혹은 스스로 자신의 삶이 아무 문제없다고 세뇌시키며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일본은 그냥 딱 봐도 풍요로운 국가다. 돈이 엄청 시리 많은데다 최첨단의 유행을 선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항상 맞춰 살고 있으며, 각종 경제 지표상으로도 언제나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오죽 돈이 많으면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항상 경제 지원을 할 정도다. 물론 목적은 다른 데 있지만 말이다. 미국의 은근한 아프간 파병 요청에 병력을 보내자니 촛불이 다시 광화문을 덮을 것 같고, 그렇다고 돈으로 때우자니 없고, 고민에 고민을 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하토야마 정권이 엄청 부러울 정도다.
하지만 정작 일본 국민들의 삶을 보면 이건 뭔가 아니다 싶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연립 주택에 다다미 몇 장 깔고 산다. 최소한의 주거 공간에서 머리를 짜내고 짜낸 효율적 배치 등으로 그나마 다리 뻗고 잔다. 캡슐방 등의 기상천외한 업소들이 호황일 만큼 사는 환경은 척박하다.
이걸 우리 언론이나 정부에서는 그동안 검소한 삶이라 칭송하며 우리도 과소비를 줄이고 근면하게 살아야 일본 같은 경제 대국이 될 수 있다고 외쳐왔다. 하지만 그게 과연 정확한 평가일까. 검소한 게 아니라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잘 사는 나라가 말이다.
이젠 우리가 일본보다 능가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한 때 세계 과로사의 1위가 일본이었다. 자살률 역시 상위에 랭크되어 왔고, 노인 복지도 형편없었다. 물론 지금의 우리와 비교할 대상은 아니다. 우리는 노인 복지, 아니 복지라는 말을 쓸 자격도 없을 정도로 열악하니까.
암튼 일본은 국가적으로는 돈이 많은데 국민들은 정작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왔다. ‘돈 많은 가난한 나라’였다는 말씀이다. 토끼장 같은 집에서 살며, 만원전차에 장시간 시달리며 도착한 직장에서는 또 다시 야근을 밥 먹듯 하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쓰러져 자기 바쁜 일상. 왠지 지금의 우리 모습과 비슷한 것 같아 우울하긴 하지만 이미 일본은 20~30년 전부터 이러한 삶에 적응해 살아왔다.
책은 1989년에 출판된 것이다. 딱 20년 전이다. 저자는 말한다. “정말 풍요로운 것은 무엇인가?”“지금의 일본이 과연 풍요로운 선진국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일본의 한 잡지사가 1988년 일본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질문은 “일본 풍요의 상징은?”이었다. 주부들의 답변은 일본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길지만 잠깐 인용해 보자면.
“해외 부동산 구입” “고흐의 〈해바라기〉구입”“40그램 정도에 5만 엔도 넘는 화장크림”“커다란 쓰레기장”“아이들의 시험과 진학에 드는 부모의 열의와 돈과 시간”“부동산 광고에 억 단위의 숫자가 늘어서는 것”“차기 주력 전투기를 몇 대나 사려고 하는 것”“상품의 과잉포장”
그렇담 “일본의 가난을 상징하는 것은?”이란 질문에 주부들은 어떻게 말했을까.
“획일화되고 개성 없는 교육”“적은 국민연금”“높은 세금, 주입식 교육”“길가에서 골프 연습에 열중하는 아버지. 러시아워에 부대끼는 아버지. 단신부임하는 아버지. 가라오케에서 초라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아버지.”“농약투성이 야채, 약투성이 고기, 가공식품”“부엌 창에서 옆집 화장실 창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집”“주택대출의 파산 급증”“사채업자의 고금리금융 광고, 간판이 크게 늘어난 것”“인구당 적은 공원면적”“병자를 밀어 넣고 밀어 넣는 노인병원”“많은 돈을 내지 않는 한 들어갈 수 없는 노인홈”“특별양호노인홈 입주희망자의 순번대기”“연수입이 8백만 엔이어도 집을 살 수 없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항상 우리가 일본에 10~15년 정도 뒤처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딴 것은 좀 뒤처지면 안 될까하는 생각이 든다. 나쁜 것까지 다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나. 물론 지금까지는 온갖 나쁜 것은 제일 빨리 받아들이곤 했다. 원조교제부터 왕따까지….
저자는 진정 풍요롭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일본을 독일 등 선진국과 비교하며 차분히 말하고 있다. 돈은 넘치지만 정작 국민들은 불행한 국가. 과연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을지 자문하고 있다. 오늘의 우리 현실과 너무나 닮은 모습이기에 많은 반성과 고민을 요구하는 책이다.
이제 오랜 시간동안 썩을 대로 썩어버린 자민당이 물러가고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지만 아직 일본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온전히 정상적인 국가, 역사와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국가로 거듭날지는 아직 미지수다.
책을 옮긴 홍성태 교수는 “개발과 투기 문제, 저열한 사회자본 문제, 위험한 연금개악 문제, 그리고 이기적이고 무능력한 노동운동 문제에 대한 데루오카 교수의 설명은 마치 한국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생각될 정도다. 지금 한국은 ‘돈 많은 못 사는 나라’다. 한국은 분명히 ‘기형국가’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형국가 한국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4대 악마라고 단언한다. 4대 강도 그렇고 암튼 4자가 영 재수 없긴 하다.
홍 교수가 말하는 4대 악마는 무엇일까. 바로 “엄청난 재정을 탕진하고 국토를 파괴하는 토건국가”“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의 재벌권력”“모든 시민의 시간과 소득을 가차 없이 빼앗고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투기사회와 학벌사회”가 그것이다. 그는 복지사회의 정착을 위해서는 이러한 ‘4대 악마’와 싸워 이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당한 말씀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노빠’라고 비아냥거릴 인간들이 있겠지만,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바로 이런 4대 악마와 싸우기 위해 나름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알만 한 사람들은 그 노력을 안다. 물론 알보다 작은 인간들은 모른다. 그 결실이 아직 확연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분명 복지 사회로 가기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나름 많은 노력을 했다. 겁 없이 부동산 재벌들에 맞서 부동산 개혁을 시도했고, 무리를 해서라도 서울의 과다집중 현상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모두가 보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을 전부 온전히 뒤로 되돌리고 있는 현 정권을 말이다. 전국 어디를 돌아다녀도 공사판 아닌 곳이 없다. 이미 상반기에 올 하반기에 집행할 예산을 모조리 공사판에 쏟아 부었다. 물론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은 그나마 일감이 생겨 다행이지만, 그 후폭풍이 어떨지는 보수 경제학자들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다.
4대강을 시작한 지 벌써 조금 되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기어코 해버린다. 왜 그럴까. 이명박 대통령은, 그리고 한나라당은, 조중동은 토건 세력들의 지지로 인해 지금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4대 악마와의 동거를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대로 악마의 저주에 포위당한 채 살다 죽어야 할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이 빌어먹을 세상 다 없어져 버려라. 저주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억울하다. 무언가 제대로 된 세상에서 하루만이라도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오기가 생긴다. 바보 노무현과 절름발이 김대중이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것만큼 노력한 바로 그것이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결실로 우리 국민들, 인민들에게 다가와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엔 너무 암담하고 우울한 세상이긴 하지만, 진보 단체의 창립 행사에 보수 단체들이 난입해 깽판을 치는, 마치 해방 후 전쟁 전까지의 상황을 보는 것 같이 엿 같은 지금이지만, 미군이 우리나라를 떠날까 두려워 “We want US Army”를 외치며 여전히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미친 세상이지만….
희망을 믿고 싶다. 그리고 그 희망을 위해 조금이나마 노력하고 싶다.
그게 다다.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