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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피터 싱어 지음 / 세종(세종서적) / 199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적인 철학자이자 ‘동물 해방 운동’의 선구자, 적극적 사회활동가로 알려진 피터 싱어의 대표작이다. 원제는 ‘How are We to live?’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제목만 보면 윤리학 교재처럼 느껴진다. 물론 윤리적인 내용이 적잖이 담겨있긴 하다. 하지만 책은 단순한 교재 차원을 넘어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에 대한 분석, 윤리적인 사유의 전개 과정, 인간이 지닌 본능적 성향에 대한 생물학적 해석, ‘수인의 딜레마’와 같은 게임 이론 등 다양한 논의들이 윤리적인 삶의 우월성이라는 하나의 종착점을 향해 다각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역자는 이 책이 얼핏 보기에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인문, 사회, 자연 과학 지식이 어떻게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랬다. 윤리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고 떠드는 세상에서, 혹은 온갖 미사여구로 가득 찬 위선적 윤리 강령이 부정과 범죄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는 지금, 책이 주는 희망적 메시지는 고무적이다. 그것도 당위론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더욱 적절하다. 그는 이론과 과학을 적절히 섞어가며 논의를 펼치지만, 그 안에는 그의 뜨거운 ‘가슴’이 담겨 있다. 이 세상은 분명 유토피아가 될 수 있으며, 그 원천은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주장.
허무한 도덕론이라 치부할 수 있겠지만, 책을 읽다보면 단순한 희망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윤리를 설교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논리정연하게 설득하고 있다. 설명하고 있다. 인간이 진정 어떠한 존재인지, 우리가 어떠한 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말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다양한 명칭들이 떠오른다. 역자가 열거한 것만 우선 보자. 이기주의, 개인주의, 물질주의, 향락주의 등. 대부분 우울한 것들이다. 천민자본주의, 양극화, 시장만능주의 등을 여기에 보탤 수 있겠다. 우리는 환경의 오염, 빈부의 격차, 핵무기 등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에 포위되어 있지만, 이젠 장기하 형님의 말씀대로 ‘감각’이 없다. 당장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고, 개인의 힘이 얼마나 무력한지 스스로 단정짓기 때문이다. 누구나 세상은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 돈 때문에 다른 소중한 것들을 제쳐두고 산다. 부자라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거의 대개가 돈 버는 일에 몰두하고 산다.
저자는 더 이상 이러한 안이한 태도를 가지고는 살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공동체에서 누릴 수 있었던 목적의식을 회복하면서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 저자는 그 길이 대의와 자기 이익을 동일시하는 삶에 있다고 말한다. 윤리적인 삶만이 경쟁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그의 주장. 지금처럼 살다가 눈에 빤히 보이는 파국을 맞을 것인가, 미력하나마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위해 노력하면서 희망을 가질 것인가. 선택은 우리에게 있다.
“세상에는 불가피하지 않은 고통과 괴로움이 너무도 많이 존재한다. 비극적인 아이러니는 바로 그 때문에 우리들이 삶을 충족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적 자유는 탐욕과 사적인 욕망에 이끌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동기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의해서도 심각한 위험에 봉착할 수 있다”
“올바른 정치가를 위해 투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윤리를 정치보다 우선시 할 경우,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투표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원하는지에 따라 평가되기보다는 지금 당장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당신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자원 배분 상태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리고 당신이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의 잉여 소득 중 얼만 큼을 개발도상국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자선 단체에 기부할 수 있는가? 어쩌면 당신은 인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세계가 봉착한 기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믿을 수도 있다. 그렇게 믿는 것이 합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과연 인구 통제를 추진하는 단체에 얼마나 지원할 수 있는가? 당신은 산림이 나무 조각으로 변하는데도 아무 상관이 없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종이를 재활용하는 데 참여하고 있는가? 당신은 가축 농장에서 동물들을 좁다란 우리에 가두어 키우는 것에 반대하는가? 그럼에도 당신은 베이컨이나 계란과 같이 동물을 학대하는 가축 농장에서 만들어내는 상품을 소비하면서 이들 사업을 간접적으로 돕고 있지는 않는가? 윤리적인 삶을 사는 것은 단지 올바른 태도를 갖고 올바른 견해를 표출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요구한다.”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나름대로 윤리적 까지는 아니더라도 양심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살아온 나에게 정작 실천의 결핍은 뼈아프게 다가왔다. 행동보다는 글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정의를 외치고, 공존을 외치고, 평화를 외쳐오지는 않았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정작 온 몸으로 다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려 노력했던 사람을 먼저 억울하게 보내기까지 했는데, 여전히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이렇게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분의 죽음이 허무하게 잊혀질 수 없다고 믿으면서도 정작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책을 읽는 중간에 그 분이 떠났다. 그리고 이제는 완전히 그를 보내야 했다. 그가 묻는 것 같다. 이렇게 살아가도 정말 괜찮은 것이냐고. 점점 더 공존을 거부하는 이기적 인간들이 무차별적인 파괴와 억압과 살육을 일삼고 있는데, 정말 이렇게 우리는 맥없이 살아가도 괜찮은 것이냐고.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지금, 정작 난 두려움과 외면이라는 공포 속에 주저앉은 것은 아니냐고.
인간이 만들어낸 돈과 물질에 스스로 다시 구속되어 살고 있는 지금. 진정 삶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가를 고민해본 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적어도 나같이 대책 없이 4가지 없는 인간도 반성이란 걸 하게 만든 책이니. 다른 훌륭하신 님들 에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이 책의 정말 중요한 미덕 두 가지. 절대 훈계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절대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훌륭하다.
아, 사족 하나. 일본에 대해 묘사한 부분은 조금 우스웠다. 옥의 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