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시대의 호쾌한 구라꾼 성석제. 특별히 어느 작가의 글을 찾아서 읽는 편이 아닌 내가 그나마 주의를 기울여 읽는 것이 바로 성석제의 글이다.

물론 그 정도의 수고가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모든 글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논문은 아니겠지만, 솔직히 논문도 난 재미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것이 내 생각이다. 재미없는 글은 아무리 위대해도 적어도 나에겐 ‘아니올시다’이다. 책이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정보의 전달, 진리의 탐구라는 위대하신 이유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의 오락적인 측면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글을 읽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때문에 성석제의 글은 그야말로 나에겐 쏠쏠한 읽을거리다. 일단 재미있고, 깔끔하게 정제된 때로는 그냥 투박하게 쏟아 버리는 구라는 오호라 ‘고맙습니다’가 될 수밖에.

「사냥에는 보통 개를 쓰지만 불법 사냥에는 코뿔소나 악어, 코끼리, 공룡, 이무기를 가리지 않는다. 사실 호랑이를 잡는 데는 더 크고 사나운 호랑이를 쓰는 게 최고다. 길을 들일 수만 있다면. 불법 사냥에 가장 많이 동원되는 개는, 개가 아니고 사람이다. 개에게는 불법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은데다 사람은 개와 달리 도구를 쓰는 존재이므로 사람을 사냥에 쓰면 개가 할 수 없는 요긴한 일, 예컨대 털 뽑기, 요리, 술심부름 같은 일을 시킬 수 있다.」

- ‘누가 염소의 목에 방울을 달았는가’ 중 12p

능청스럽게 던지는 구라에 실소를 금치 못한다. 또한 아주 진지한 구라이기에 어느 순간에는 믿어버리고, 또 믿고 싶게 만든다. 킥킥거리게 만들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순간 주목받게 만든다. 아~! 그의 글을 읽다 주변의 눈총을 받은 게 몇 번이더냐. 참고로 난 항상 이어폰이 귀에 박혀 있는 관계로 내 웃음소리의 크기를 감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정말 짜증나는 세상에서 성석제처럼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이 비록 비웃음, 실소, 어처구니없음에서 비롯된 기동이표 썩소가 되더라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는 것은 분명 아주 고마운 일이다. 이런 웃음마저 없다면 세상은 정말 삭제하고픈 악성 스팸메일이나 바이러스 잡아준다는 구라 프로그램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저자나 출판사에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내 무지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고맙기도 하고, 지루한 시간을 그럭저럭 때울 수 있게 해줘서 고맙기도 하다. 눈물 나게 진한 감동을 전해줘서 고맙기도 하고, 때론 그냥 내 앞에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음 그 자체가 고맙기도 하다. 

‘고맙다’라는 말은 참으로 고마운 말이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 분노하거나 짜증내는 이들은 거의 없으리라. 물론 가식적인, 예를 들어 형식적인 “고맙습니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고객님~” 따위의 고맙다는 좀 다를 것이지만. 암튼 고맙다는 말을 듣고 “그래서 뭐 어쩌겠다는 거냐, 그 전까지는 내 존재가 너에게 전혀 불필요한 쓰레기였단 말이냐!”며 분노를 터뜨리는 이는 별로 없다고 믿는다. 소설가 성석제는 여전히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다. 

‘고맙다’는 말은 ‘곰’에서 말미암았다. 단군 이야기에 나오는 단군을 낳으신 곰, 쑥과 마늘을 먹으며 백일을 버텨 결국 사람이 되었다는 그 곰이다. 우리말교육연구소 김수업 소장님의 글을 보면 이 곰은 본디 하늘 위에서 온갖 목숨을 세상으로 내려 보내고 해와 달을 거느려 목숨을 살리고 다스리는 하늘서낭(천신)과 맞잡이로 땅 밑에서 온갖 목숨을 세상으로 밀어올리고 비와 바람을 다스려 목숨을 살리고 북돋우는 땅서낭(지신)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런 땅서낭 ‘곰’을 우리 글자가 없던 시절의 《삼국유사》에서는 ‘熊’으로 적었지만 우리말 그대로 한글로 적으면 ‘ㄱ·ㅁ’이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한글을 만든 15세기 뒤로 오면 ‘고마’로도 썼다는데, 이제는 뜻이 “삼가 우러러볼 만한 것” 쯤으로 낮추어졌고, “삼가 우러러 본다”는 뜻으로 ‘고마하다’는 움직씨도 만들어 썼다고 한다. 

‘고맙다’를 그대로 뿌리와 가지로 나누면 ‘곰+압다’가 되겠지만 그것은 ‘곰+답다’에서 ‘ㄷ’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고맙다’는 본디 “당신은 나에게 목숨을 내어주고 삶과 죽음까지 돌보며 이끄시는 곰(서낭)과 같은 분이다”하는 뜻이었다고 한다. 우와, 정말 아름답고 멋진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좋은 말을 두고 우리는 그동안 일본 한자말 ‘감사하다’나 어설프게 ‘땡큐’ 어쩌고 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곰에게 한 대 맞아도 싸다.

우리들의 소소한 삶의 모습들을 따뜻한 웃음, 허풍선이 웃음, 때론 씁쓸한 웃음으로 보여주는 성석제의 글은 소중하고, 역시 고맙다. 어설프게 글을 쓰는 업으로 먹고 사는 나에게 성석제의 글은 활력소이자, 때로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아무리 짧고 하찮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러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삶에 대한 애정과 우리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그러한 사랑을 배워감에 있어 나는 여전히 멀고 아득하다. 

삶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성석제의 감칠맛 나는 구라. 여전히 기대한다.  

「아, 아, 이 마이크가 왜 이카나. 아, 아, 원투스리포오, 아, 뒤에 잘 들리십니까. (뒷줄: 뭐 기양도 들리는구만 마이크는 뭐 하러 써싸. 전기만 닳구로.) 안녕하십니까. 제가 바로 옥산면 파출소에서 소장님을 모시고 있다가 소장님이 안 계실 때는 소장님을 대신해서 면민의 안녕과 치안을 책임지는 차석 김옥출 경장입니다. 이 화창한 봄날에, 만물이 생동하는 마당에, 바쁘신 중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나와주신 옥산면 주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 말씀 드리며 인사올립니다. (앞줄: 빨리 할말만 해. 돼지 마구 똥 쳐낼 기 태산이구마는. 중간줄: 아, 인사한다는 기 뭐가 해로웨. 기양 점자이 받아서 보겟도에 넣어두세.) 아, 아, 다른 게 아니고 말입니다. 옥산면민 여러분. 제발 파출소에 씰데없는 전화 좀 넣지 맙시다요. 솔직히 이 인간 김옥출이가 차석 모가지를 걸고 말하는 긴데 우리가 작년 한 해 동안에 음주운전 단속한 기 딱 두 건입니다이.」

- ‘당부 말씀’ 중에서, 26~27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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