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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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많은 기대를 하고 작품을 접했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그리고 그만큼 여러 가지 소회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그야말로 대책 없이 거꾸로 가고 있는 남북관계에서 이러한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때론 당혹스럽고, 무참하고, 난감한 일이다. 하지만 이 역시 감당해야 할 몫이리라.

통일이 된 이후의 한반도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많은 이들이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난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상상했다. 우리 민족 스스로의 잘못을 떠나 결정적으로 외세의 장난질로 인해 분단된 땅에서 태어난 이유로 난 지옥 같은 악몽을 여러 차례 꾸어야 했다. 잠에서 깨어나면 그것이 꿈인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가까운 미래를 본 듯 떨리곤 했다.

그랬다. 통일은 나에겐 감당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처음으로 진중하게 책을 넘기던 시절부터, 처음으로 부조리의 아픔과 그 상처로 고통 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느끼게 된 순간부터 통일은 우리 민족의 절체절명의 과제라고 사무치게 느끼면서도 막상 통일이 이루어진 그 다음을 상상하기는 두려웠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지금까지의 시대는 그처럼 통일을 두렵게 만들었다.

그러한 악몽을 현실적인 미래로 바꾸어 온 것이 지난 10년간의 시간이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수많은 이들이 생명을 바쳐가며 이 상처받은 땅을 다시 이으려 노력해왔다. 그 분들의 피와 눈물이 없었다면, 그나마 지금의 모습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혹자들은 말한다. 국제적 정세의 변화가 남북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땅의 수많은 통일일군들의 노력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온갖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 많은 이들이 통일을 위해 땀과 눈물을 쏟고 있다.

소설은 어둡다. 희망을 모두 버리자는 말은 하지 않지만, 그 희망이 과연 존재할 것인가는 역시 장담하지 못한다. 이미 미쳐버릴 대로 미쳐버린 남한과 역시 온전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북한의 결합. 그것을 저자는 재앙으로 묘사한다. 악몽으로 묘사한다. 어느 누구도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지독한 수렁. 그것이 바로 통일이다.

줄거리를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댄 브라운 스타일의 빠른 스토리 전개와 스릴러, 블랙코미디가 가미된 흥미로운 전개는 페이지를 쉽게 넘기게 만든다. 하지만 그 빠른 전개 속에서도 저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들을 허투루 담지 않는다. 때론 은유적으로 때론 직설적으로 쏟아버린다. 그것이 과연 누구를 향한, 어디를 향한 외침일까. 어쩐지 독자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길지만 다음의 구절을 인용한다. 생각해 볼 것이 많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대한민국에는 우파도 없었고 좌파도 없었어. 대한민국은 그래. 없는 것 있다고 우기는 게 대한민국이야. 안 그러면 그건 대한민국이 아니야. 우파가 뭐냐? 우파의 궁극적 목표는 애국이야. 애국. 이렇게 애국 안 하는 우파들이 어딨어? 오죽하면 일본 극우 애들이 자기네 역사관을 표절하지 말라고 걔들한테 화를 다 내냐? 좋아. 욕해야 되니까 까짓것 우파가 있다고 치자. 마땅히 우파들이 앞장서서 해야 할 일들을 엉뚱한 놈들이 대신하면서 뺑이를 치잖아. 그러면 우파들이 그걸 또 가만 놔두지 않고 달려들어 탄압을 해요.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잖냐. 나라와 민족이 작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였으니 나가서 용감히 싸워라. 언젠가 힘을 되찾으면 이 나라와 이 민족은 너만이 아닌 네 후손에게까지도 꼭 보답하마. 이런 게 있어야 제대로 된 우파의 국가인 거야. 독립운동? 야, 이젠 더러워서 지나가는 개들도 안 하겠다. 친일파 문제는 어리바리한 시민 단체나 경로당보다 못한 역사연구회에서 정리하는 게 아니야. 진정한 우파들께서 손수 해 주셔야 하는 거지. 자기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걔들은 몰라. 왜? 우파가 아니거든.

좌파? 이것도 욕해야 되니까 일단 있다고 치자. 걔들처럼 지독한 장사꾼들이 세상에 또 없어요. 나는 걔들이 잔대가리로는 더 재벌 같아. 우파들은 무식해서 간단하기라도 하지. 걔들은 엄청 복잡한 속물들이에요. 남한의 좌파는 낭만주의였어. 청춘의 아련한 추억이고. 자아도취지. 억울하다? 야, 성경 말씀에 그 열매를 보고 그 나무가 뭔지 안다고 했어. 걔들이 나중에 온갖 분야에서 한자리씩들 해 처먹고 한 일들이 뭐가 있어? 자기들 배불리고 어디 가서 축사나 읽어 대고 술자리에서 골 빈 년들이 어머, 선생님 정말요? 그러는 거나 즐기면서 마치 고독한 척 어른 행세한 것 말고 뭐가 있냐고. 진짜 사회주의자는 말이야. 제 애비가 정주영이라고 해도 사회주의자인 놈이어야 해. 어디 있냐? 그런 놈이. 나한테 연락 좀 부탁한다고 그래라. 통일 이후에도 그래. 좌파들이 이북 노동자들한테 하는 소행들이 어떠냐? 방금 뉴스에서도 함경도 아저씨 하나 천국 갔잖아. 또 우파들이 누구냐? 통일 전에 그렇게 북한 인권을 들먹이던 사람들 아니냐. 그걸 걸고넘어지면서 식량 원조에 반대하던 양반들이 아니냐고. 뭐냐? 통일이 되고 나니까 이북 사람들 바로 왕따시켜 버렸잖냐. 통일 전에 우파들은 북한 사람들을 걱정했던 게 아니라 그들에게 공으로 퍼 주는 게 아까웠던 거야. 좌파들은 동포애를 주둥이로만 나발거렸을 뿐 막상 옆집에 이북 사람들이 살게 되니까 너무 좆같은 거고.” - 153~155pp

우리는 북이 핵을 개발하여 전 세계를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핵 한 두 개로 마치 자신들이 세계의 커다란 위협이 되는 양 떠들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남한을 포함하여 6자회담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국가들이 핵을 보유하고 있거나 개발할 능력이 북한보다 월등이 뛰어나다. 미국과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핵무기는 말 그대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핵무기의 전부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북이 만에 하나 손담비가 되어 미국 본토나 일본 등에 핵을 날린다면 그것은 곧 자신들을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어지게 만들어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진정으로 북이 그걸 모를까? 그리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이 그걸 모를까. 진정 북의 핵이 두렵기는 한 걸까?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물론이다. 다르다. 우리는 바로 코 앞 아닌가. 하지만 과거나 지금이나 북한의 위협에 대해 신중히 분석하고 대처하려 했던 적이 얼마나 되는가. 눈눈이이가 아니었나?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이 있기 전 김영삼은 김일성이 사망했는데도 김정일에게 공갈을 퍼부었다. 덤비라고. 아비가 죽었는데, 아들한테 “고소하다. 너넨 끝이다. 백기 들고 나오든가 뒈져라.”라고 한 꼴이다. 덕분에 한반도는 전쟁의 바로 5분 전까지 갔었고, 우리는 그의 말대로 뒈질 뻔 했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지금은 또 왜 이러고 있을까. 그 대답은 소설에서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진정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원하지 않는 세력들이 아직 살벌하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보다는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는 것이 더욱 더 쉽고 또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들이 위에 있고, 한반도 정세를 가지고 장난을 친다. 자신들을 능가하는 힘을 가진 세력이 변화의 모습을 보여도 웬만해선 꿈쩍하지 않는다. 일단 버티는 데까지 버티는 것이다. 그 사이에 통일은 악몽이 되고, 그 미래는 점점 더 어두워진다. 

우파들의 정신적 지주인 이승만은 한국 전쟁이 터지자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도망갔다. 서울 시민들에게 걱정 말라고, 집을 지키라고 말하고 자신은 튀었다. 시작부터 그랬다. 그게 역사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알겠다. 그는 북한의 어두운 면을 이야기한다. 통일 이후의 한반도를 어둡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 전의 현재 우리의 꼬라지를 먼저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이 따위로 살아가면서 무슨 통일을 떠들고, 무슨 한반도 평화를 나발대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동감이다. 그의 소설에서 아쉬운 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하고 싶어 하는 그 말은 동감이다. 우리는 아직 통일을 떠들 자격이 없는 종들이다.

자칭 민주주의 국가라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암담하다. 집회 결사의 자유가 억압받고, 언론의 자유 역시 옛 말이다. 이른 바 공안정국이 이어지고 있고, 검찰과 경찰 등 국민들을 지켜야 하는 권력들이 오히려 정부의 하수인이 된지 오래다. 이미 너무나 오래다.  

통일운동단체들이 순간 이적단체가 되고, 빌어먹게도 지겨운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사람들을 질식시키고 있다. 집권당은 경찰이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가방을 뒤지고, 신분 확인을 위해 DNA 조사를 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꾼다고 거품을 문다. 얼굴에 마스크만 써도 잡아간다. 집회 근처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목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했다고 연행됐다. 지나가던 일본 관광객도 쳐 맞았다. 그게 다 국가와 사회의 안녕을 위해서란다. 자신들의 안녕이란 말은 죽어도 안 한다. 그게 아니란 건 몰래 대출 조회한 봉식씨도 안다.

책을 읽으며 내내 불편했지만, 그나마 이러한 디스토피아를 보여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과연 그 누가 지금 상황에서 장밋빛 통일을 상상할 수 있을까 생각은 들지만, 구체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이 소설의 존재 가치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곳에서 문익환 목사의 글이 보였다. 시라고 할 수도 있고, 제목 그대로 잠꼬대라고 할 수도 있다. 읽다가 울컥해진다. 지금의 상황을 문 목사님이 보셨다면….

저자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러고 싶다. 하지만 심히 어려운 시대다.

문 목사님의 글을 옮기며 마친다. 한잔 술을 찾아봐야겠다.

〈잠꼬대 아닌 잠꼬대〉

- 문익환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거야

기어코 가고 말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 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구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구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구

난 걸어서라도 갈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 
 

 

** 이 리뷰는 온북리뷰에르로 작성한 글입니다. http://www.onbooktv.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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