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민에게 드림 8.15 해방공간 시리즈 4
박헌영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우리는(공산당) 인민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를 요구하며, 일부 소수 특권계급의 이익만 옹호되고, 인민의 절대다수의 근로대중의 물질적 생활이 보장되지 못하며, 도시 소시민, 인텔리겐치아 등의 불안한 생활을 안정시키지 못하는 정치는 절대로 배척합니다.

……(중략)
정치가라고 자칭하면서도 정치를 다만 자기의 특권을 옹호하는 도구로 사용하려 하며, 정치를 민중생활의 보장을 위하여 쓰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정치권세를 그대로 자기 수중에 넘겨 맡아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압박착취의 방법을 그대로 이용하여 근로대중을 압박하려 하는 것입니다.
……(중략)
반동분자는 듣기 좋은 말로 민중에게 아첨하며, 음흉한 계획안을 민중 앞에 내세워 민중을 자기 앞으로 끌어 그 원조를 받아 정권을 잡으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그 목적을 달성하여 정권을 잡는다면, 그 음흉한 계획안과 듣기 좋은 말씨는 집어치우고 자기네 한 계급과 한 층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민중을 착취, 압박할 것입니다. 
 

- 42~44pp

윗글은 1946년 2월15일 박헌영이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의 직함으로 발표한 “민생을 보장하는 정치”라는 글의 한 부분이다. 역사의 공산당이 과연 박헌영이 꿈꾸었던 사회를 만들었는지는 우선 제쳐두더라도 50년이 더 지난 지금의 우리 정치 현실을 본다면, 아직 박헌영의 말이 유효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그것도 뼈저리게 말이다.

박헌영은 불세출의 혁명가였다. 20세에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조선공산당을 만든 주역이었고, 몇 차례에 걸친 투옥과 석방의 와중에도 모스크바 유학에 올라 호치민 등 세계의 청년공산주의자들과 교류하며 그의 천재성과 뛰어난 역량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어 그는 해방 후 공산주의 세력의 박멸을 꾀하던 미군정과 남한 내 민족주의 및 보수 세력의 공세로 북으로 넘어가 북한 정권 수립 후 부수상과 외상을 맡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직후 전쟁 패배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넘겨야 했던 김일성에 의해 미제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1955년 사형 당한다. 북한의 역사에선 미제의 간첩으로, 남한에서는 지독한 골수 빨갱이로, 그렇게 박헌영은 우리 역사의 경계 밖에서 지금껏 서성이고 있었다.

이 책은 1946년 8월15일 광복1주년을 맞아 박헌영이 월북하기 한 달 전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광복 63주년을 맞은 2008년 8월15일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긴 시간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박헌영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우리에게 박헌영은 여전히 너무 먼 존재이고, 또한 금기의 대상이었다. 때문에 그가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긴 이 책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희귀하고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도 혁명가, 공산주의자 박헌영에 대한 정당한 역사의 평가는 계속 시도되리라 기대한다.

지금 아이들은 알지도 못하리라 생각하지만, 가수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이 박헌영을 소재로 했다는 어느 교수의 주장이 있었다. 그 교수의 주장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민족의 분단이라는 비극과 인간 박헌영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겹쳐지는 부분은 상당하다.

최근에 와서야 우리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또는 최근까지 국가라는 폭력에 어이없이 희생된 이들을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다. 생각하기 싫은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덮으려고만 하지 말고, 다시 꺼내야 용서와 화해가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무조건 외면으로만 일관해왔던 국가 권력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고, 또한 역사의 정당한 흐름이었다. 이러한 노력들로 제주의 눈물이, 수많은 조작 사건들이, 의문사들이, 하나 하나 그 진실을 드러냈다. 대통령은 제주도민들에게 비록 반세기가 지난 후였지만 국가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고, 과거 일방적으로 빨갱이라는 오명 하나 때문에, 수많은 독립운동, 투쟁의 노력들이 가려졌던 이들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민족주의자이든, 사회주의자이든 독립을 위해, 민족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잡혀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은 안 그럴까 생각 들지만, 이러한 느리지만 소중한 전진도 이제 다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지금 정부는 오직 경제만이 살 길이라며, 은근슬쩍 그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지금 현재의 남북관계도 그야말로 “깽판”치는 정부가 과거 다시 돌아보기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금 현재의 인권도 “개소리 말라”며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폭 축소한 정부가 과거 이미 죽은 이들의 “인권”이 중요할리 없는 것이다. 지금 현재의 서민, 인민들의 삶도 “닥치고 찌그러지라”고 하는 정부가 과거 죽은 서민, 인민들의 삶이 대단할리 없는 것이다.

박헌영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다를 것이다. 그가 결국은 레닌식 엘리트주의에 빠져 스스로 몰락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불꽃처럼 살다간 비운의 혁명가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가 어떻다는 평가는 그야말로 제각각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어떤 인물인지 충분히 알든 모르든 간에 그의 남겨진 글을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분명 적지 않은 듯하다.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이 얼마나 발전해 왔는지, 진보해 왔는지 스스로 묻게 되는 것이다. 정치는 무엇이어야만 하는가. 인민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진보와 발전, 삶은 무엇인가.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세상이기에 더욱 그런 것은 아닐까.

공산주의 운동가 박헌영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그의 관련된 여러 서적들을 충분히 살펴본 후에야 그나마 가능하다. 이 책 한 권으로 그를 설명할 수는 없다. 소련에 대한 무비판적인 추종, 또한 김일성 못지않은 개인숭배 등 박헌영의 어쩔 수 없는 한계들이 이 책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동시에 이념과 사상을 차치하고 바라본다면 그의 국제 정세를 보는 뛰어난 감각과 국내 정세의 전망 등이 탁월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문장 자체로서도 뛰어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오른쪽을 지향하는 피플 들이 모여 영차 영차 힘을 모아 현 대통령을 당선케 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때문인지 그들이 소위 바른 역사라고 당당히, 거침없이 들이댄 책들을 보면 그야말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게 다 무식의 소치인가, 아님 영혼을 팔았기 때문인가. 어차피 대학 입학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기에 건성건성 만든 것인가. 국정교과서라는 설정 자체가 썰렁한 개그라 다 없애야 한다는 수준까지 발전해야 할 판에.

그래서 더욱 “조선 인민에게 드림”과 같은 책들이 반갑고 소중하다. 욕을 하더라도 제대로 알고 지껄여야 한다. 상식이요, 그게 예의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들은 죽어 마땅하다. 천륜을 배반하는 것이기에.
이런 책들이 더욱 많이 나와 적어도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만큼은 최소한의 객관성이라도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건 사족이다.

지난 3월20일 행정안전부는 국가인권위원회 정원과 조직을 21.2% 축소하는 개편안을 확정했다.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개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누누이 말하지만 용산 참사 피해자 유족들은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장례를 못 치르고 있다. 사형제도를 다시 실시하자는 광기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중동에 가면 미국의 하수인, 심하게 말하자면 개로 취급당해 테러의 대상이 된다. 올 해 1월 취업애로 인구가 330만 8천 명이었다. 강압적인 주입식 교육, 대학만을 위한 교육에 더 이상 못 견딘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억지로 군대 끌려간 우리 아들, 동생들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처먹으라고 던져준다. 이런 나라에서 인권위원회를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축소한단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 “악”의 평범성을 “보편성을 가장한 광역성”으로 표현한 바 있다.

 

도대체 훗날 역사가들은, 아니 귀찮게 훗날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 바로 다음 세대들은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할까. 그때 넌 뭐했냐 이 새꺄! 하고 물어보면 당당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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