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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평점 :
“그렇다. 나는 마하르 카스트 출신이다. 내 아버지는 간신히 문맹을 면했고 변변찮은 막일로 가족을 먹여 살린 보잘 것 없는 노동자였다. 내 조상들은 불가촉 천민이었다. 그들은 침이 땅을 더럽히지 않도록 오지항아리를 목에 걸고 다녔고 발자국을 즉시 지울 수 있게 엉덩이에 비를 매달고 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마을의 하인이 되어 이글거리는 태양 밑을 입에 거품을 물고 숨이 끊어지도록 달려서 관리들의 행차를 알려야 했다.” -296p
저자 나렌드라 자다브의 아버지인 다무는 자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을 규정지어버린 달리트란 신분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야말로 눈물겨운 투쟁을 전개한다. 물론 그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하더라도 그가 달리트라는 사실은 바꿀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달리트이기 전에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전해주기 위해 헌신했다. 다무의 이러한 투쟁, 헌신은 결국 자식들의 인생을 자신과는 전혀 다르게 만들었다. 나렌드라 자다브를 비롯하여 다무의 자식들은 다무와 어머니 소누의 헌신으로 풍족하지 않지만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결국 신분의 제약을 극복하고 달리트로서는 꿈꿀 수 조차 없었던 위치에 까지 오르게 되었다.
책을 넘겨가며 다무와 소누의 깨어남의 과정과 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에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식들까지 자신의 신분을 저주하고, 결국 체념하며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그림자마저 부끄러워해야 하는 달리트. 그런 영겁의 굴레에서 자식들만큼은 벗어나길 바랐다.
하지만 나에게 보다 큰 감동으로 다가온 것은 자식들에 대한 그들의 헌신과 그로 인한 자녀들의 성공이 아니었다. 보다 눈물겨운 것은 그들 스스로의 삶을 바꾸려는 치열한 투쟁 그 자체였다. 자신의 조상들이 수천 년 동안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던 달리트란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통이란 이름으로 강요되어왔던 모든 구속과 억압을 깨뜨리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기 위해 모든 고통과 억압에 맞서 싸운 그들의 용기 그 자체가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그게 그들 속에 잠자고 있던 백조를 깨울 수 있었고, 결국 자식들에게 전혀 다른 삶을 전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2007년에 나온 직후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며, 일약 베스트셀러에 오른 바 있다. 전에 구입했던 책을 어디에선가 어느 순간 잃어버린 후 친한 사람이 다시 선물로 사주었는데, 1판68쇄였다. 그야말로 엄청나게 팔렸다는 소리다. 이렇게 책이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각종 언론과 매스컴에서 이 책을 다루며 많은 홍보를 해준 덕도 있을 것이고, 출판사 자체의 영향력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인도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던 어떠한 막연한 환상과 동경(이 부분에 있어서는 류시화 님의 책임이 적지 않다.^^)이 책을 통해 상당 부분 깨진다는 신선함도 작용했다고 본다. 사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방법은 일정한 매뉴얼이 있을 정도로 획일화, 규정화되지 않았는가. 그 매뉴얼을 충실히 따른 책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차별받던 천민이 차세대 인도의 지도자가 되어버린 영화와도 같은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그 주된 원인이 바로 교육에 있었다는 사실이 한국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물론 한 사람의 성공 과정을 보면 그 자신의 피나는 노력이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신분의 제약을 극복하고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 미운 오리새끼도 백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화. 바로 거기에 한국 사람들은 열광하지 않았을까. 이는 지금 불고 있는 오바마 신드롬과도 다르지 않다. 어찌되었든 그가 미국의 평범한 흑인이 아님을 잊고, 그가 선택받은 이라는 사실을 잊고, 다만 그의 성공만을 바라보고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아버지 다무는 분명 특출한 재능도 그렇다고 재력이 넘치는 이도 아니었다. 평범한 달리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인도의 모든 달리트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교육과 자각에 대해 들려줄 수 있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고, 바바사헤브(암베드카르), 토 마스터 등과 같은 정신적 스승을 만날 수 있었다. 이는 분명 축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교육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굴레를 벗어나려, 자식들의 인생을 바꾸려 했다. 그 결과는 물론 성공이었다. 나는 이 부분에 주목한다. 기득권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결국 그 기득권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은연중에, 아니 적나라하게 책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 독자들을 편안하게 했을 것이다.
물론 아무런 힘도 권력도 없이 기득권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무모한 일일 수 있다. 일단 기득권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기른 후 그 안에서 변화를 꾀하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책을 읽은 후 느낀 씁쓸함은 무엇일까. 국가가 자신의 생존과 국민에 대한 철저한 통제를 위해 만들어놓은 교육 시스템 안에서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 과연 어느 정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다무의 노력과 그 자식들의 성공을 보며 만족해하면서도, 과연 다무와 같은 이가, 자다브와 같은 이들이 인도에서 얼마나 될까를 상상하는 것은 온전히 오버일까.
한국의 교육열이야 새삼 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우리는 자신은 굶어도 좋지만, 자식만은 온전히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수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의 헌신과 희생 속에서 발전해왔다. 그것이 지금은 대학생 자녀의 수강신청까지 어머니가 대신 관리해주는 수준까지 왔다.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를 칭찬할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국가는 끊임없이 롤 모델을 제시하고 그 모델에 모든 국민들이 몰입하기를 원한다. 자신의 지금 처지를 비관하거나, 국가에 대해 반항심을 가지지 말고 일단 롤 모델과 같은 정도의 실력을 키우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잘 알지 않는가. 모든 여학생들이 김연아가 될 수 없고, 모든 남자들이 박태환, 박지성이 될 수 없음을. 이들을 뺀 나머지 한국의 학생들이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교육이라는 통로를 통해 한국의 천민들은 신분 상승을 꾀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역사다. 하지만 이제 기득권은 그러한 통로를 조금씩 닫고 있다. 엄청난 교육비와 기형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더 이상 한국의 개천에서는 용이 나올 수 없다. 물론 예외적으로 소수의 용들은 남겨둘 것이다. 그래야 나머지 수많은 이무기들이 군소리 없이 따라올 테니. 대학은 자율화라는 개 같은 구호아래 교육의 불평등을 아무 제약 없이 추구하고, 노골적으로 교육 장사를 시작하려 한다. 소위 스카이라는 곳부터 지르고 있다. 돈은 가장 많은 것들이 항상 먼저 돈에 눈이 머는 법. 서민들은 더 이상 돈 많은 엘리트 집단과의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교육에 생명을 건다. 자식의 과외비를 위해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어머니들이 이 시대에 과연 얼마나 될지 상상해 보았는가. 그런 피눈물 나는 일들이 인도가 아닌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신도 버린 사람들”은 비단 인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점차 더욱 많은 이들이 한국에서 “돈”이라는 신에게 버림받고 있다. 점차 권력은 소수에게 쏠리고, 나머지 달리트들은 로또와 같은 인생의 역전을 꿈꾸다 죽는다. 그리고 한두 명의 성공 케이스를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또 그렇게 죽는다.
교육으로 인생의 역전을 노리던 시대는 끝났다. 더 이상 다무와 소누 같은 부모들은 성공하기 힘들 것이다. 교육을 사업으로 인식하고, 그 사업의 흑자를 내기 위해서 기득권은 더욱 더 교육을 더럽힐 것이다. 그렇게 더러운 교육의 수혜를 받은 이들은 역시 사회에 나가 또 다른 이익 창출을 위해 활약할 것이다.
희망은 있을까.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시대이지만, 나는 다무의 한 마디를 가슴 속에 품어본다. 그래도 꿈은 꾸어야 하기에.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해도 길거리의 사람들을 돕지 못한다면 전부 낭비일 뿐이다.” - 34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