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해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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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인 중에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박성광이란 이가 있다. 예쁜 박지선과 함께 커플로 웃음을 주다 최근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난 그보다는 박영진이란 희극인에게 점수를 훨씬 더 준다. 박성광은 내가 보기엔 박영진 덕을 너무 봤다. 박지선 덕도 많이 봤지만, 내가 보기엔 박영진의 아이디어로 묻어 간 케이스다. 물론 그의 능력을 완전히 과소평가하지는 않는다. 술 마시고 조는 연기야 과거 전설의 희극인 백남봉 선생이 원조이고, 사실 백 선생의 연기가 더욱 자지러지게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박영진은 순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사람을 웃게 만든다. 이건 요즘 희극인 답지 않은 그야말로 대단한 능력이다. 모든 희극인들이 한 번 웃기기 위해 일주일을 피터지게 고민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 중 박영진이 단연 돋보이는 것은 순전히 그의 능력이다.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성석제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웃음에 대해 말하기 위함이다. 우선 그의 소설은 그가 의도적으로 궁리 끝에 그렇게 썼건 아님 그냥 펜 가는 데로 썼던 간에 무지하게 웃기다. 단순한 문장 하나가 사람을 뒤집어지게 만든다. 지하철에서 읽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키득거린 적이 얼마였던가.  
이런 능력은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다. 사람이 말로,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웃음을 유발토록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한 분이라면, 글로 사람을 웃긴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지 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석제의 글은 대단한 힘을 가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그가 달라지고 있다. 확실히 그러나 은밀하게.

마르쿠제였나. “예술은 다른 어떠한 언어로도 전달할 수 없는 진실을 전달하며, 다른 어떠한 것으로도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을 반박한다”고 말한 이가. 하지만 강철중은 말했다.
“지금 형이 피곤하거든, 좋은 기회 잖냐. 그니까 조용히 가라~”고. 
 

 

사람들은 이제 “타락한 세상을 가로질러 진정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드러낸다”는 소설적 명제를 믿지 않기 시작했다. 물론 많은 작가들이 이 명제 안에서 자신의 열정을 태우고 있지만, 점차 소설은 그 역할과 위상에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그동안 성석제의 소설들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웃음이라 할 수 없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찌질이”였다. 건달, 전과자, 술꾼, 깡패, 노름꾼, 바보, 탐서가 등등. 그들의 하나같이 어설픈 삶, 행동에서 우리는 웃음을 얻었지만, 그 웃음은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사회 밖에 내던져 진 인간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타자에 대한 시선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런 그가 이제는 점차 사회적인 시선에 집중하고 있다. 절대 풀어낼 수 없는 갈등, 파탄의 끝, 그리고 그 속에서 어리석게 희망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독자들을 작가는 조금씩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성석제의 글에는 분명 입으로는 웃고 있는데, 눈가에 이슬이 맺히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주인공들이 내뱉는 말들은 그야말로 “죽음”인데, 정작 그이의 삶 자체는 그보다 더욱 처절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소설에서는 웃음보다는 미소가 더욱 어울리는 듯하다. 키득키득은 아니지만 독자 스스로 소설의 끝 이후를 생각하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지. 그게 달라진 성석제의 모습처럼 보인다.

소설집의 제목과 같은 소설 지금 행복해를 읽다보면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뒤늦은 자각과 처절한 반성에 따른 인간 변화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도박 중독자, 알콜 중독자에서 결국 남을 위해 봉사하는 봉사 중독자,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눈물 중독자가 되기까지, “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과정은 고스란히 우리네 모습과 겹쳐진다. 사회에서 소외된 특별한 분류가 되어진 이들이 기실 우리의 가족이라는,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충격과 묘한 동질감, 그리고 연대의식을 느끼게 된다. 바로 그 곳에서 상처받고 썩어가는 사회에 대한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최근 워낭소리를 관람했다. 이명박 대통령보다 먼저 봤다. 나는 영화를 본 후 이런 영화를 왜 대형 극장에서 상영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싸였고, 이명박 대통령은 “만화영화와 독립영화를 함께 상영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날 것 같은 말씀을 했다.
성석제 소설을 읽으며 최원균 할아버지와 이삼순 할머니, 그리고 소가 떠올랐다. 청명한 워낭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우리네 삶이 점차 삶이 아닌 삶으로 되어가는 순간. 그런 우리들에게 헛웃음이 아닌 진한 미소를 줄 수 있는 작가가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성석제가 앞으로 그러한 모습을 계속 우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심각한 우리네 삶을 가지고 노는 “삶장난”을 계속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삶이 장난이냐고? 예술이, 문학이 장난이냐고? 그렇담 삶은 계란이냐?

아 춥구나, 보일러 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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