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 - 귀농 전도사 이병철의 녹색 에세이
이병철 지음 / 이후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씨앗은 힘이 세다”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초보 농사꾼 강분석 부부의 귀농 일기였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함께 아름다운 삶을 일구어 가는 부부의 모습이 너무 부럽고 존경스러웠던 기억이다.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

과연 이 시대에 늙은 농부에 미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스스로도 궁금하다. 천하의 근본인 농사를 우습게 여기고, 하늘을 다스리는 일을 맡은 농부들을 무시하는 세상. 이런 세상이 온전히 돌아갈 수 없음은 당연하고, 그야말로 미친 세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민주화 투쟁과 투옥, 다시 농민 운동과 환경 운동. 그리고 이후 저자는 이 땅의 진정한 귀농을 위해, 그리고 생태와 환경의 온전한 이어짐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분이다. 귀농이 단순히 도시에서 농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본디 사람이 태어났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저자는 오랫동안 강조해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저자는 “불임의 잿빛 도시”라 표현한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풍요와 편리라는 신기루를 쫓다 결국 우리 스스로를 잃어버린 도시. 자연과의 조화를 위한 생산이 아닌 온통 생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무수한 상품만을 쏟아내는 도시. 우리는 그 곳에 살고 있고, 벗어날 희망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때문에 귀농은 단순한 직업의 전환에서 벗어나 “뿌리 뽑힌 삶에서 뿌리내리는 삶으로, 자연을 거스르는 삶에서 자연과 조화로운 상생 순환의 삶으로,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삶에서 생산적이고 살리는 삶으로, 의존적인 삶에서 자립적인 삶으로 돌아가자”는 뜻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망령이 이 땅을 어지럽게 하기 전부터 우리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하나로 너무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해 왔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이제 돈으로도 다시 얻을 수 없고, 다시는 만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발전이라 말한다. 도대체 무엇이 발전된 것일까.

스코트 니어링은 “더 많이 소유하는 삶 대신에 더 많이 존재하는 삶”을 말해왔다. 당장 삶의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무엇을 소유하기 위해 소중한 우리의 삶을 낭비하는 모습. 그것처럼 어리석고 답답한 모습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하찮은 소유 때문에 자신의 삶 자체를 하찮게 만들고 있다. 이제 사람은 사람으로 평가되지 않고, 소비의 주체, 즉 얼마나 많은 것들을 사 모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된다. 아끼는 삶이 아닌 쓰고 버리는 삶을 위해 평생을 노예처럼 일하는 것이다.

귀농이란 “더욱 삶에서 가난하고 생각에서 풍요로울 수 있”도록 우리들을 이끈다. 소유와 집착에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나눔과 땀의 결실을 안겨준다. 어머니 자연의 위대함에 두 손 모으게 되고, 인간의 하찮은 오만과 방종에서 벗어나 소박함과 진정한 아름다움을 얻도록 해준다.

물론 지금 우리 농촌의 현실은 한없이 무참하기만 하다. 생명의 키우고, 만들어내는 농업을 또 다른 산업으로 규정하고, ‘경쟁력’을 운운한 그 순간부터 이미 우리 농업은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 감히 쌀을 돈과 비교하려 하다니. 자동차와 비교하다니. 우리는 차가 없으면 걸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농업을 죽여 자동차를 팔아먹겠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부였고, 현 정부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엄중한 현실 속에 귀농을 마치 모든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위험한 것일 테다. 하지만 농촌이 이렇게 죽어갈수록, 그 죽어가는 땅에 돌아가 다시 생명을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죽어가는 농촌, 이 땅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땅이 죽고, 농촌이 죽으면 우리 역시 살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나누어 우리들에게 잔잔하고 부드럽게, 때로는 단호하게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지금 이 땅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전하고 있다. 이제 귀농을 준비하시는 분들, 혹은 언젠가 불임의 도시를 떠나 어머니의 땅으로 돌아갈 꿈을 꾸고 있는 분들에게 좋은 마음의 다독거림이 되리라 생각한다.

정부는 경제 상황을 핑계로 기어이 이 땅의 강들을 파헤칠 모양이다. 당장 잠깐의 발전을 위해 후손들의 권리와 몫까지 전부 가져가고 있다. 우리가 진정 그럴 권리가 있을까.

암담한 현실에 이 책은 자그마한, 그러나 한 없이 따뜻한 위로가 될 듯하다.

정말 나는 감히 “늙은 농부”에 미칠 수 없다.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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