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란의 다카포
호란 지음, 밥장 그림 / 마음산책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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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테두리 밖으로 벗어나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주장할 수 있는 세상이 나는 훨씬 탐난다”

호란의 생각 혹은 주장이다. 100% 동의하지는 않는다. 때론 세상의 거친 끝자락까지 가야만 온전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때가 있는 법이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어두운 시기에는 말이다.

클래지콰이의 음악을 들어본 경험이 없다. 지인들이 그들의 음악을 “괜찮은”것으로 평가하기에 그런가보다 했다. 당연히 호란이란 가수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내가 호란을 알게 된 것은 우습게도 음악이 아닌 개그 프로와 그녀의 독서 편력 때문이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멋들어진 서평은 부러움과 동시에 자그마한 축복이다. 물론 서평이란 것은 온전히 읽은 이 자신 만의 몫이 분명하지만, 그 기쁨과 설레임을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재능이자, 선물이다.

호란의 책을 덮고 오래된 자료 더미를 찾아 예전 뮤지션들에게 받았던 사인을 찾았다. 그리고 혼자 키득키득 웃어버렸다. ‘She's Gone’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렸던 스틸 하트의 보컬과 베이시스트가 왔을 때 받았던 사인과 전설의 그룹 헬로윈의 보컬의 사인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음악적 스승 중 하나인 메틀리카의 내한공연 때 무수히 많은 락앤롤 정키들을 제쳐가며 받았던 베이시스트 제이슨 뉴스테드의 피크~! 아 그 감동을 무어라 표현할까.

하지만 정작 내가 웃은 이유는 한 때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미국 여가수 데비 깁슨의 사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Stay Cool!”이라고 적혀있는 그녀의 사인. 내가 언제, 그리고 왜 이 여가수의 사인을 받았는지, 순간 난 메멘토였다.

호란은 우선 뮤지션이다. 유감스럽게도 난 클래지콰이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아는 지인들이 꽤 괜찮다고 하니 괜찮은가보다 생각할 뿐이다. 정작 내가 호란이란 음악인을 알게 된 것은 그녀를 패러디한 개그프로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단순한 요즘 시대의 가수가 아니라, 꽤 심각할 줄 아는 독서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관심이 갔다.

사실 난 이런 종류의 책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장정일의 독서일기와 같은 어떤 형식과 치열한 고민, 정성이 깃들어져 있는 책들은 제외겠지만, 대부분 이름 좀 알려졌다고 하는 이들의 서평 모음이나 잡다한 일상사와 자신의 아름다운 소개가 담긴 에세이들은 나로 하여금 감동 보다는 “So What?”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호란의 책에서도 그리 큰 감동은 기대하지 않았고, 기대한 것이 없으니 실망도 크지 않았다. 책은 그냥 호란의 서평, 자신이 즐겨 듣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삶에 대한 소개 등등이다. 그녀 자신 역시 비꼬았던 저자에 대한 과도한 찬사 등이 그녀 책에서도 역시 옥의 티처럼 드러나는 것이 어떤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호란의 책이 가치를 가진 것은, 그녀의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재능과 위치와 재력 등등 모든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그야말로 단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온전히 불태우려 한다. 그것이 그녀에게서 내가 배우고 싶었던 부분이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옛것에 대한 건방을 떨지 않는 자세. 음악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중요한 소양이다. 호란은 정말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요새 것들”답지 않은 능청스러운 프로 정신이 있는 뮤지션이다. 그 점이 나에게 책을 읽은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녀의 그 단단한 야무짐과 따뜻한 순수함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녀가 소개한 책들, 음악을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즐거운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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