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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함정 - 이실문명총서 5
로널드 라이트 지음, 김해식 옮김 / 이론과실천 / 2006년 12월
평점 :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지금 당장 희망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드물다. 모두들 실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떨게 하는지도 사실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인간의 삶에서 경제를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어버렸고, 이제 이의를 제기하는 이도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듣기 싫어하는 말이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단어다. 도대체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할지도 의문일뿐더러 성장만이 지고지순의 가치라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성장은 언젠가는 멈출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성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인간다운 삶”이 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이 책은 역사라는 것이 생기기 전부터 인류가 걸어온 길을 살피며, 우리가 생각하는 진보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특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네안데르탈인을 무참히 학살하고 멸종시켜 생존을 이어간 크로마뇽인의 모습이었다. 물론 정확한 증거는 찾을 수 없겠지만, 저자는 아마도 두 종족의 공생보다는 크로마뇽인의 일방적인 학살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슬프지만,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인간은 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타자에 대한 공격, 멸종을 통해 생존해 왔다. 그 이후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사라진 생물종이 몇이나 되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지금도 1년에, 한 달에 얼마나 많은 생물들이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을까.
과거에 비해 지금의 삶이 보다 진보적으로 발전해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가 없었을 때에는 지금처럼 먼 거리를 빠르게 갈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해마다 육중한 기계에 치여, 그리고 깔려 죽는 이들이 지금처럼 엄청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살이라는 것 역시 현대인들의 불치병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자살을 단지 개인적인 문제로 돌리는 것은 권력의 비겁한 변명일 뿐 논리적이지 못하다. 자살은 결국 그 사회가 개인을 살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각종 범죄의 증가는 진보라는 단어를 다시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살리기 위해 부심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 역시 자동차 산업을 위해 이미 미국산 쇠고기를 받아들였고, 그보다 더 한 것들도 기꺼이 받아들일 태세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의존하는 모습은, 아이러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다른 그 무엇으로도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보다는, 단지 그 수출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만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과연 지속가능한 수출이 가능할까. 이미 지구상에 모든 사람들이 자동차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생산해 놓았는데,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선진국들은 중국, 인도의 경제력이 높아져 지금 미국인들과 같은 비율로 차를 소유하게 된다면 재앙이 올 것이라 말한다. 세계에서 하루 생산하는 석유의 양보다 많은 양을 중국이 소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습다. 지금까지 미국의 자동차 보유수에 대한 질문보다는 중국 등 신흥경제강국의 자동차 소유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자국 이기주의에 극한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지속가능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다 같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조금씩 가난해져야만 된다. 누구나 조금씩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답이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자신들의 편안함을 버릴 생각이 없다. 뒤따라오는 국가들 역시 희생하고픈 마음이 없다.
결국 가는 데까지 간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는 과거의 교훈들을 배웠는가, 아니면 다음 차례의 희생이 될 것인가” 묻고 있다. 지구는 이미 포화상태이고, 더 이상 인간이란 종을 받아줄 여력이 없어 보인다. 온 세계가 사막이 되고, 이 땅과 바다에서 더 이상 착취할 것들이 사라질 때, 과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답변은 바로 지금, 우리들이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