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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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엔 정말 나쁜 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러한 나쁜 이들이 권력을 휘두르고 부귀를 누리는 것을 볼 때면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가 지옥은 아닌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또한 세상엔 아름다운 이들도 많다. 한없이 착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전해준 이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엔 존재한다. 또한 그런 어진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권정생 선생님 역시 우리에겐 한없이 고맙고 소중한 분이었다. 평생을 따라다닌 육체의 고통을 견디며, 선생님은 우리에게 감당하지 못할 사랑을 전해주셨다. 선생님께서 지친 몸을 버리시고 자유롭게 하늘로 올라가신지 1년하고도 육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는 선생님들을 그리워한다.

사실 난 선생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아주 어린 시절 선생님의 “달맞이산 너머로 날아간 고등어”을 읽었던 기억이 있고, “몽실언니”의 추억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동화작가로서 많은 작품을 써오시며 가난하지만 절대 가난하지 않은 삶을 살아오셨다는 것 정도뿐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동화작가를 떠나 참된 신앙인이었고, 참된 어른이었고, 또한 참된 어린이었다. 자연을 한없이 사랑하셨고, 그런 자연이 무지와 탐욕으로 가득한 인간들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어 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셨다.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하며, 자연과 등을 돌리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셨고, 그 착한 심성들이 오직 돈을 위해 경쟁하고 남을 짓밟는 야만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절망하셨다. 그리고 한없이 우시고 우셨다.

우리 곁을 떠나가신 선생님을 기억하고 선생님의 뜻을 잊지 않고자 펴낸 이번 개정증보판은 역설적이게도 선생님이 그렇게도 싫어하셨고, 없어지길 바라셨던 군대, 즉 국방부에 의해 더욱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선생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얼마나 기막혀 하실지….

선생님은 글을 통해 남북의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서로 총칼을 겨누고 있는 것을 슬퍼하셨다. 고향을 등지고, 이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이산가족들을 염려하셨고, 그들이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도록 만든 남북 양쪽 모두를 꾸짖으셨다. 그리고 책은 또한 현실 기독교의 수많은 문제점들을 매우 냉정하게 비판하셨다. 오직 권력과 부귀를 위한 종교는 이미 종교가 아니라고 질타하셨고, 초심으로 돌아가 자연과 인간의 생명을 위해 복무하는 종교가 되기를 기도하셨다. 선생 스스로 너무도 독실한 신앙인이었기에 이런 비판은 참으로 진실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현 정부, 그리고 국방부에게는 장병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정신을 흐트러뜨릴 수 있는 위험한 불온서적으로만 비쳐질 뿐이었다. 분노와 한심함을 넘어 측은하기까지 하다. 그러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을 선생님은 얼마나 안쓰러워하셨을까.

이제 선생님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는다. 선생님의 따뜻한 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많은 아이들과, 또는 어른들까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따뜻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국방부에서 아무리 선생님의 글을 막으려 해도, 기독교 권력이 아무리 선생님을 폄하하려 해도, 우리에게 우뚝 솟은 선생의 존재감을 무너뜨릴 순 없다. 어찌 보면 이미 선생님은 우리의 이웃, 우리들의 정다운 ‘하느님’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 개미 한 마리, 쥐와 닭과 개와 소. 이 세상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고 아꼈던 선생님.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가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내가 원하는 것으로 누군가가 잃고 있지는 않은지, 정말 사람이란 존재에 맞도록 사는 것이 무엇인지. 선생님의 글을 통해 깨우치곤 한다.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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