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파워 - 외교 전문가 조지프 S. 나이의
조지프 S. 나이 지음, 홍수원 옮김 / 세종연구원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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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실정치학자들에게 이상주의자들의 가치관, 말 그대로 이상은 헛된 꿈에 불과하다. 이 세상은 적으로 가득 차 있으며, 잠시라도 방심할라치면 여지없이 패배하고, 국가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세계 모든 국가들은 겉과 속이 전혀 다른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으며, 눈에 보이는 무력 전쟁 외에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전쟁을 매일 치르고 있다.

민주주의의 확산과 시장 경제의 도입이라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은 사실 석유의 확보와 함께 중동 지역에서의 이스라엘의 패권을 유지시키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이스라엘만이 중동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국가라고 규정짓는다. 다른 수많은 국가들은 그야말로 “대미 테러공격의 근거지일 뿐만 아니라 현대화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현대화란 무엇일까. 그는 민주화, 경제성장, 세계 경제와의 연관성 등을 거론한다. 아울러 중동 지역의 절반이 문맹이라는 점도 빼놓지 않는다. 한 마디로 아직도 미개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중동 지역 국민들의 연간 소득은 형편없는 수준임에도 국방비 증가율은 무서울 정도로 높다고 지적한다. 이런 지적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비를 지출하고 있는 국가가 미국이라는 점을 본다면 우스운 지적이다. 물론 군비 지출 부분도 저자가 지적했지만, 저자는 군비 지출 비율과 소프트 파워를 확보하는데 필요한 비용 지출이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언급했을 뿐이다.

저자는 더 이상 미국이 오만에서 벗어나 겸손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다른 국가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명령과 경제적 제재, 혹은 매수보다는 장기적 차원을 바라봐야 하더라도 소프트 파워를 보다 더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듣기 좋은 말이다. 하지만 국내 대부분의 현실정치학자들이 하는 말, 즉 “무식하고 미개한 제국(중국, 인도, 러시아 등을 표현하는 것이다)보다는 젠틀하고 세련된 제국(당연히 미국을 비롯한 영국 등 서구를 말한다)의 영향 하에 있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말과 무언가 통하지 않는가.

저자는 미국의 소프트 파워가 꽤 유용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전 세계 국가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명분과 정책, 특히 외교정책을 통해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보다 늘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소프트 파워라는 관점에서 미국의 장점은 분명 있다. 미국의 문화와 가치관이 이미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 저자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저자 역시 미국의 소프트 파워에 대한 지나친 긍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중동이나 일부 아시아, 북미에서 미국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들이 작용한 결과다. 그것이 물론 저자가 언급하긴 했지만, 장기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결코 미국의 문화, 가치관의 확산 등으로 쉽사리 사라지진 않는다.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을 싫어하는 이들이 단지 미국의 번영에 시기심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미국의 독단과 위선에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반미 정서가 발생했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저자는 중동 지역을 언급하며 “일부 종교적 근본원리주의자들이 미국을 증오하는 것은 바로 개방성과 관용, 기회제공과 같은 미국의 가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피해갈 수 없다. 미국을 싫어하고, 증오하고, 거부하고, 궁극적으로 대항하려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이다. 부정할 수 없다. 살기 위해 미국에 반대하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국가 하나가 전 세계에 끼치는 악영향은 실로 설명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고 또한 지속적이다. 이러한 피해가 결국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지구상의 구성원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가난한 대륙의 국가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간다. 그런데 단지 미국이 건방지다고, 혹은 너무 잘 산다고 배 아파서 비행기로 무역센터에 돌진하고, 폭탄을 안고 뛰어들까?

역사적 정당성의 부재를 안고 태어난 대한민국은 태생적 한계로 인해 지금까지 미국의 영향 하에 생존해왔고, 적어도 권력자들은 단 한 번도 미국 밖으로의 세계를 꿈꾸지 않았다.

때문에 미국의 존망이 우리의 존망이 되고, 미국의 실패는 우리의 실패가 된다. 절대적 믿음이 되어버린 미국 중심주의는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몸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저자의 주장은 미국의 입장에서 매우 유효하고 타당성이 있다. 적어도 미국의 번영을 고민하는 이러한 학자들이 있다는 것은 미국에게 행운이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소프트 파워에 대한 정의와 해석 역시 우리의 처지에 맞게 생각해봐야 한다. 한류 문화가 우리의 대표적 소프트 파워가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있다. 진정한 소프트 파워는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것들에 굳이 “파워”라는 단어를 넣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못한다면.

이 책은 아무 가치 없는 쓰레기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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