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만감일기 - 나, 너, 우리, 그리고 경계를 넘어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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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 적어도 내게는 이념의 성향에 상관없이 그렇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책이 있다. 그러한 글이 있다.

박노자 선생의 글 역시 그러한 분류에 속한다. 자신이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우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그의 글은 웃으며 읽을 수 없다. 때문에 그의 글들은 가치가 있고, 적어도 한 번은 읽을 만한 것이다.

 

한반도 구성원들의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대해 가슴이 아프도록 날카롭게 비판하는 선생의 글은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좌와 우를 따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빨갱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이나, 대한민국에 너무 가혹하다고 불평하는 이들 모두 틀렸다.

사실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모두 치열한 국수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에 빠져있지 않은가. 부정하기에는 지금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다.

얼마 전 신기전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알게 되어 기뻤다는 관람 평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보는 내내 나는 답답함을 참기 힘들었다. 만백성을 위해서는 얼마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오만한 생각.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권력에 항거하던 주인공 역시 결국엔 마치 영화 300의 주인공처럼 국가를 위해 처절히 살육에 동참한다. 

그것이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일까. 아직도 군대란 조직을 통해 이 땅의 젊은이들을 가둬두며 온갖 남성우월주의에 물들이는 이 국가라는 존재가 그렇게 자랑스러운가. 우리가 중국을, 여진을, 왜를 무찌르고 살육하면 그것은 자랑스러운 역사가 되는 것인가.

이런 종류의 어설픈 할리우드 영화는 더 이상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국가를 필요악 정도로 생각한다는 박노자 선생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조국, 민족애, 애국심, 우리라는 틀 안에서 그동안 무수히 저질러왔던 공권력의 악행과 부조리를 겪었으면서도, 우리는 그래도 국가라는 틀 안에서 안주하고픈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국가라는 틀 안에 살기 위해 타인을 짓밟아야 하고, 노예처럼 순응하며, 왜 사는지도 모르고 다만 살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인간다움이요, 행복이라 느끼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소수의 행복과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언제나 국가를 위해 희생할 권리만 간직한 채 하루하루 생존해나가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것의 부당함을 없애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인간적 책임을 망각하도록 유도하는 사회, 그러한 국가는 필시 멸망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을 비롯한 온갖 비정상적 패권체제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이대로 가다가는 추악한 멸망이 필연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만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수많은 민중들의 희망을 밟지 않는 세상이 올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노자 선생의 글은 매일 매일 썩어버릴 수 있는 자본주의 구성원들에게 자각과 뼈아픈 반성을 줄 수 있는 각성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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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09-08-23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잘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

님의 리뷰를 보니까 신기전 은 건너 띄어야 겠네요

메틀키드 2009-08-2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엔 좀 그렇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