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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실은, 인류는 애당초 생존한 게 아니라 잔존해왔다. 만약 인류가 생존한 것이라면 60억 중 누구 하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대체, 왜, 살고 있는지를, 말이다. 영문도 모른 채, 말하자면 이곳에서 우리는 너무 오래 잔존해왔다.』 255p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태어나고, 또 죽어갈까. 신문 부고란을 들여다보면 하루에도 나름 잘났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나, 그 부모, 친척들의 죽음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나름대로 자신들은 인류까지는 안되더라도 한국에서는 ‘깜빡’할 종자들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못’과 ‘모아이’처럼 인류가 ‘깜빡’한 사람들의 죽음까지 합한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갈까.
세상은 누가 대통령이 되던, 누가 사형을 당하던, 누가 강간을 하고 또 당하던, 변함없이 지나가는 것 마냥 보인다. 어찌 보면 허무할 수도 있지만, 일일이 신경 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 없기도 하다.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야말로 ‘박 터지게’ 살아가는 사람들. 과연 우리가 살아야 할 영문은 무엇일까. 알면 내가 여기에 안 있지.
박민규의 소설을 처음 접했다. 이전에 유명했던 작품들보다 핑퐁을 먼저 읽은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아무튼 특이한 소설가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차에 나름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특이한 작가라고는 생각들지 않았다.
그냥 솔직하게 떠들어대고, 써내려가는 것뿐이라고 느꼈다. 그게 이 작가의 장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잘난 매스컴 덕분에, 또 한정된 시간을 핑계로, 인류가 살아가는 모습, 지구가 돌아가는 모습의 극히 일부분만을 듣고, 보고, 느끼며 살아간다.
살벌하게 많은 이들이 살벌하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개죽음 당하고, 또 어딘가 에서는 쥐뿔 한 것도 없어 보이는 인간들이 살벌하게 호화롭게 살아가는 모습. 좁아터진 한국 안에서도 그러할진대 조금 더 큰 세계적으로다가 보자면 더 살벌할 것임은 틀림없는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가뜩이나 멍청한 인간이 더 한정된 이야기들만 보고, 듣고, 느끼기 때문에. 결국은, 바보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몽둥이나 칼, 하다못해 권총이라도 직접 사용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버튼 하나 실수로 눌러버려도 그 몇 천 배에 달하는 인간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 사실인데,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사실. 아는 것 보다는 모르는 척, 살아가는 것이 더욱 편한 세상.
그 편한 세상에 오늘도 영문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저자의 나머지 글들은 어떨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일단 성공한 것이다.
실버스프링의 핑퐁맨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