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힘이 세다 - 앙성댁 강분석이 흙에서 일군 삶의 이야기
강분석 지음 / 푸르메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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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시골에 내려오기 전까지는 매끼 밥을 먹으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내 밥상에까지 오르게 되었는지를 생각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것은 돈만 있으면 생겨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의 일이었다. 내 손으로 논에 모를 심고 잡초를 뽑고 벼를 거두고 나서야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상품이 될 수 있는 게 아님”을 몸과 마음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 227p

 

정말 진지하게는 아니었지만, 귀농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농사라고는 군대 시절 짬밥을 처리해주는 아저씨네 논에 가서 모심고, 잡초 뽑고, 낫질하고 등등을 해 본 경험밖에 없는 내가 귀농을 생각했다는 것은 그만큼 농사를 우습게 봤다는 것과, 또 그만큼 도시에서의 삶이 지쳤기 때문이었다.

변명을 한다면 농사를 우습게 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과 시련의 연속인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사시는 분들이 친척 중에도 계셨고, 나 역시 유년시절에는 논과 밭을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 그 와중에 한 여름 뙤약볕에도 묵묵히 일하고 있는 많은 농부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난 농사를 우습게 본 것이었다. 앙성댁 강분석 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서는 해선 안 된 말이 두 가지 있다고 한다. 그 첫 번째가 “하다하다 안 되면 다 때려치우고, 장사나 하지 뭐~”이고, 두 번째가 “에이, 빌어먹을! 다 때려치우고 농사나 지으러 갈란다!”이다. 두 직종 다 힘들기로 친다면 세상 어떤 것들보다 힘든 업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절망한 이들이 한다는 소리가 가장 어려운 업으로 뛰어들겠다니….

농군과 상인이 들으면 한 대 쥐어박을지도 모르겠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땅을 일군다는 것이다. 땅을 사랑했기에 투기를 했다는 기가 막힌  분의 항변도 기억에 남지만, 땅에서 태어나 땅을 일구다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본디 인간의 업이었음을 기억한다면, 농사는 결국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농군들은 그리 행복하지 못하다. 고된 노동의 대가는 죽음일 때가 점차 많다. 끔찍한 일이다. 어느 나라 어느 농군이 재배했는지도 모르는 농산물로 우리 농군들이 죽어가는 현실. 결국 위대한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놓은 또 하나의 비극이다.

강분석 님은 40여 년 동안 서울에서만 살다 어느 날 갑자기 ‘그냥’ 시골에 갔다. 그리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모르는 이가 보면 팔자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시골에서의 삶이 어떤지 몸으로 절감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님의 모습은 팔자 좋은 아낙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님은 결국 행복하다고 말한다. 비록 돈은 안 되고, 몸은 고달프지만, 행복하다고 한다. 자연에 채이고, 사람에게 상처받고, 돈에 울지만 행복하다고 말한다. 왜일까. 님은 자연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생명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밥 한 톨의 치열함, 복숭아 한 톨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매미가 자지러지게 우는 여름 날 원두막 위에 올라 이웃과 정겨운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누는 강분석 님의 웃음이 보이는 듯하다. 님의 책으로 귀농에 대한 환상은 깨졌을지 몰라도 자연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 그 살아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깨우침으로 인해, 어쩜 또 다른 귀농을 꿈꾸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러모로 고마우신 분이고,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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