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임길택 지음 / 보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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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 공부를 할 때였다. 영남이와 정옥이가 천 자리 수를 배우는 중인데, 내가 “400원과 4,000원 중 어느 돈으로 과자를 사 먹을래?”하고 물었다. 그러자 두 녀석이 다 같이 “400원으로요.”했다. 내 생각과는 반대였다. 정옥이는 400원이 4,000원보다 사 먹기 쉽다는 거였고, 영남이는 그런 큰 돈으로 무얼 사면 어머니, 아버지한테 맞는다고 했다.」
- 1994년 4월7일 목요일. 오후부터 흐림.

내 유년시절 임길택 선생님과 같은 스승이 계셨나 곰곰이 생각해봤다. 중학 시절에는 존경하는 스승이 한 분 계셨지만, 초등학교 시절은 아득하다.


3학년 때 유일한 남자 선생님이 한 분 계셨는데(나머지 학년은 모두 여자 선생님이 담임을 하셨다), 참 자상하시고, 장난기 가득한 분이었다는 기억은 난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시절 남자 선생님은 여자 선생님에 비해 확실히 적었다는 기억이다. 아마 지금도 그리 달라지진 않았으리라. 여자 선생님도 물론 좋지만, 남자 선생님도 참 좋았다는 생각이다.

임길택 선생님은 결코 길지 않은 시간동안 세상을 보내시다 성급히 가셨다. 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의 아픔과 눈물을 함께 사랑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은 지금도 변함없이 많은 이들을 따뜻하게 해준다.

탄광에 들어가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이유로, 해마다 아이들을 가슴 속에 하나 둘 담아둘 수 있었다는 이유로 선생님은 자신이 교사인 것을 크게 행복하셨다. 어찌 보면 너무나 소박한 그이의 마음이 아이들의 눈높이와 맞지 않았을까.

순간적인 노여움으로 아이들을 혼내다가도, 이내 미안해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던 ‘아이’같던 선생님.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퇴학시켜버리겠다 윽박지르고, 뒷돈 받는 것을 당연시하고(물론 아닌 선생님들도 많으시리라. 하지만 내 경험상 그 반대인 분들도 많았다. 임길택 선생님은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촌지를 주는 것을 ‘개밥 준다’는 용어로 표현한다며 슬퍼했다), 아이들의 꿈보다는 대학 입학의 성과만을 더욱 중요시하는 지금, 임길택 선생님 같은 분들이 더욱 그립고, 아쉽다.

모든 글들이 하나 같이 소중하지만, 특히 4부 민들레반 아이들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다. 특수학급, 그러니까 학습능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많은 웃음과 감동을 전해 준다.

아름다운 선생님, 그리운 선생님. 자신의 유년시절을 생각할 때, 임길택 선생님과 같은 분들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번도 생전에 뵌 적은 없지만, 참으로 그리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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