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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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동무만큼 확고하게 모든 동물이 평등이라는 걸 믿는 동물도 없을 거요. 여러분들이 스스로 모든 일을 결정한다는 데는 나폴레옹 동무도 백 번 찬성이오. 그러나 동무들, 여러분은 가끔 틀린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럴 경우 우린 어찌되겠소? 만약 여러분이 스노볼과 그 황당한 풍차 계획을 지지했더라면 어찌될 뻔했소? 모두 알다시피 스노볼은 범죄자요」- 53p


혁명은 반드시 스스로 배신하게 되어있는가? 그렇다면 혁명은 애시 당초 무의미한 것이거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는가?

조지 오웰이 말하고자 한 것은 단순한 혁명이 위험성이었을까. 인간, 인류에 대한 원초적 불신이었을까. 동물농장은 주지하다시피 스탈린 시대의 소비에트를 풍자하고 있다. 하지만 비단 스탈린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길지 않은 역사 속에 동물농장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 오히려 스탈린과 같은 무자비한 독재자보다는 일상 속에 ‘평범한 독재’를 추구하고 있는 수많은 국가들의 현실이 더욱 처참하고 위험한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시켜버린 박정희 정권의 유산으로, 그 이후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어물어물 넘어온 결과로, 지금 우리의 삶은 돈이 아닌 그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여성의 성공이 사회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는 “레미안”에 사는 것이 더욱 성공한 것이고, 남자는 권력과 돈을 놓는 순간,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그 사람의 인격, 그 사람의 영혼보다는, 당연하게도 배기량과 평수가 평가된다.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을 외고에 보내기 위해 혹사시키는 부모들은 자녀들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해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결국 돈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서 호강하라는 애절한 마음이 더 크다.

그리고 국가는 사람들에게 사유의 시간, 성찰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한 시간도 빠듯하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경제 성장”을 위해 일하라고 다그친다.
그리곤 죽는다.

평생을 뼈를 깎는 고통으로 일해 온 ‘복서’는 결국 자신의 죽음마저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들을 위해 바친다. 복서의 죽음은 위스키 한 상자로 대체되는 것이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복서인가, 나팔을 불고 있는 양떼인가, 돼지들인가…

쥐들과 온갖 추악한, 영혼 없는 존재들이 국가를 이끌어가고 있는 지금,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그 의미를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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