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간 2008년 5월 17일~5월 21일 / 독서번호 949




박노자 ․ 허동현 지음 / 푸른역사 펴냄 (2003년)




사실 6․25 전쟁 이후 한국은 미국이라는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에 군사․정치․경제적으로 종속된 ‘식민지’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면 우리는 해방 후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는 미국과 긴밀한 유대를 맺고, 이를 이용하여 역사상 최초로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 속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허동현, 48p




한 세기 전 우리 자신의 눈으로 서구 근대 읽어 들이기에 실패한 역사를 되새겨보면서, 한자 교육을 게을리한 결과 한 세기 전 조상들이 쌓아놓은 정신적 보고에 쉽게 다가갈 수 없게 되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날마다 쏟아져 들어오는 새로운 개념과 현상들을 우리 언어로 표현하는 데 소홀한 결과, 이제는 우리끼리도 최신 정보와 지식을 교류하려면 영어 단어를 빌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아닐까요?

- 허동현, 62p




정치적으로 독립을 지향했다 해도, 새로운 문명을 메이지 일본이 중역하며 변질시킨 서구의 기본 틀 안에서 이해한 것이야말로 이 시기 한국의 애국적 계몽운동의 가장 큰 비극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들은 일제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했지만, ‘경쟁’과 ‘국민’이라는 일본화된 서구 개념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비극의 진실을 이해하여 적어도 상황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남과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으면서 살 권리, 개성의 다양성을 존중받을 권리를 보장해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 박노자, 71p




'보수‘라는 말은 기득권의 보존과 기존 가치체제의 보존이라는 서로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보수를 자칭하는 사람들 중에서 반대쪽 사람들에게까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가치보다 기득권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 한국 ‘보수’의 최대 약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 박노자, 83p




당시 지식인들은 자신의 어깨 위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입을 막아야 하는 반침략의 과제 외에도 자체 내의 봉건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반봉건의 책무도 함께 짊어졌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 허동현, 88~89p




어떻게 보면 한 세기 전 한반도를 열강의 즐거운 ‘이권 사냥터’로 만들었던 조선 정부의 이권 양여정책도 이러한 이이제이에 입각한 균형의 책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 정부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에게 유전 개발권을 준 것처럼 말이지요.

...

재미있는 것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최강대국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진짜 제국주의 국가들은 조선에 큰 욕심이 없었고, 후발 제국주의 국가인 러시아와 미국은 그다지 절실하지 않은 전략적․경제적 동기만 갖고 있었던 데 비해, 제국주의라고 할 수도 없는 부차적 제국주의 국가인 청․일 양국은 조선에 매우 절실한 이해가 걸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 정부는 청국과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러시아와 미국을 이용하려 했던 것 아닐까요? 지금 미국이 동아시아 지배를 위해 한국에서 추구하는 전략적 동기가 그때 미국에게는 없었던 것이지요. 이것이 당시 한국인들이 미국을 짝사랑한 진짜 이유가 아닐까요?

...

현명한 책략과 견실한 자강, 이것이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들의 다툼에서 우리의 번영과 양심을 지켜줄 방패일 겁니다.

- 허동현. 231~233p




약육강식의 세계를 초월하려 한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결국 이상향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 구도의 r길에서 적어도 한 가지는 얻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는 사해동포적 인류주의의 이상과 실천입니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은 20세기 초반의 극동권 사회주의자들이 결코 모두 전체주의적 색깔의 레닌, 스탈린주의에 홀린 것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홉스봄의 표현대로 당시는 ‘극단의 세기’였던 만큼 한․중․일 삼국의 좌파운동에서 스탈린주의의 여러 갈래들이 패권을 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소수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듯합니다.

- 박노자, 239~240p




그러나 경쟁을 위주로 하는 반인륜적 자본주의 사회를 평화적으로 개조시키는 데에 절망한 유럽의 일부, 극동의 소수 아나키스트들이 파괴주의의 유혹에 빠지긴 했어도, 대다수 아나키스트들은 온갖 역경속에서도 아나키즘의 원칙대로 평화적 수단만을 썼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1920~30년대 극동의 아나키스트들에게 배울 점은 일본인 기자의 사례가 보여주듯 초국가주의․초민족주의 아닌가 싶습니다.

- 박노자, 246p




약탈을 당하는 국립박물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오직 석유와 관련된 정부 부서만을 집중적으로 보호했던 바그다드 점령 직후의 미국의 태도는, 자원 약탈밖에 아무것도 모르는 오늘의 미국 극우파 통치자의 기본 자세를 잘 보여줍니다. 추악한 형태이긴 하나, 후세인 정권은 야수적인 제국주의 세계에서 이라크 주민들의 집단적 생존을 담보하는 국민국가였던 것입니다. - 박노자, 267p




역사에 대한 편견 가운데 하나가 역사를 무슨 심판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

역사는 도덕주의에 입각한 심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자기 행동의 도덕적인 책임이 각자의 것이듯, 과거 인물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도 각자가 하는 것이지 역사학자가 하는 것은 아니죠. 그런 점에서 현실적인 문제들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역사학자가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박노자, 306~307p




역사는 시민 개개인의 것입니다. 시민 개개인이 알맞은 역사 해석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자신만의 진실을 역사의 해석을 통해 찾을 권리가 있습니다.

...

(역사학자는) 시민들에게 역사 읽는 여러 방법을 이야기해주는 소개자, 내레이터이자 과거 일의 많은 해석자 가운데 한 사람일 뿐입니다.

- 박노자, 3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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