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나의 여행
임영신 지음 / 소나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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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

나는 이리 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나 이제 내가 되었네

- 메이샤튼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는 광화문 사거리. 서점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던 중 우연히 한 소녀를 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촛불 하나가 켜져 있었고, ‘Peace In Tibet’이라는 피켓이 들려있었다. 많은 이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거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모른 채 지나갈 수 있는 그 거리에서 소녀는 홀로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촌을 말한다. 또 많은 이들이 세계화를 말한다. 하지만 그리 유심히 살펴보지 않아도, 그들이 말하는 지구촌, 세계화는 결국 자본과 시장의 지구촌, 세계화임을 알 수 있다. 지구라는 같은 공간에서 어울려 숨 쉬며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잊혀 지기 일쑤다. 중국 올림픽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티베트의 경우는 오히려 행복한 경우에 속할지도 모른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이라는 가장 큰 상처를 안고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여행하는 평화여행자 임영신은 아이가 셋이나 있는 어머니다. 하지만 그녀는 2003년 이라크반전평화팀으로 이라크로 달려가 평화의 증인이 되고자 했다.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 않느냐는 주위의 걱정에 당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늘 여자와 아이들입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경제봉쇄로 여성들은 영양결핍과 빈혈에 시달리고 이라크 아이들의 25%가 2.5kg 미만의 저체중아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도 달마다 5~6천 명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간단한 약이 없어 죽어갔고, 걸프전 폭격의 결과로 암과 백혈병, 기형으로 무거운 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육은 이미 파괴되었고, 그들의 삶은 미래마저 빼앗아가려는 전쟁의 전야에 있습니다. 만나는 이들마다 제게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그곳에 가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어쩌면 제 아이들을 위해 그곳에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평화를 어떻게 지키는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그 아이들 또한 평화로운 땅에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후 임영신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알기 위해 띄운 피스보트를 타고 베트남, 인도, 스리랑카, 에리트리아, 레바논을 여행하며 많은 이들을 만나게 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 전쟁의 상처로 복수를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살아가는 아이들, 용서와 화해로 모든 이들에게 평화를 안겨주려 노력하는 사람들. 저자가 만나는 모든 이들은 평화와 사랑을 위해 노력하고, 또한 평화와 사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리고 독일, 프랑스, 스위스, 필리핀 등을 넘나들며 평화를 위한 작은 실천을 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평화라는 것. 그것은 공기와도 같이 평소에는 그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공기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듯 지금 세계 곳곳에는 평화라는 공기가 희박하여 죽어가는 이들이 넘치고 있다. 그러한 이들을 위한 여행, 평화로 가기 위한 여행을 멈추지 않을 것임을 저자는 다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하여 레바논에 적지 않은 수의 군인을 파병했다. 과연 그 나라 국민들이 우리군의 파병을 원하는지, 하다못해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지조차 묻지 않고 이루어진 파병이었다. 우리는 평화를 말하며 그 곳에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는 다만 점령군일 뿐이다. 

아직도 2만 명이 넘는 타국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한국. 1990년까지 외국의 원조를 받으며 살아온 한국. 그리고 이제 평화라는 이름 뒤에 감추어진 국익이라는 괴물을 위해 타국을 점령하고 있는 한국. 임영신의 평화여행은 이러한 모순된 우리의 모습을 솔직히 고백하고, 사랑과 평화로 용서와 화해를 청한다. 평화의 시작은 평화로운 관계에서 시작한다고 했던가. 소중한 평화를 만들어가는 여행에 잠시 함께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는 것으로 평화가 오진 않아요.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 울 수 있을 때, 평화는 시작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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