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행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독서기간 2008년 4월 13일~ 4월 16일 / 독서번호 923

오세영 지음 / 예담 펴냄 (2006년)

‘만천명월주인옹 萬川明月主人翁.’ 정조는 스스로 높이 떠서 온 천하를 환히 비추는 달이 되고자 했다. 그는 군주란 신하와 백성들을 이끄는 스승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아마 정조가 더 오래 살았다면 조선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정조는 1800년, 49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고, 개혁의 꽃도 지고 말았다. 한편 벽파의 득세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변화의 물결이 이미 그 흐름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거세게 밀려왔기 때문이다.

정조의 개혁정책은 시대의 변화를 정확하게 읽은 것일까. 공허한 이상론에 불과했을까.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흔히 우리는 낡은 것에 비해서 새 것에 가치적 우위를 두기 쉽지만 그 반대의 경우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초의 정도전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강력하게 개혁을 추진했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고, 조선  말의 흥선대원군은 때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쇄국정책을 펼치다 조선을 멸망으로 내몰고 말았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이 세상 이치란 이것과 저것으로 양분할 만큼 간단치 않다.

‘개혁과 보수.’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화두가 개혁과 보수일 것이다. 역사는 변화를 거부하다 멸망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기도 하고, 이념 과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정도전과 흥선대원군은 그 한 예일 뿐이다.

미루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으며 변화의 지혜와 전통의 슬기를 함께 아우르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에 순응해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고 발전시킨 역사 속 인물들의 여유와 관용이 필요하다. 정조 시대를 비롯해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 당파간의 다툼을 벌이던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과연 갈등을 품어 안고 상생으로 가는 길은 없는 것일까. - 312~313p

〈서평〉

영화나 소설에 대해 비교적 후한 평가를 주는 편이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에 일가를 이룰 정도의 이해가 깊은 것도 아니거니와, 비판을 위한 비평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실을 왜곡하거나 특정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려 꾸며진 예술 작품들은 쓰레기로 보는 경향은 있다.

그런 면에서〈원행〉은 충분히 흥미도 있고, 또한 정조가 꿈꾸었던 진정 살기 좋은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잠시나마 생각하게 만들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천대 이갑영 교수는 저서〈자본주의에 유죄를 선고한다〉를 통해 저항이 사라진 사회는 이미 죽은 사회라 했다. 기득권의 부당한 독점과 착취에 맞서 싸웠던 수많은 이들의 저항과 투쟁, 죽음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긴 세월을 통해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이리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조를 시해하려 했던 수구파와, 역시 목표는 같았으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문인방 세력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진정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이 시대의 유토피아를 나름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시대의 정조는 누구일지, 이 시대의 정약용, 심환지, 문인방은 누구일지, 그리고 이 시대의 장인형은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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