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모헤브 코스탄디는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신경과학자, 과학작가다. <신경가소성>은 168쪽의 작고 얇은 책이다. 내용은 다르다. 방대한 내용을 간결하게 설명하면서도 필요한 경우 연구방법이나 설계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한다. 특히 최근에서야 확정되는 신경가소성에 대한 과거의 관점과 발달과정을 보여줘서 이해가 쉽다. 뇌과학은 현대의 장비와 기술이 발달하면서 크게 진전이 이뤄졌다. fMRI 방식은 수술로 머리를 열지 않고도 뇌를 촬영해서 활성화된 부분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이런 최첨단 기술 이전에는 뇌 연구를 어떻게 했을까? 후천적으로 뇌 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연구해서 조금씩 발전해왔다.
사고로 뇌의 특정한 부분이 손상된 환자들에서 찾은 성격변화나 상실된 기능들은 그 부분만이 그 기능을 하고 있다는 추론을 하게 만든다. 과거 다른 연구도구가 없는 상태에서 손상된 부분이 특정 성격이나 기능을 담당한다는 추정은 자연스럽다. 뇌는 어느정도는 큰 역할이 나눠져 있어 정상적인 경우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일정 부분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되면 세포들의 구조와 역할이 바뀐다. 가능한 범위의 손상이라면 주변의 다른 세포들이 점차 역할을 나눠가진다. 손상이 커서 대체할 수 없는 경우는 완전히 다른 능력을 발달시키기도 한다. 나치와 일본의 생체실험에서 현대의학이 비약적 발전을 이룬 것처럼, 베트남전쟁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는 병명이 생겨난 것처럼 뇌과학도 많은 손상된 뇌로부터 한걸음씩 나아갔다.
책에는 2015년에 FDA 승인을 받은 브레인포트V100이라는 감각치환장치가 소개된다. 카메라 달린 선글라스를 끼고 혓바닥 위에 우표만한 전극 장치를 올려놓으면 따끔거리는 자극을 준다. 시각을 촉각으로 바꾸는 장치다. 이 기계로 훈련한 시각장애인의 70%가 물체 인식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본다. 무엇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안다. 눈으로 세상을 보는 많은 사람들과 같게는 아니어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어디에 어떤 것이 어떤 크기로 웅크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게 됐다는 것. 처음부터 비어있거나 잃어버린 기능의 자리에 새로운 감각과 방식이 자리잡는다. 언제부턴지 그냥 보여서 볼 뿐인 나같은 사람의 시선으로는 사람의 마음으로부터건 기술로부터건 기적같은 일이다. 책을 읽다보면 신경가소성의 관점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은 항상 같을 수 없고 그러니까 언제나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어떤 순간 이제 더는 잃을 게 없다는 확신이 있다면 앞으로 뭔가 더 얻을 일만 남았다는 확신도 된다.
어려서 읽던 과학책은 신기한 지식으로 가득했다.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성인이 되어 다시 읽는 과학책들은 다르게 읽힌다. 자연의 법칙은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책을 읽는 것. 책과 내가 연결되는 것. '책과 나'가 여럿 모인 책모임. 신경세포와 시냅스, 신경계와 정확하게 같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만나봐야 한다. 만나서 서로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확장해줘야 한다. 각양각색의 신경세포들과 시냅스를 강화하고 극단적이고 불통한 시냅스들은 힘을 내 시들게 해야한다. 겨우 만난 귀한 사람과 꾸준하게 접촉해야 한다. 다른 사소한 것에 밀려 자리를 잃지 않도록 시냅스를 강화해가야 한다. 누가 언제 올지 모른다. 힘닿는 데 까지는 새로운 시냅스를 갈망한다. 치명적 손상을 가져온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어찌어찌 움츠러든 시냅스를 다듬고 신경계를 조정해왔다. 그래서 나는 일단 어제도 책모임에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