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3월부터 19세기 러시아 소설들을 읽고 있다. 너무 좋아서 이걸 모르고 살아온 세월을 원통해했다. 푸슈킨과 레르몬토프, 도스토예프스키가 남아있다.










세상의 거대한 변화 앞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 아직도 공감할 수 있는 질문들.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이나 <아버지와 아들>의 바자로프같은 인물들의 결말이 궁금해서 읽는다. 보통 이런 인물들은 자살이나 병으로 갑자기 죽어버리거나, 어떤 생각에 취해 미쳐버리거나, 편안하고 안락한 현실에 정착한다. 뾰족한 수가 별로 없는 건 알지만, 그래도 끝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래서 계속 뭔가 다른걸 기대하면서 읽어나간다. 사실 결말과는 상관없이 그런 인물들이 높은 확률로 등장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걸 보는게 좋았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매일 먹으면 질린다. 나는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몰아 읽다가 어느 순간 소원해졌다.


소설을 읽을 때 현실과 다른 곳으로 뿅- 가 있는 느낌을 제일 좋아했다. 분위기라던가, 도시라던가, 시대라던가, 사람이라던가. 제대로 이동시켜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19년까지만 해도 단편집은 싫었다. 좀 재밌게 읽어볼 만 하면 끝나고. 너무 빨리 끝나서 몰입할 겨를이 없다.










슬슬 질려갈 때쯤 19세기 끝에서 20세기를 바라보며 구원처럼 나타난 게 체호프였다. 실은 1년정도 중단되었던 19세기 러시아 문학 읽기를 다시 시작한 게 아니었다. 새해 다짐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아무래도 나 좋자고 자유분방하게 쓰다보면 주접을 떨게 된다. 그래야 좋은 글도,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어서 스타일이라고 주장해보는 글도 있겠지만 올해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은 글에도 도전하고 있다.

1. 입력을 잘못하니 출력이 잘못되는건가? 

2. 주접의 알고리즘이라 그런가? 

1번의 문제라면 입력을 다르게 해보고, 2번의 문제라면 구조변경을 위해 역시 입력을 다르게 훨씬 많이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러시아문학도 이어서 읽을 겸 체호프를 처방했다.


처음 읽은 체호프는 아리송했다. 말라비틀어진 멸치대가리 같았다. 오랜 습관은 좀처럼 바꾸기 어렵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이야기 속에서 놀고 싶어한다. 단편들이 곁을 안 줬다. <검은 수사>까지 가서야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인물이 나와 잠시 재미를 느낀다. 한번 재밌다고 회로가 돌아서니 다음 단편들이 쭉 재밌었다.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보니까 점점 좋아지면서 익숙해지고 하나더 하나더 하며 체호프를 까먹는다. 


건조한 문장들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니 그냥 그대로 보면 됐다. 과학책 보는 느낌으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세상에 이 다양함이란 양파껍질처럼 다음 단편에서도, 그 다음 단편에서도 계속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분명 하나하나 다른 인물들인데 같은 사람이다. 살아보지 않았지만 체호프가 인물 주변에 그렸던 세상에 있을 법했다. 생긴대로 인생을 살아내는 삶들, 옮다 그르다가 아닌 그냥 생김 그대로들.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생김새들. 내 안에도 있을만한 작은 옥수수알들이 체호프의 단편 안에서 한 명의 사람이 되어 팝콘처럼 튀어나온다.

 

두번째 체호프 단편을 읽을 때는 번역되는 모든 단편을 다 보고 싶었다. 너무 좋아서 연달아 읽었더니 세번째를 읽을 때는 좀 쉬어도 되겠다 싶었다. 러시아 문학은 좀 쉬었다 읽고 19세기도 좀 쉬었다 읽고 이제 20세기로 가보고 싶었다. 


뭔가 현대적인 걸로 잘 고르고 싶긴 한데 어디서부터 골라야 할지 헤매다 뭘 찾고 있었는지 잊어버렸다. 타이밍좋게 함께 읽는 중인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에서 설명하는 그대로다. 현대미술에 처음인 나는 1/3쯤 봤는데, 아직도 현대미술이 뭔지 모르겠다. 내가 뭘 이해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현대미술은 이거다. 이걸 바랐을 뿐인데.. 확실한 건 현대미술의 그런 점 때문에 내가 현대적인 20세기 소설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무슨 책을 찾고 있었는지 잊어버렸구나~ 하는 이해다. 뭘 찾는지 모르는 상태로 뭔가를 찾는 건 쉽지 않다.









그리고 운명처럼 다가온 레이먼드 카버. 그때쯤 모임책에 대성당이 등장했다. 책 소개에 레이먼드 카버는 '아메리칸 체호프'라고 했다. 완벽했다. 내가 읽고 싶었던 건 바로 체호프같은데 체호프는 아닌 거였다. 여행을 대체해서 하나씩 까먹고 있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에도 카버가 있었다. 현대적인 건 무조건 어려울 거 같으니까 <레이먼드 카버>를 먼저 읽는다. 카버의 인생사는 얼룩진 예술가의 삶 그 자체다. 안경줄을 늘어뜨리고 말끔하게 앉아있는 체호프와 대조된다. 


대성당을 앞두고 클래식 클라우드 레이먼드 카버를 먼저 읽는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었다. 문제는 이 클래식 클라우드 <레이먼드 카버>가 대단히 좋고, 충실한 책이라는 거다. 그래서 생기는 단점이 카버의 인생을 보면 이 쓰레기ㅅㄲ.. 니 글을 내가 읽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을 하게 된다는 거다. 카버는 결혼을 두 번 하는데 첫 부인이 대차게 씩씩하고 능력있는데도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카버 이야기에 등장하는 연인, 부인, 전 부인은 거의 이 첫번째 부인 메리앤이다. 심지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생은 작품에 박제된다.. 자꾸만 내가 만약 메리앤인데 시간여행자라서 이ㅅㄲ가 나중에 명작을 쓰게 된다는 걸 안다면 나는 앞으로 벌어질 고난의 인생을 감수할 수 있을까 몇 번이나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동안 나는 나중에 대체 뭐가 나온다해도 나는 그냥 빠르게 내 인생을 찾아 떠나겠다고 생각한다. 걸작이고 뭐고 한 사람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장점은 당연히 <대성당>이나 카버의 다른 단편을 읽기 전 준비를 하는 데 이 한권이면 충분하다는 거다. 카버는 작품의 인물, 사건, 배경을 대부분 자신의 인생에서 가져다 썼다. 그래서 카버의 인생과 작품을 시기와 장소를 따라 촘촘하게 엮은 이 책이 큰 도움이 된다. 인생을 따라서 작품 해설도 섞여있는데, 이게 정말 박수치게 좋다. 카버의 인생과 작품은 정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를 이해하는게 다른 하나를 이해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시리즈 특성상 약간의 편차가 있을 수 있는데,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중 정말 훌륭한 책이었다.(주제X여행기 컨셉에서 가장 걱정되는 저자의 개인적인 여행기가 적다. 꼭 있을것만 있다.)


전투 렌즈를 끼고 <대성당>을 시작한다. 그런데.. 내 다짐은.. 싸래기 눈이었다. 싸래기 눈은 공기중에서 이동중일 때나 눈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땅에 닿자마자 물이 되고만다. 



첫번째 단편 <깃털들>의 저 사라진 우유에서 내 다짐은 사르르 물이 되었다. 카버 부부가 친구집을 방문했고 친구 부인이 반려동물로 키우는 큰 공작새를 실내로 들이고 싶어한다. 카버 부부는 처음부터 저 공작새가 싫었고, 부인은 저 집 안에서 저 큰 새와 같이 있기 싫다. 남편은 거절해줬으면 하는 부인 옆에서 친구에게 절대로 그렇게 괜찮다고 말하고는 잔에 남아있던 우유를 몽땅 마셔버린다.ㅋㅋㅋㅋㅋㅋㅋ 카버여. 나는 당신의 다른 단편도 읽을 것입니다. 체호프의 무대는 상대적으로 넓다. 보통 마을 하나의 규모나 가족단위(지금 기준으로 대가족) 안에서 일들이 벌어진다. 카버의 배경은 상대적으로 좁다. 보통 집 안이나 두명 정도의 등장인물이 다다. 인물의 이름이 무엇이든 대부분 그 인물은 카버 자신과 메리앤 두 사람이다.


다 읽고 보니 뒷부분의 문학적 해설과는 전혀 다르게 읽었다는 걸 알았다. 대부분 단편들을 깊이 감탄하며 읽었는데 첫 <깃털들>이 특히 좋았던 이유는 마지막 <대성당>을 더 큰 감동에 이르게 해서다. 분명 젊은 카버와 초반의 작품들에는 구분과 배제가 있다.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실직한 육체노동자들의 도시에서 성장해 이민자와 흑인을 배척하는 도시 전체 분위기에 따라 성장했기 때문이다. <깃털들>에서는 시작은 친구지만 우리 부부와 친구 부부를 선명하게 갈라가는 과정이 그대로 보여진다. 그리고 분리시킨 삶은 봉합되지 않고 이야기가 끝난다. 


평범한 삶에서 인생 전체에 걸쳐진 오해와 편견, 분노와 원망이 녹아내리는 경험을 누가 몇번이나 할까. 틱틱대며 겨우겨우 친구집에 방문하던 부부는 마지막 장면에서 돌아오는길에 차 안에서 가까이 앉는다. 포근한 이불생활을 하다보면 답답하기도 하고, 불만도 쌓인다. 위험한 이불 밖에 나가보아야 내 이불의 소중함을 안다. 이불 밖에서 무엇과 부딪치면서 헤쳐나가기보다 내 이불속을 머리속에 먼저 떠올려버리는 것. 이게 더 흔하고 친숙하지만 사회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 그래서 입밖에 내놓고 말하지 않는 것. 그걸 이렇게나 다 덜어내고 있는 그대로 어떤 가치 잣대도 없이 하지만 분명하게. 세상에. 이건 체호프였다. 20세기 배경에서. 20세기 사람을. 아무리 솔직하게 말해도 모든 단편이 하나하나 보석같았는데, 그래도 그 보석 중 가장 좋았던 게 <깃털들>이다. 


레이먼드 카버여. 내가 시간여행자 메리앤이라면 뒤돌아서서 내 인생을 찾아 떠나겠다는 경솔한 말을 철회합니다. 견뎌낼 자신은 없지만 견뎌야 할 것 같기도 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시간여행자가 아니라서, 내가 메리앤이 아니어서, 2021년이어서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카버를 읽고 카버처럼 건조하게 후기를 써보고 싶었지만 본성은 감추기 어렵다. 자제력에 집중하며 써봐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도루묵. 읽으면서 생긴 감동만큼 이렇게 좋았다는 하소연도 길어진다. (다 쓰지는 못했지만) 다른 단편들도 하나씩 하나씩 까먹어야겠다. 어떤 이유로 무엇을 더 읽어야겠다는 있어보이는 말을 하는 날이 오다니.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는 살고 보고 가까이 온 책은 읽고 볼 일이다.


+

사실 집에는 진작부터 대성당 굿즈가 있었다. 왜냐면 똑똑이 내가 레이먼드 챈들러랑 헷갈려서 대걸잘 추리소설 굿즈인줄 알고 헿헿거리며 미리 샀다. 아주 작아서 약먹는 물잔으로 쓰는데 이제 약먹을때마다 다른 게 연상될 거다. 크기비교는 우린 티백 보관소로 쓰고있는 6피스 초장그릇.


왠지 두고두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사서 읽은 똑똑이 나. 아주 칭찬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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