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뇌, 호르몬 - 뇌와 호르몬이 여자에게 말해주는 것들
사라 매케이 지음, 김소정 옮김 / 갈매나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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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나왔던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제작년에 나왔던 <여자의 뇌, 남자의 뇌 따윈 없어>라는 같은 책을 1년만에 제목만 바꿔 재출간한 것이다. 서론에서 저자는 책을 쓴 의도와는 다르게 엉뚱한 오해와 질문으로 이어져서 굳이 제목을 바꾸었다고 해명한다. 생물학적으로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우열의 대상이 아님에도 곧잘 악의적으로 잘못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 악의적인 습관은 실은 그 우열에 근거가 없고, 의미가 없고, 사실도 아니라는 점에서 불안함과 절박함의 근거로 보인다​.




사라 매케이의 <Demystifying the female brain>은 2018년에 출간되었고, 우리나라에는 작년 5월에 번역 출간되었다.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신경과학자로 주로 여성의 생애에 따라 뇌와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연구하고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태아기, 아동기, 사춘기, 임신과 수유기, 갱년기와 생의 마지막 노화 순간까지 여성의 뇌와 호르몬을 탐구한다. 자연스럽고 당연해보이는 이 탐구가 왜 특별하고 책으로까지 출판되어야 했을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1. 경구피임약은 아주 일반적인 약이다. 그런데 이 약이 여성의 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 ! 이와 관련된 연구 논문은 2014년에 처음 나왔다. <호르몬제를 활용한 피임법 50년 - 이제는 피임약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볼 때가 되었다.> 정말이다.

2. 저자는 다중 오르가슴의 비밀을 밝히겠다고 결심하고 관련 자료를 찾는다. 하지만 관련 자료는 얼마나 있을까?

☞ 퍼브메드에는 관련 논문이 5개밖에 없다. (원서 출판 시점인 2018년 근처일 것으로 추정)(PubMed - 생물, 의학 관련 논문을 기재하는 온라인 사이트) 그 중 세 편은 남성에게 다중 오르가슴이 가능한가를 다루는 논문이었다.

3. PMS(월경 전 증후군 - 생리를 시작하려고 할 때 변하는 감정) 때문에 고생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 ! 놀랍게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전체 여성의 12~90% 사이일 거라고 추정한다.

여성의 몸은 이제까지 임상 연구에서 배제되었고, '작은 남성'이라는 추론으로 치료받아왔다. 그 결과 미국에서 1997년부터 2000년까지 퇴출된 약물 중 80%는 여성에게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켜 퇴출되었다. 남성의 몸에 대한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약물들은 시판 전 임상 과정에서 대부분 걸러져서일 것이다.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구조적으로 다를까? 책에서는 모자이크 뇌라는 개념을 말한다. 만약 사람의 뇌를 여자같은 부분(그런 게 있다고 가정한다면)은 분홍색으로, 남자같은 부분은 파란색으로 칠하기로 하자. 그리고 한 사람의 뇌를 멀리서 바라보면 분홍색이나 파란색이 아주 진한 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분홍색과 파란색이 뒤섞여 보라색이나 자주색, 남색의 모습일 거라는 개념이다.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가 다르다는 주장은 위험한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본성이 양육보다 중요하다는 폐기된 믿음의 표현이기도 하고, 다름이 우월함과 열등함으로 주장되기도 한다. 남자의 뇌는 다른 남자의 뇌와 비슷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여자의 뇌는 다른 여자의 뇌와 비슷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그리고 여자의 뇌와 남자의 뇌는 비슷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물론 뇌에 여자같은 구조와 남자같은 구조라는 건 없다.


생물학적 성별에 따른 뇌의 차이는 사실 없다고 하는데, 임신이라는 큰 사건을 겪으면 어떨까? 책에서 임신건망증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임신건망증은 브레인포그처럼 집중하기 힘들고, 제대로 기억하기 어려워하는 증상이다. 임산부의 75%가 호소한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조군과의 비교연구결과를 보면 실제로는 임산부들이 임신하지 않은 여성들보다 수치적으로 학습과 기억을 더 잘했다. (출산 후 할일도 많아지고 생존도 불리해지는 어머니에게 진화와 유전자가 준 선물일까?) 차이점은 임산부들이 스스로 기억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하고, 기분이 저조했다.(이건 사회가 주는 선물?) 임신건망증은 사실 1960년대에 생겨난 개념이라고 한다. 여성이 다수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시기라 임산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감시거리를 주게 되었고, 그때 여성들이 내놓던 변명이라고 말이다. 사실과 반대되는 믿음은 현재까지 이어지는데, 사회가 그 증거를 선택적으로 찾아내기 때문이다. 이 잘못된 신화는 여성은 감정적이며 호르몬변화에 휘둘리는 존재라는 인식과 연관된다.

그럼 여성은 정말 호르몬 주기에 따라 감정적으로 변할까? 월경전 증후군이 정말 있다면 범인은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일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월경전 증후군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결과가 거의 없다. 증거가 없다는 얘기다. 이 범인의 유죄 선고까지는 더 많고 정확한 연구결과가 필요하다. 대신 우리는 사람의 감정기복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을 이미 알고 있다. 사회적으로 도움을 받을 방법이 없을때, 강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몸이 아플 때다. 월경전 증후군에 대한 모함에도 신화는 숨어있다. 월경전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대면 만능키처럼 여성이 자신이 힘든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지 않아도 된다. 또 생리 직전에 여성은 짜증을 많이 내고, 이성을 잃고, 신뢰할 수 없다고 생리적 저주를 걸면 여성의 몸에 대한 긍정적인 자기인식도 망가뜨릴 수 있다.

월경전증후군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갱년기에 여성이 겪는 고통과 불편은 확실하다. 태아때부터 한평생 강력한 협력체제를 이루던 뇌와 난소가 연락이 끊기면서 몸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기를 가지기 때문이다. 갱년기는 별탈없이 지나가는 사람이 60%, 증상이 전혀 없는 사람이 20%, 심각한 증상을 겪는 사람이 20%라고 한다. 갱년기에 도움을 주는 것이 호르몬대체요법이다. 모든 치료법에는 부작용이 있다. 치료를 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과 있을지 모르는 위험은 생각해보는 게 맞다. 하지만 호르몬대체요법은 오히려 암과 치매를 유발할 수 있다는 잘못된 오해가 퍼져 있다. 2017년 북미갱년기학회는 수백만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수십년간 축적해온 자료를 바탕으로 호르몬대체요법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질병에 영향을 미치고, 위험보다 이득이 많다고 밝혔다. (책에는 더 자세한 근거들이 있다) 기억할만한 건 유아기나 청소년기처럼 뇌가소성에 결정적 시기가 있듯이 호르몬대체요법에도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점이다. 시작한 시기에 따라 결과가 다양해지기 때문에 갱년기 증상 초기에 바로 호르몬대체요법을 시작하는 것이 효과가 가장 좋고, 부작용이 가장 적다. 갱년기 증상은 안전하고 저렴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이 있는데도 참고 버티는 거의 유일한 건강 문제다.

오래된 고급 와인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핵실험에 사용되었던 방사성 동위원소 탄소표지를 이용한다는 얘기를 본 적 있다. 책에는 신기하게 그 내용도 들어있었다. 와인뿐만 아니라 냉전시대 핵실험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뇌세포 DNA를 분석하면 그때의 제조날짜가 새겨져 있었다는 거다. 그때 당시 핵실험으로 대기에 C14 양이 증가해서 그 탄소들을 식물이 광합성해서 양분을 만들었다. 식물과 동물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한 인간의 세포에도 그대로 C14가 표지됐다. 그래서 중년기 사람의 해마에서도 매일 700개쯤의 뉴런이 새롭게 생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한다. 오래된 고급 와인과 다큰 성인에게 새로 생긴다는 해마는 더없이 귀하고 소중하다. 그런데 세상의 절반인 여자들은? 더 귀하고 소중하다. 그 세상의 절반인 여자들이 평생 30~40년간 생리를 겪고, 갱년기를 지난다.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하고, 더 많은 증상이 있어야 하고, 더 많은 연구대상이 있어야 하고, 더 많은 시행착오가 있어야 하고, 더 많은 자기 인식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서야 우리는 작은 남성이 아닌 여성의 몸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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