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은 잔인한 달이고, 8월은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늦은 7월 읽은책. 챙겨놓은 글감들도 풀어내지 못하고, 장마도 다 쓰기 전에 장마는 진작 끝났고.. 7월은 모임에서 같이 읽은 책들이 두꺼운 책이 끼어있어 혼자 읽고 싶은 책들 진도를 못 나갔다. 에세이3권, 역사 2권, 소설.희곡 2권, 글쓰기 1권, 과학 1권, 자기계발 1권.


 <아무튼, 비건>은 아무튼 시리즈의 17권이다. 시리즈중, 채식에 관한 책 중 처음 읽은 책이다. 나는 의식적이고 엄격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이 책을 보고 내가 비덩주의자(덩어리 고기는 안 먹는)쯤이라는 걸 알았다. 채식주의자 하면 떠오르는 완고하고 금욕적이고 공격적일 듯한 느낌이 아니어서 좋았다. 표지가 책의 느낌을 정말 잘 표현하고 있다. 심각한 주제를 심각하지 않게. 채밍아웃 이후로 쏟아지는 감시와 비난에 대처하는 법이나 가죽제품이나 고기산업이 왜 문제인지, 톡톡튀는 채식운동의 시도들을 얘기하고 있다. 아무리 심각한 일도 사람을 움직이는 건 감정적인 일이다. 이 책을 읽고 채식이 굉장한 사회운동이라는 걸 알게 됐다. 채식에 관한 책들을 좀더 읽어보고싶다. 감동적인 표지의 문구. "당신도 연결되었나요?" 아무튼, 비건.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는 선물받아서 최대한 빨리 읽을책 목록에 욱여넣은 책이다. 모임책에 에세이가 한권 난입해 너무 많은 에세이의 달이 되었다. 이슬아의 책은 네이버에 소개됐을때 눈여겨보았다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이 책 너무 좋다는 친구가 선물해줘 더 좋았다. 많이 울컥하고, 무섭게 솔직하고, 먹먹하게 담담하고, 기특하게 사랑스럽다. 이 못생긴 그림체는 왜 예쁘고 난리야..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같이읽는 페이퍼에 책모임 후기가 간단하게 있다. 선생님은 별한개짜리 서평이 숭고하다 하셨다. 추천자 뿌셔..


 <5가지 사랑의 언어>는 모임책이라 읽었는데 완전히 기대없이 읽었던 책이다. 읽은후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부부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인간관계로 확대해 읽어도 큰 무리가 없어 자기계발로 분류했다. 사랑에 대한 많은 책들이 시작하는 사랑의 과정이나 설렘을 다루지만 이 책은 사랑을 끝?까지 잘 유지하는 요령을 다룬다. 사람마다 타고난다는 사랑의 언어를 5가지로 분류해 설명하고있다. 한 가지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다른 언어로 아무리 사랑한다 말해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므로 상대방의 언어를 탐색하고, 그 언어로 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면 5가지 언어 중 '인정하는 말'이 주요 사랑의 언어인 사람에게 인정하는 말 없이 아무리 선물공세를 하거나 스킨십을 주어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못 받는다는 것이다. 뒷부분에서 내 사랑의 언어는 무엇인지 간단하게 테스트할 수 있다. 모임하면서 느낀 건 한국인은 '인정하는 말'이 대부분 필요한 것 같다는 것.


 <서평 글쓰기 특강>은 제목 그대로에 깔끔한 책이었다. 서평 쓰기 강의를 여러차례 진행해본 저자가 강의 경험을 토대로 서평쓰기에 대한 특강을 해준다. 나도 올해 처음으로 서평을 써보면서 좌충우돌했던 시행착오들이 그대로 쓰여있었다! 좌충우돌했던 시행착오라고 하면 상황종료인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고기낚는 법을 배운다고 바로 숙련된 낚시꾼이 되는건 아니라도 서평쓰기에 도전하는 입문자들에게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한가지 불만인 점은 참고할만한 서평집이나 추천목록에 선생님 책이 별로 없었다는 것 정도? 라곤 해도 대단한 불만이었다.ㅋㅋ


 <코.외투.광인일기.감찰관>은 산울림 소극장에서 하고 있는 연극에 맞추어 읽은 책인데, 아쉽게 일정이 틀어져 연극은 보지 못했다. 다음 기회가 또 있길 기대한다. 처음 읽은 고골의 책이다. 주로 다루어지는 것은 8등관, 9등관 정도의 하급 관리, 작은 인간들이다. 우습기도하고 가엽기도 하다. 많은 작가들이 고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내가 읽기로는 주로 고골 이후의 작품들을 먼저 읽어서 새로운 기분이다. 라면에 무조건 계란풀어 끓여먹다가 어느날 순수라면을 먹는 기분. 어느날 아침 갑자기 코가 없어지는 <코>는 어느날 아침 갑자기 벌레가 되어있는 <변신>이 떠올랐다. <광인일기>에서는 <82년생 김지영>과 다음달에 읽을 <아Q정전>이, 제일 재밌었던 <감찰관>은 파스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가. <외투>는? 다음 기회에 생각해보자.

 <아버지와 아들>은 선생님 수업에서 읽은 책이다. 카라마조프와 같이 묶여 아버지들과 아들들 수업날로 이름지었다. 러시아문학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인물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바자로프나 카라마조프의 이반,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같은 냉소적인 지식인 캐릭터다. 그 인물들이 작가에 의해 끝까지 몰아붙여지거나 좀더 넓게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고 호기심돋는 지점이다. 그래도 이반이나 레빈은 사랑을 한다. 바자로프는? 오딘초바를 사랑하는거 같긴 한데 나 자신이 사랑을 한다는 게 너무 수치스러워.. 볼만하다. 나는 왜 올해가 되어서야 러시아 문학을 읽기 시작했을까?.. 불만이다. 


 이번달에 읽은 역사책은 두권다 훌륭했다. <대변동>은 개인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요인 12가지를 국가에 적용한 책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직접 살아보고 경험했던 나라들의 역사에서 위기라고 할 만한 것을 추려 12가지의 틀에 맞추어 설명하고 있다.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위기 앞에서 우리가 '아직' 미래를 위해 선택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마무리한다. 작가가 분석한 틀에 맞추어 책모임의 급진적 변화와 점진적 변화에 의한 위기,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에 의한 위기를 써보고 싶었는데.. 싶었다. 미루었다.

 <초목전쟁>은 월말에 준비하는 홍차 시음회를 위해 읽었다. 제목에서는 홍차와 아편을 반반으로 한 영국과 중국의 전쟁에 관한 내용같지만 실제 내용은 차나무 스파이 이야기다. 중국에서 차나무를 훔쳐오고, 차나무를 재배하는 기술자를 훔쳐온 세기의 스파이를 둘러싼 주변부의 역사까지 흥미롭게 풀어낸다. 제국주의 영국의 식물학 발전에 관한 내용과 홍차와 녹차나무에 관한 내용도 재미있다. 이렇게 재밌는데 실제 역사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여러모로 놀라운 책이었다. 비과학자가 쓴 과학책이라는 점이 그렇고, 방대한 주제도 그렇고, 읽기 좋게 풀어낸 점도 그렇다. 그중 최고는 이 모든 걸 그림 하나 없이 말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특히 그림없이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부분까지.. <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잠깐 보니 요약도 잘되어있고 그림이 같이 있어 이해하기 쉽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모임에서 문과생들이 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축약이 너무 되어있어 이해가 잘 안된다는 평을 들었다. 언젠가 좀더 다루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한 챕터 읽을 때마다 제목을 다시 붙여 달았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6장의 '성난 이빨을 드러낸 과학'은 '화석, 공룡'으로, 18장의 '망망대해'는 '바다, 심해, 해양생물'로, 23장의 '존재의 풍요로움'은 '린네 명명법, 분류학'으로. <대변동>과 같이 방대한 내용을 다루는 책을 읽다보면 도대체 마무리를 어떻게 하려나? 하는 의문이 든다. 과학적 발견이 이어지면서 수정해야할 부분들이 생겼음에도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는 멋진 마무리. 우리가 이렇게 여기 존재한다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과 이 행운을 유지하기 위해 행운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이렇게 보니 7월 한달은 처음 읽기의 달이었다. 처음 읽은 고골, 처음 읽은 투르게네프, 처음 읽은 재레드 다이아몬드, 처음 읽은 이슬아, 처음 읽은 채식주의책. 다섯권 모두 두번째 책 읽기의 시작점이 될 것 같다. 낭패다. 서평수업 이후로 혼자서 한달에 2개 정도씩 꾸준히 써볼 계획이었는데,(사실 마음속으로는 4개) 첫 달부터 하나도 쓰지 못했다. 여름이 가장 바쁘고 작년에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몸도 상했던 계절이라 서둘러 면죄부를 줬다. 서평쓰기에 관한 책을 한권 읽은 것으로 갈음한다. 올 여름은 아침마다 피로감은 있지만, 건강에 관해서는 선방한 기분이라 작년의 큰 위기에 슬기롭게 대처했고 유지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름과의 대전쟁에도 거의 모든 시간을 책 옆에. 아무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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