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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
이윤석 지음 / 한뼘책방 / 2018년 11월
평점 :
홍길동전의 작자는 허균이 아니다!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 아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홍길동전의 저자는 분명 허균이었다. 신분제의 부조리와 이상국 건설이라는 주제는 개혁의 꿈을 가졌던 허균과 잘 어울리는 내용이었다. 책의 제목이 반어법으로 작자를 강조하는 것인지 숨겨진 제3의 작자가 있다는 것인지 궁금증이 인다. 그러고 보면 홍길동전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다.
일반적인 출판물이라면 허균이 죽고 난 뒤의 인물이나 사건이 등장한다면 허균이 썼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홍길동전에는 길동이 어머니에게 자신의 서자 신세를 한탄하며 장길산을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장길산은 1690년대부터 이름이 알려진 도둑이다. 허균은 1569년생으로 1618년까지 살았으니 장길산은 허균이 죽고 난 이후의 인물이다. 또 길동이 조선을 떠날 때 임금이 벼 천석을 하사하는 장면에 선혜청이란 관청이 나오는데 이것은 1608년에 처음 설치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까지 100년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
처음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작자를 허균이라고 한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경성제국대학에서 조선문학을 가르치던 다카하시 도루다. 이 일본인이 이식의 택당집에서 허균이 홍길동전의 작자라고 했으며 지금의 홍길동전은 한글로 쓰여있고 허균이 지은 원글은 한문일 거라고 말한다. 이것을 그 제자 김태준이 조선소설사에 허균이 작자라고 실었다. 일찍이 반역죄로 처형당한 허균이 작자라면 17세기 초 조선에 개혁적인 문학작품이 있었다는 게 되기 때문이다. 허균이 썼다는 한문소설 홍길동전은 현재 존재하지 않고 택당집의 홍길동전과 한글소설 홍길동전이 같다는 것은 근거가 없다. 저자는 홍길동전의 작자가 지금까지 수정되지 않은 것은 사실 관계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애국심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심지어 허균의 반역죄 때문에 홍길동전이 금서가 되었다는 유언비어까지 생겨난다.
문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한글소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한글소설을 알 수 없으니 조선에서 한글 소설을 언제 또 왜 읽기 시작했는지 알아보자. 저자는 그 시작이 궁중에서 읽기 위해 중국소설을 한글로 번역하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민간의 상류층 여성과 중류층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책을 빌려주던 민간의 세책집을 중심으로 한글소설이 창작되고 필사본을 요약해 만든 방각본 소설도 나타나게 된다. 세책집에서 책을 빌려주다 보면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필요했을 것이고, 이것이 한글소설 작자가 탄생한 배경이라고 지목한다. 이때의 중국소설은 모두 인쇄본인 반면 한글소설은 모두 손으로 쓴 필사본이다. 필사본은 필사자에 따라 내용이 상당히 달라지게 되어 많은 이본이 생기게 된다. 장길산과 선혜청을 어느 필사자가 추가했다고 해도 춘향전같은 다른 한글소설과 비교하면 홍길동전만 단독으로 200여년 앞선 것이 되어 그 배경을 생각하면 이치에 맞지 않다.
이어서 전문가가 복원한 홍길동전이 실려있다. 당시 조선의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 중 마음에 남는 것은 홀연히 나타난 소년 길동이 활빈당의 두목이 되는 부분이다. 무거운 돌을 들고 해인사의 재물을 빼앗아온다. 이 시험은 완전히 개인의 능력에 달린 것이다. 저자는 소설에 쓰여진 서민들의 바람은 신분이나 배경으로 서열이 정해지는 사회를 반증한다고 해석한다. 복원된 원본을 읽고 저자가 쓴 해석과 맞추어보는 재미도 있다.
양반들이 한문으로 쓴 글 가운데 적서차별을 없애자는 내용은 있지만 왕이 되는 서자의 이야기는 없다. 또 소설쓰기를 배울 기회와 여유 모두 없었을 조선의 이름모를 작자가 지금 읽어도 재밌는 소설을 써냈다는 사실이 더욱 자랑스럽다. 조선의 양반 지식인 허균이 홍길동전을 썼다는 설은 더 이상 사실적이지도 않고, 애국적이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