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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비교 - 시민이 읽는 비교 세계사 강의 민주주의.자본주의.민족주의
김대륜 지음 / 돌베개 / 2018년 11월
평점 :
민주주의가 뭘까? 자본주의는? 민족주의는?
한국의 세계시민을 위한 민주주의·자본주의·민족주의 설명서
김대륜의 역사의 비교는 저자가 DGIST에서 진행했던 ‘비교역사학 강좌’의 일부를 단행본으로 다듬은 책이다. 실제로 강의를 하는듯한 어조로 설명하고 있어 족집게 역사과외를 받는 듯하다. 일차적으로는 스무살 대학생들을 위해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썼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통사적 역사서나 비교사를 표방하는 역사서는 있었어도 이 책은 제대로 된 교양 비교역사서라고 수줍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대중을 위한 교양역사서라기보단 누구나 한번쯤 꼭 읽어야 할 필수역사서로 느껴진다. 비교사의 특성상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데 순간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단정하게 다듬은 목차와중간의 표제만 읽어도 쉽게 읽은 내용이 연상되는 친절한 책이다. 무엇보다 흔하고 두꺼운 세계사 책들과 달리 저자가 이끄는대로 하나하나 세계사의 구슬을 잘 꿰어가면 다다르는 곳이 결국 우리가 발을 디디고 숨쉬는 지금의 한국이라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민주주의를 보편적인 가치로 여기는 까닭에, 자본의 위력이 점점 강해지자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정치적 평등을 위협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전 세계에서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그 기반인 인간의 자유와 평등, 존엄이라는 이념을 그만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p.23
자유와 평등, 존엄이라는 이념은 언제부터 당연했을까? 기원전 6세기부터 200여년동안 꽃피운 아테네 민주정은 외부의 압박속에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던 도편추방법이 칼날이 되어 큰 혼란에 빠진다. 동시에 “합리적인 토론이 진리를 발견하는 길이 될 수 있는가?”를 외치는 소크라테스와 제자들로부터도 위협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후 2천여년동안 수많은 정치 체제는 모두 인간 불평등을 당연하게 전제한다. 진시황이 대표이미지로 떠오르는 동양의 전제주의는? 근대적인 정치 체제의 발생과는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뜻밖에 이 시기의 과거제는 개방성과 공평성을 바탕으로 군주 이외의 모든 백성은 능력에 따라 정치에 참여하는 신분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가장 일찍 근대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민주정에 대한 부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18세기에 나타나는 변화는 바로 인권 개념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프랑스혁명 이전의 서양사회에서 자유란 개인이 속한 신분이나 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특권에 가까웠다. 이 자유를 모든 사람이 누리는 보편적인 권리로 상상할 수 있기까지 문화와 종교의 자유의 바람과 강력한 시장의 힘이 작용한다. 시장을 바탕으로 자유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권력을 견제할 입헌주의와 만나 헌법이 된다. 기원전부터 서양의 여러 국가는 민주주의 외에도 다양한 정치 체제를 실험하며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수많은 갈등과 타협을 다시 법과 제도로 만들고, 정치 문화로 구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반면에 한국과 같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한 국가는 이념보다 제도가 먼저 도입되어 실제 정치와 국민이 체제에 적응하는 기간을 갖는다.
한국 정치가 민주주의 원리와는 거리가 먼 후진성을 버리지 못했다는 자기반성이나 민주주의가 진보하기는커녕 후퇴하고 있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20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계속 나왔지만, 이런 논란은 민주주의가 이제 그만큼 한국인의 삶 깊숙이 자리잡았다는 반증이라고 생각딥니다. 광복을 이룬 1945년과 제헌헌법을 공포한 1948년으로부터 반세기만에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면, 민주주의를 향한 서양의 오랜 역사와 비교해 볼 때 한국은 과연 ‘압축적’ 민주화를 경험한 것입니다.
-p.104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속에서 시간은 짧지만 한국의 민주주의의 제도와 이념은 계속 변화했고, 앞으로도 변화하면서 미래의 비교역사학자들이 곳곳에 돋보기를 갖다댈 지점이 생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