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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의 시대 -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이 바꾸는 글로벌 금융의 미래
이선민 지음 / 잇담북스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전달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트럼프 2.0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비트코인과 함께 많이 회자되는 코인이 있습니다. 바로 '스테이블(Stable) 코인' 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이 뭔가요?"라는 질문에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바로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달러'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비트코인처럼 가격이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는 달리,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와 1:1로 고정되어 있어 가치가 안정적입니다.
예컨데, '테더(USDT)'라는 스테이블코인 1개는 항상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지요. 마치 은행에서 달러를 디지털 지갑으로 옮겨놓은 것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이 '디지털 달러'가 이미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훨씬 큰 규모로 세계 경제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실제로 스테이블코인의 연간 거래량은 이미 비자와 마스터카드를 합친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글로벌 경제의 실질적 인프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제 우리도 이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해야 할 때가 된 듯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이선민 저자의 <스테이블코인의 시대>는 바로 이런 궁금증에서 시작됩니다. 단순한 '디지털 달러'가 왜 갑자기 국제 정치의 핵심 이슈가 되었을까? 왜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에 그토록 공을 들이고,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로 맞서려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통화 주권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자국 화폐 대신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곧 미국 달러의 영향력이 디지털 세상까지 확장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겉으로는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치밀한 경제적, 지정학적 계산이 숨어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새로운 미국 국채 수요처 창출이 핵심입니다. 중국과 일본이 미국 국채 매입을 줄이는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준비금으로 미국 국채를 보유하도록 하여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려는 전략이 그것이죠.
실제로 '테더(USDT)'는 이미 미국 국채 보유 규모로 세계 19위에 올라 있으며, 이는 한국(20위)보다도 높은 순위입니다. 스테이블코인 1달러를 발행하려면 1달러 상당의 안전자산(주로 미국 국채)을 보유해야 하니, 스테이블코인이 커질수록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셈입니다.
2025년 7월 17일 통과된 '미국의 지니어스법(Genius Act)'는 궁극적으로 스테이블코인 역사에서 분수령이 되는 사건입니다. 이 법안의 핵심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게 1:1 안전자산 담보 보유를 의무화하되, 그 안전자산을 달러 현금, 달러 예금, 미국 단기 국채로 한정했다는 점입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 법안이 보여주는 미국의 정교한 전략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메타' 같은 빅테크 기업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재무장관, 연방준비제도 의장, 연방예금보험공사 의장 세 명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어야 하며, 무엇보다 데이터를 광고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이는 빅테크의 독점은 견제하면서도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는 육성하려는, 매우 계산된 접근으로 풀이됩니다. 마치 "스테이블코인은 환영하지만,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책에서 밝히고 있는 시티은행의 디지털 달러 보고서는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규제 환경이 뒷받침될 경우,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공급이 2030년까지 기본 시나리오 1.6조 달러, 낙관 시나리오 3.7조 달러 규모로 급성장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현재 전체 암호화폐 시가 총액과 맞먹는 규모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즉,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금융 시스템의 현금 역할 일부를 대체할 만큼 거대한 변화가 온다는 의미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통화의 디지털화"라는 패러다임 전환임을 강조합니다.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달러는 블록체인상에서 "국경없이 돌아다니는 달러"가 되며, 이는 미국이 중국의 국채 매각에 흔들리지 않는 민간 방파제를 확보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와 닿는 부분은 한국의 상황을 다룬 9장이었습니다. 저자는 "미국의 디지털 금융 패권 정책의 두 축인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비트코인은 한국에 직접적인 파급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달러화 토큰의 범람은 원화 주권과 금융정책 자율성을 압박한다"고 진단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야 할까요? "소버린 AI"에 비유할 수 있는 이 문제는 AI 분야에서 미국을 따라잡기는 어렵지만 디지털 주권을 잃어서는 안 되듯이,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경쟁력 확보는 쉽지 않겠지만 결국 통화 주권 보호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논리로 읽힙니다.
구체적인 활용 방안에 있어, k-컬처와 연계한 활용(BTS 콘서트 티켓 구매, 거버넌스 토큰을 통한 투표권 부여 등), AI 에이전트 간 마이크로 페이먼트, 지역화례 디지털화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구체적인 제안은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저자만의 실용적인 통찰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운 부분은 초반부에 스테이블코인의 기본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하고 다소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더 많은 일상 사례나 비유를 통해 개념을 쉽게 풀어주었다면 접근성이 더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또한 한국 상황에 대한 분석은 상당히 깊이있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서는 다소 추상적인 내용에 그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기술적 구현방식이나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연계 방안 등에 대한 더 구체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었다면 정책 입안자들에게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본서 <스테이블코인의 시대>는 복잡한 디지털 금융 혁명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낸 대중성에 무게를 둔 해설서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기술 뿐 아니라, 그 기술이 가져올 지정학적 변화와 우리의 대응 전략까지 제시하는 실용적 지침서라는 생각입니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디지털 금융 패권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 스테이블코인이 있습니다."
미국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다시금 디지털 시대의 기축통화 지위를 공고히 하려 하고,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로 맞서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더 이상 방관자로 남을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절실함을 느끼게 됩니다.
미래 금융 트렌드와 스테이블코인의 현재와 미래 비전을 추적하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