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0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우리나라의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을 화재로 잃어버린 날이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그 일로 겪은 그 아픔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TV로 화재현장이 실시간으로 방송이 되는데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보니 그저 참담한 심정이었다. 이 사건은 그 동안 우리 국민들이 선조들의 문화유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일제에 의해 축이 뒤틀린 경복궁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복원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고, 세종로 길에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지는 등 서울의 옛 도성의 모습을 찾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하지만 이런 관(官)주도의 공사보다 서울 시민들이 직접 서울의 문화유산을 아끼고 보존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아끼고 보존한다고 되는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런 생각에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들은 의미심장하다. 서울이라는 곳에 살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서울이 가진 역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몸담고 호흡하고 살고 있다는 점만으로 서울에 대해서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서울은 현재의 서울이고, 600년 동안 수도로서 한반도의 중심지 역할을 해 온 시간에 비하면 내가 알고 있는 서울의 모습은 아주 작은 단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지은이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애정어린 눈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 그리고 서울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보는 방법으로 서울 답사를 추천한다. 그것도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답사가 아니라 옛 지도를 펼쳐들고 서울을 찾아 떠나볼 것을 권한다. 지은이는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서울의 여기 저기를 찾아다닌다. 단순히 오늘의 서울을 둘러보는 것이 아니다. 지은이는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답사한다. 답사라고 하면 필기구를 들고 다니며 지나온 길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지은이는 그런 답사를 지양한다.
“답사에서 중요한 것은 그곳이 몇 년도에 생겼고, 누가 만들었고, 언제 사라졌는지가 아니라, 장소가 하는 말에 귀기울여 들어보는 것입니다. 예전엔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은 왜 이런 모습이 되었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바뀔까 상상해보기 위해 답사를 떠나는 것입니다(책 15쪽 참조).”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옛 지도와 현재의 서울 모습을 오버랩해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느낌을 받게 되어 읽을수록 책에 빠져들게 만든다.
책은 총 4장으로 되어 있다. 지은이는 서울이 한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중심지가 된 조선시대때부터 서울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다. 먼저 궁궐과 종로를 찾아보고 이어서 청계천, 북촌, 그리고 한양 읽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 다시 북악산으로 연결되는 총 18.2킬로미터에 이르는 도성을 답사한다. 마지막으로 지배층이 모여 사는 공간인 도성을 빠져나와 성문 밖에서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삶을 찾아보는 것으로 서울 답사를 마감한다.
경북궁 등 궁궐과 종로 등 각 거리가 형성되게 된 원리, 청계천과 한강의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 그 위를 가로지른 다리의 위치, 도성 안과 밖의 사람들의 생활사 등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내용 뿐만 아니라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이 아주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특히 이 책은 이런 내용들을 이야기하면서 조선시대와 현재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일반인들의 생활사에 대한 이야기까지 더하여 단순한 답사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한다.
그리고 각 장마다 이야기가 들어가기 전에 답사경로와 교통편을 소개하고 있고, 본문에는 옛 지도와 사진을 상세하게 수록하고 있다. 위 내용을 참조로 직접 지은이가 따라간 길을 찾아본다면 지은이가 이야기한 내용들이 더욱 실감이 나지 않을까 한다. 부록으로 사진 찍기 좋은 곳과 현장에서 유용한 답사 안내 요령까지 실어 두는 등 지은이가 직접 서울 답사를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한 점 등을 자세하게 들려주고 있다.
요즘 제주도 올레길이 인기다. 차를 타고 다니며 유명한 곳만 찾아다니던 여행에서 벗어나 발품을 팔아가면 여행지를 직접 답사하는 것이다. 그 곳 사람들을 직접 만나도 보고 온 몸으로 여행지 곳곳을 느껴보는 것이다.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지은이의 말처럼 서울도 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을 전부 복원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성곽을 일주할 수 있는 코스를 계발한다면 제주도 올레길처럼 좋은 문화콘텐츠가 되지 않을까. 이는 또한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미래지향적으로 도시의 삶을 바꾸어나가는 또 다른 시도로서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