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쓴 편지 - 붓다처럼 걸어간 1600리 길, 그 위에서 나눈 묵상
호진.지안 지음 / 불광출판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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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서평] 「성지에서 쓴 편지」 당신의 위로는 어디에 있습니까?



 

성지에서 쓴 편지 - 
호진.지안 지음/불광출판사


 가족이나 친한 지인 중에 종교에 깊이 빠진 사람이 없어서인지 적극적으로 권유를 받아본 적도 없고, 종교를 믿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다. 고등학교 때 드럼을 배우려는 불온한(?) 의도로 잠깐 교회에 다닌 것 말고는 특별히 종교를 찾은 일이 없다. 평소에 즐겨 보는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의 믿을 수 없는 사건·사고로 어쩐지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지기도 했다. 또한 웹서핑을 하다보면 종교를 믿는 일로 우월감을 느끼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와 다른 생각은 틀린 생각이라 치부하며 자신의 신을 믿지 않는 것을 우매한 정신으로 폄하하는 사람들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종교에서 얻을만한 건 뭘까? 각각의 종교에서 말하는 초월적 존재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 않더라도 가슴 속 어딘가에 무언가 의지할만한 존재를 간직하는 일만은 가치 있는 일 같다. 물에 빠졌을 때 기도하며 동아줄이 내려오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용기를 부여할만한 그런 존재가 나에게는 신이 될만하다. 


 몇 년 전 어떤 책에서 "진실의 적은 거짓이 아니라 신화다."라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무릎이라도 칠 만큼 기뻤습니다. (…) 신격호와 전설이 싯다르타라는 역사적인 인물을 죽이고 있는 주범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한때는 우리에게 그런 요소들, 그런 표현 방법들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 같은 것들이 싯다르타를 역사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P. 27 

 

 편지는 그런 면에서 종교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알겠지만 훈련소에서 받는 편지 한통의 위력은 대단하다. 기다림과 그리움이 온전히 담겨 오랜 시간 정성들여 쓰인 편지는, 요즘에 스마트폰으로 1초면 보낼 수 있는 메신저의 메시지와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비로소 힘을 낼 수 있는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깨닫게 하는 도구가 바로 편지다.「성지에서 쓴 편지」​는 불교와 붓다(석가)라는 신념으로 굳게 묶인 호진 스님과 지안 스님이 주고 받은 편지를 모은 책이다. 그들의 편지에는 편지에서 얻을 수 있는 그리움이 담겨 있고 종교에서 얻을 수 있는 의지 또한 빼놓지 않았다.


 뒷날 싯다르타가 소나 비구에게 거문고의 비유로써 설명했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거문고 줄은 지나치게 팽팽해도, 반대로 지나치게 느슨해도 좋은 소리를 낼 수 없지 않습니까.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줄이 적당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수행을 위해서도 두 극단에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P. 84 


 호진 스님이 붓다의 뒤를 따라 떠난 1,600리 순례 길 여정은 무척 고단한 길이라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인데, 호진 스님과 지안 스님의 불교에 대한 태도는 굉장히 겸손해 놀랄만하다. 그건 바로 깨달음이 '고행'에 있지 않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붓다 역시 고행이 깨달음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그것을 전파하려 발을 돌렸다. 역사와 신화가 된 붓다의 모습을 현재에 맞춰 형상화 시키는 모습은 그들의 성지가 '고행'이 아니라 이미 마음에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한다. 해골물로 유명한 원효 스님 역시 모은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았나. 편지로 주고 받은 그들의 생각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내 마음의 성지, 그 위안의 장소 또한 보이는 것만 같다. 


 종교는 자칫 교조의 역사를 미화시키기 위해 허구적이고 초역사적인 이야기들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것은 아마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러한 설화들이 가지는 전설의 상징성을 잘못 받아들이면 맹신에 빠져 문제가 생기지요. 결과적으로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 의해서 오도되어 그릇된 종교관과 인생관을 가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렇게 오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중간자의 역할이 있어야 하고 올바른 이해를 하도록 도와주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P.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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