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바라보고 멈춰 서서 찍어온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차츰 내가 되고 싶어졌다.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려 애쓰는 대신 더욱더 내가 되어야지 하고, 자꾸자꾸 오래오래 그저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나무처럼. - P167
더디게 자라는 나무가 저 먼 높이에 이르기까지의 세월이란 어떤 것일까.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훌쩍 넘어선 나무의 일생을 생각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뒤에도 이 자리에 계속 남아 있을 나무, 아주 먼 미래에 나 같은 누군가가 똑같이 올려다볼지 모를 나무를. - P172
여행지에서 그런 식의 독서를 하기엔 시집만큼 좋은 친구가 없다. 이미 읽었던 시가 다시 읽어도 또 좋을 때, 나는 그것이 시인과 함께 걷는 산책 같아 좋았다. 말수 적은 시인의 곁을 따라 걸으며, 드물게 꺼내놓는 말 중에 기억하고 싶은 것이 생길 때마다 마음의 귀퉁이를 작게 접어두는 기분. - P179
바다 속에서 막 꺼낸 젖은 얼굴 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 눈을 감았다 뜨는데 머리 위로, 온 하늘에, 진득한 노을이 내리고 있었다. 배를 타고 나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멀리까지 나와 있어서 보이는 주위는 온통 바다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바다뿐인 곳에서, 짙어가는 노을이 시시각각 하늘과 바다의 빛을 바꾸어 놓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 P180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뭐든 열심이지만, 사실 다 살고서 돌아보는 시점에선 그 ‘열심‘이야말로 인생을 낭비한 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건 좀 이상한말이기도, 기운 빠지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과하게 파이팅이 들어가 있어 기운을 좀 빼도 되는 사람들이니까.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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