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 앞 보리수를 찾아가듯 그날 이후 텅 빈 채 흘러간 한달의 날들을 돌아본다. 뭔가 부글거리는 것들이 그 안에 있다. 나는 살고 싶은 것이다. 일하고 싶은 것이다. already but not yet. - P59
한 생을 세상에서 산다는 건 타향을 고향처럼 사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때가 되면 우리는 문득 거기가 타향임을 깨닫고 귀향의 꿈과 해후하는 것은 아닐까. 나 또한 그러하기를 바란다. 과연 내가한 생이라는 타향의 삶을 잘 살았고 잘 살고 있는지 그것이 내내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 P62
선생님은 지금 비상사태예요, 그렇게 슬프거나 울적할 시간이 없어, 라고 그는 나를 탓한다. 그가 옳다. 나는 존재의 바닥에 도착했다. 단독자가 되었다. 본질적 타자성의존재가 되었다. 이제 나는 나의 삶을 혼자서 다 껴안아야한다. 그런데 내가 이토록 무거웠던가. - P70
문득 말년의 롤랑 바르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그가 폴 발레리를 따라서 ‘나만을 위한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어 했는지, 왜 생의 하류에서 가장 작은 단독자가 된 자기를 통해서 모두의 삶과 진실에 대해 말하는 긴 글 하나를쓰려고 했는지...... 나 또한 나의 하류에 도착했다. 급류를 만난 듯 너무 갑작이어서 놀랍지만 생각하면 어차피 도달할 곳이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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