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
토마 귄지그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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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의 비교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독보적인 분야, 동물원. 만약 사람이 철장 안에 갖혔다면? 그런 황당한 가정까지도 필요없다. 철장안의 동물들이 사람을 구경하는 거라면?

인간의 악랄이나 사악에 비한다면 동물원의 보호막은 피크닉을 온 단란한 가족이 아니라, 동물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갖혀있다는 조건만 제거하면. 기린이, 코끼리가, 혹은 맹수가 우리 밖을 아무렇지 않게 서성인다면 도대체 누가 더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에 의하면 당혹스러운 건 어쨌든 인간이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단편집에 동물원의 동물이 뛰쳐나오는 이야기 따위는 없다. 직유하자면 동물과 같거나, 못한 인간들이 등장하기는 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의 광대는 인간이다.




얼마나 하찮은 인간이 나오느냐를 지켜보는게 관람포인트다. 물론 그 하찮은 인간이 나와 얼마나 닮았는지 비교해보는 내밀한 작업도 간혹 필요하다. 강요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저 신기하다는 이유로 먼 나라 동물들을 모아놓고 구경을 일삼는 것처럼,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딱 그만큼의 영혼없는 행위가 실은 인간의 척도라고 생각하면 맞다.
 
훗날 그는 카티가 갑작스럽게 집을 떠난 건 그 여자의 성격에 뭔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먼 훗날, 그는 이 결론을 더욱 확장하여, 여자란 전부 우울증환자에 한심한 미친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 남자를 딱히 욕하고 싶은 건 아니다. 집을 나간 카티도 잘한것만도 아니지 않은가. 독자에게 가출의 이유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말이다. 남자의 진술만으로 남자를 욕하거나 두둔하는 건, 확실히 반칙이다. 그래서 그에게 한가지 질문만 더하고 싶다. 지금 계신 곳이 우리 안인지, 밖인지.

울보 계집은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그는 울보년의 엉덩이를 물어뜯었다. 바닐라와 호두 맛이 났다. 샘물의 맛, 복숭아와 캐러멜의 맛, 불타오르는 숲의 맛이었다.

르노4를 도난 당한 건 그였다. 르노4에서 맛이 다른 세 명의 여자를 뜯어 먹고 죽인 건 그가 아니었다. 법적으로 그는 엄연히 피해자다. 그는 깨끗이 청소되긴 했지만 영상은 오히려 분명한, 돌려받은 차 안에서 꿈같은 범죄현장을 재현한다. 어디까지나 쇠약한 인간의 상상만으로. 그러나 빌어먹을, 너절한 인간의 탈을 쓰고 태어난 건 실제다. 이 단편의 제목은 '금붕어'다. 3초의 기억으로 유명해진 붕어씨. 인간이라는 사실을 3초마다 떠올려야만 하는 운명의 주인은 그일까, 금붕어일까.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이란 제목에는 뻔히 드러나는, 반어 축에도 안끼는 반어법이 사용됐을 것이다. '거대한 인간 소국'을 다루려는 작가는 상당히 자극적인 상상력을 들고 나온다. 그에 걸맞게 쓸만한 데가 하나도 없는 인간들을 전시한다. 그런 류의 인간들은 포르노 잡지만큼이나 욕정적이다. 그것이 외설적인 이유는 우리의 근본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 너무도 명징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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