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강의 - 미국 명문대 교수가 추적하는 뱀파이어의 세계
로렌스 A.릭켈스 지음, 정탄 옮김 / 루비박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사후에 뱀파이어가 되는 후보군은 자살이나 무기에 의한 살해, 심장발작의 경우에서처럼 대개 즉사한 사람들이다. 부지 불식간에 일어나는 즉사 또는 급사(공격에 의한)는 살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리고 의학적인 확인에 의해서도) 의심스러운 시체들은 실제로도 특히 겨울에 매장된 경우에는 당연히 매우 느리게 부패한다. 급사한 시체의 경우, 부패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가상적인 특수효과를 연출하기도 한다. 급사한 시체는 부패 과정에서 피가 입으로 몰리고 몸이 부풀며 외관상 피부가 싱싱해진 것으로 보인다.(이것은 피부와 손발톱의 속살이 드러나 사실을 피부가 유실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영(뱀피리즘의 출발점)의 측면에서, 때 이른 매장(프로이트가 섬뜩하다고 말하는 바로 그것)은 여전히 우리에겐 뱀파이어를 받아들이는 첫 번째 근거가 된다.  -<뱀파이어 강의>에서




때 이른 매장! 고통스러운 상상이다. 사후이면서 아직 '살아 있는'경험. 구부러진 손발톱에 혈을 뭍히고 관뚜껑을 향해 몸부림 쳤을 처절하게 뒤틀린 시체는 외관상으로는 공포이지만 '애도'의 관점에서는 비극이다.

뱀파이어. 비어있는 관 속에서의 칩거와 인혈을 찾기 위한 밤사냥을 여지없이 떠올리게 하는 공포 영화의 주인공. 하나같이 기구한 죽음의 사연을 지닌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행동 양식에 촛점이 맞춰져왔다. 약간 창백하거나 우울한 기질 뒤에 기괴하고 끔찍한 실제가 드러나는 양상으로 말이다. 

최근 <렛미인>이라는 영화가 뱀파이어 영화에 대한 신선한 감각을 내놓긴 했지만 어쨋거나 '뱀파이어'영화는 오락물에 불과했다. 공포와 미지를 맛보고 상상의 영역을 체험하는 정도면 만족스러울 그런 장르였다. 하지만 이 책<뱀파이어 강의>는 상상속의 흡혈귀를 밖으로 끌어내지 못해 안달이다. 샐 수도 없을만큼 많은 뱀파이어 영화들을 소개하고 분석하면서 프로이트, 마르크스, 니체까지 동원되고, 뱀파이어의 기원으로 모자라 잠재의식이나 정신분석학적 접근을 주로 한다.

영화출처; 네이버 영화검색

일단 시작된 강의는 26강까지 이어진다. 각 장에 부제라도 붙었다면 이해하기가 훨씬 좋았겠지만 이 책, 과히 친절하지 않다. 이미 10년이상 지속된 대학의 인기강의가 책으로 발간된 경우라니 주제의 참신함이나 깊이에 이끌려 묵묵히 읽는 수밖에 없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영화의 문학의 주인공으로 발탁되는 뱀파이어에게는 도데체 어떤 학술적 가치가 있는 것일까. 솔직히 책을 읽고도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안면식도 없는 영화나 문학의 인용과 해석이 장막을 만들고, 정신분석학적 접근 역시 체계적으로 표명된 기술방식이 아니었다. 바라건데 강의라면 재미있게 들었을법한 자유로운 서술이 이어진다.

거창할 듯한 뱀파이어의 기원이나 의미를 한데 모으기 보다는 영화속에, 문학속에, 학문속에 산재해 있는 뱀파이어를 산발적으로 만나야만 한다. 가령 프로이트는 죽음을 맞히하는 우리의 두 가지 상반된 모습(책에서는 양가성이라는 말을 쓴다)을 지적한다. 망자에 대한 예우에 반해 망자의 부활 역시 두려워하는 인간의 모습이 '애도'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애도'란 상당히 중요한 감정인데, 뱀파이어의 후보군에 포함되는 망자들은 모두 적절히 애도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오로지 정신분석만이 뱀피리즘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라고 공언한 저자는 둘 다 '죽었으나 죽지 않은 자에 관한 경쟁 과학'이라는 공통점을 향해간다.  

잘못된 사망판단이 산 자를 무덤에 집어넣었고, 뱀피리즘의 근거가 되었다고 해도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큼 변하지 않는 원흉이 또 있을까. 

또 다른 뱀파이어에 담긴 상징 중 유년기의 어머니와의 결속문제가 등장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위해 어머니의 개인적 공간을 소비(젖)하고 침범하는 시기. 이 폐기되었어야 하는 단계가 귀환하면서 나타난 뱀피리즘이 보호본능을 야기하는 것일까. 확실이 뱀파이어들은 아이처럼 이기적이고 기생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반면 목표물에 대한 굉장한 파워를 보여주기도 한다.)

뱀파이어에 관한 밀착 접근은 이만하면 만족스럽다. 신화적이기까지 한 존재에 대한 당연한 예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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