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
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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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2019년 초판)
저자 - 오테사 모시페그
역자 - 민은영
출판사 - 문학동네
정가 - 14500원
페이지 - 371p



이것은 내가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2016 맨부커상 최종 후보작
2016 펜/헤밍웨이상 수상작
2017 <그랜타> 선정 미국 최고의 젊은 작가



한마디로 돌풍을 몰고 온 신인작가의 괴물같은 데뷔작이 출간되었다. 영미문학권에서 숱한 화제를 뿌린 작품이라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국내에도 출간되어 만나게 되었다. 24세 여성 아일린이 차디찬 혹한의 지옥같은 현실을 벗어나 자기안의 껍질을 깨고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 일주일에 걸쳐 펼쳐지는 작품인데, 사건이 있던 크리스마스로 부터 한주전인 금요일 부터 요일별로 흘러가는 이야기는 날짜가 지날수록 크리스마스의 기대감이 배수로 증폭되듯 24년간 억눌려 있던 아일린의 누적된 감정이 점층적으로 서서히 부풀어오르다 주의 막바지 터지기 일보직전까지 팽배해지고 마침내 크리스마스 이브날 뻥! 하고 폭발해버린다. 내 인생을 바꾼 최악의 일주일...그녀의 지극히 개인적 시간속으로 따라가 보자...



뭣같은 24년의 인생을 보냈던 X빌 마을...마을의 존경받던 경찰관이던 아빠는 엄마가 죽은 후 매일밤을 술로 지새더니 알콜중독자가 되어 강제은퇴하고 집에 처박혀 그의 분신 권총과 독주 한병을 친구삼아 벌레같은 인생을 보내고, 언니는 외간 남자들에게 다리를 벌리며 창녀짓을 하더니 17살에 집을 나가 연락이 끊겼다. 소년원에서 사무업무를 보는 24살의 아일린은 청교도적 생활로 금욕주의를 실현시키......기는 개뿔...-_-;;; 학교 댄스파티때 선배와의 첫키스 이후 어떠한 염문에도 휘말리지 않고, 따라서 성경험도 전무한 강제 금욕의 삶을 산다. 미치도록 원하지만 그누구도 쳐다보지도 않는 극한의 고립감...자연스레 자존감은 땅바닥을 뚫고 지하 멘틀까지 처박혀 버리고, 심성은 뒤틀릴대로 뒤틀려 충동적 절도를 습관처럼 저지르고 소년원의 잘생긴 교도관 랜디에게 강간당하는 꿈을 꾸고, 주말마다 랜디가 다른 여자와 데이트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하고 시간을 죽친다...그렇게 매일 똑같던 금, 토, 일요일이 지나고...월요일 소년원에 출근한 아일린은 소년죄수들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새롭게 입사한 리베카와 만나는데.....



사실 매일이 거지같았던 아일린에겐 X빌에서 보낸 12월의 마지막 일주일이 그녀의 인생을 바꿀 엄청난 사건이었겠지만, 그걸 바라보는 독자에겐 충격을 줄 정도의 사건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강렬한 스릴과 반전을 기대한다면 그 기대엔 못미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 작품은 사건이 주는 강렬함 보다는 아일린의 기괴하면서도 망상적인 내면 심리를 공들여 묘사하여 캐릭터에 몰입하게 만든뒤 그녀가 겪게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그녀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만들어 감정이입하게 하는 심리작품으로 봐야 할것 같다. 그래서 서사보다는 그녀의 뒤틀린 내면심리에 더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딱히 복선이랄건 없지만 지리하게 소개되는 그녀의 과거와 경험들이 탄탄하게 쌓여 결말의 당위성을 가져다 주는 밑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섹스한번 못해본 볼품없고 비루한 내게 세상의 예쁘고 착한애들은 전부 가식이고 위선이다! 라며 소변을 보고 씻지 않은 손으로 악수를 하고, 예쁘게 생긴 옷가게 점원이 한눈파는 사이 스카프에 초콜릿 얼룩을 닦고 드레스를 찢으며 통쾌해 하는 비틀린 모습...-_-;;; 사실 방법에 차이는 있지만 나보다 잘난 넘사벽 엄친아, 엄친딸에게 이런 열등감의 심통은 누구나 한번쯤 느껴 보지 않았을까 싶다. 복수 여부야 케바케겠지만...다만 아일린의 열등감은 조금 위험할 정도로 심각한게 문제인데...그녀의 처참한 주변 상황을 보고 있자니 그녀의 일탈은 제정신으로 살기 위한 심폐소생과도 같은 애잔함이 묻어난다. 그래서....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결정이 약간은 이해....아...아냐!!!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나...하지만...그녀가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일이잖나....이런...나까지 갈팡질팡 혼란스럽게 만드네... -_-;;   



"짐 톰프슨과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만난다면 아일린과 같은 존재를 만들자고 공모했을 것 같다." by 존 밴빌(소설가)



더럽게 암울하고 끝없는 절망감으로 침잠하게 만들면서도 그녀의 애쓰는 자존심과 소심한 복수가 애처롭다기 보단 기이한 귀여움으로 다가온다. 내게도 아일린 같은 다크함이 깊이 베어있기 때문일까...-_-;; [인간실격]의 요조의 외모가 못났다면 그도 아일린처럼 비틀리고 뒤틀렸을까.... 소년원에 수감된 소년의 참혹한 진실, 끔찍한 오발사고, 선택의 기로에 선 여성....이보다 더욱 진하게 펼쳐지는 아일린의 인간적 성장이야기...섬세한 심리묘사와 기이한 캐릭터가 주는 의외적 상황이 독특함으로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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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
윤재성 지음 / 새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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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 (2019년 초판)
저자 - 윤재성
출판사 - 새움
정가 - 13000원
페이지 - 368p



화마에 모든 것을 잃은 남자
무엇이든 태워 버리는 방화범



언젠가 인간이 느끼는 최고의 통각 순위를 본적이 있는데, 그중 화상치료가 최상위쪽에 랭크된 것을 본 기억이 난다. 피부와 근육의 수분을 빼앗아 수축되고 엉겨붙는데다 수포와 진물은 쉴새없이 흐르고, 작열감과 고통은 완치 이후에도 환상통으로 환자를 괴롭힌다. 지옥같은 드레싱과 치료를 마치고 붕대를 풀고 났을때 마주하게 되는 처참한 흉터는 남아있던 마지막 자존감 마저 무너트릴 정도로 처참하다. 최악의 고통과 완치할 수 없는 상흔을 남기는 화재...그런의미에서 이 화재를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방화범은 묻지마식 범죄자중 가장 악질이고 가장 최악의 범죄자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것을 앗아가고 시꺼먼 재만 남겨놓는 최악의 재난 화재...이 화재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화상으로 얼굴을 잃고, 남은것은 시든때도 없이 찾아오는 극심한 고통과 발작...그리고 알콜중독...이 저주받은 남자의 마지막 목표는 화재를 일으킨 방화범을 잡는것 뿐이다. 모든 것을 잃은 남자의 인생을 건 마지막 대결이 펼쳐진다.



3년째 경찰을 지망하는 고시생 백수 형진은 남다른 의협심으로 오늘도 거리를 돌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사람들을 돕고, 알바를 마치고 늦은저녁 살고 있는 원룸으로 귀가하던 형진은 벽앞에서 무언가를 뿌리고 있는 의문의 남자를 목격한다. 수상하게 여긴 형진은 남자를 불러새우고, 그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액체가 얼굴과 몸에 흩뿌려진다. 비릿한 피냄새와 함께 풍기는 시너냄새...순간 마스크를 벗은 남자의 입에서부터 시작된 불길이 형진의 온몸을 덮친다. 온몸에 중증화상을 입고 수일간 혼수상태에서 극적으로 깨어난 형진에게 불에 전소된 원룸과 안에서 자고 있던 여동생의 죽음이란 비극적 소식이 전달되고, 괴로움에 미칠듯 발광하던 형진은 경찰서로 뛰쳐나가 방화범의 방화사실을 전하지만 돌아오는건 미친놈 취급 뿐이다. 복수의 칼을 갈며 자신의 손으로 방화범을 잡겠다며 서울시내 화재사건을 따라다닌지 8년...화재보험금도 떨어지고 노숙자 신세가 된 형진은 때때로 찾아오는 작열통을 잊기 위해 깡소주를 들이키는 알콜중독자가 되었다. 그런 어느날 흉물스러운 화상자국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형진에게 나타난 미모의 여성...그녀는 자신을 사회부 기자라고 소개하는데.....


입에서 불을 뿜는 미치광이 방화범과 복수심에 불타는 형진...그리고 8년만에 발생한 대형 화재사건....그놈이 다시 나타났다!!



라고...미스터리한 방화범과 형진의 극한 대결이 펼쳐지리라 생각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 생각했는지 의외의 발런들이 추가투입된다.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조절하지 못해 반복적으로 방화를 저지르는 병적방화범에 모종의 음모를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방화를 저지르는 목적방화범까지...확실히 1:1 대결보다 1:2 대결로 확장된 스케일과 스릴감이 배로 늘어나는건 사실이다. 여기저기 동시에 대형화재가 터지고 형진과 특종을 위해 형진을 돕는 사회부기자 정혜가 이를 막기위해 이리뛰고 저리뛰고 고군분투하기 때문이다. 허나 문제는 비중이다. -_- 출판사에서 공개한 스토리나 광고문구로는 형진과 미친방화범의 치밀한 두뇌싸움이 펼쳐진다고 써놨지만 막상 까보면 계획방화범의 비중이 훨씬 높다. 병적방화범과 계획방화범의 비율이 3:7 정도인데 어차피 같은 방화범인데 문제될게 있냐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두 방화범의 성질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장르 자체도 갈린다. 병적방화야 집요한 추적이 주를 이루는 스릴러인 반면, 계획방화는 정치가의 더러운 음모로 인한 정치깡패 소위 조폭이 연루되면서 하드보일드에 가깝게 흘러간다. 머...스릴러와 하드보일드 두가지 재미를 모두 만족하는 뛰어난 작품인건 맞는데, 막상 책을 펴들던 내가 기대했던 스릴러와는 달리 조폭물이 펼쳐지니 살짝쿵 당황스러웠달까...-_-



하지만 초반의 기대와 달랐다는 불만을 덮어버릴 정도로 재미있었던것도 사실이다. -_- 방화범을 잡기위해 모든걸 내던졌지만 세상의 멸시에 불을 싸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형진의 혼란스러운 감정도 충분히 이해되고, 방화범을 추적하면서 외면의 상처를 극복하고 감춰져 있던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잡아 성장해 나가는 모습도 충분히 설득력있었다. 단순히 방화범을 잡는것 외에 이런 형진의 내면적 성장스토리가 이야기에 깊이를 더해주고 캐릭터에 감정이입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한다. 물론 개성강한 캐릭터와 빌런들은 말할것도 없을테고...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었지만 몇가지 아쉬움이 남는데, 첫번째로 미스터리한 방화범의 정체...이건...[X맨] 뮤턴트인가?...현실성이 확 떨어지면서 막바지까지 가져온 긴장감을
여지없이 뭉개버린다...ㅠ_ㅠ...한가지 더, 한국영화 결말에 꼭 맥락없이 감동코드를 집어넣는게 관행처럼 반복되는데, 여기에도 막바지 조폭과의 집단대치, 방화범과의 마지막 결투 장면에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감동 비스무리한 무리수를 던지면서 쌓아뒀던 점수를 깎아 먹는다...



무려 대통령을 넘보는 야욕의 정치가의 더러운 흑막...물불 가리지 않는 정치깡패의 악랄한 범죄행위...입에서 불을 뿜는 미스터리한 방화범...이 모두와 맞서 외롭게 투쟁하는 혈혈단신 붕대맨 형진의 혼신의 추적이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겁고 스피디하게 펼쳐진다. 눈에 띄는 반전보다는 처음의 긴장을 끝까지 묵직하게 끌고나가는 우직한 스릴러였다. 데뷔후 두번째 작품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원숙한 완성도를 보이는 작품이었고 그래서 차기작이 더 기대되는 작가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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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년 봄의 제사 - 무녀주의 살인사건
루추차 지음, 한수희 옮김 / 스핑크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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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년봄의제사 :무녀주의 살인사건 (2019년 초판)

저자 - 루추자

역자 - 한수희

출판사 - 스핑크스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50p



본격 샤머니즘 학술 미스터리!!



기원전 100년 고대 중국 한나라를 배경으로 무녀들의 질곡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비극적 미스터리...[원년 봄의 제사]이다. 주류에서 살짝 벗어난 컬트적이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미스터리 작품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를 출간한 스핑크스 출판사에서 뒤이어 선보인 작품이 이 작품이라는 데에서 전혀 다른 장르, 다른 나라, 다른 배경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이 독창적 신박함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을 것이란건 굳이 작품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두 작품 모두 (내용이던, 설정이건, 트릭이건 간에) 기존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의 미스터리이다. 띠지에 쓰인 '미쓰다 신조'의 <미스터리 사상 전대미문의 동기!>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고대 중국의 배경이 조금은 낯설고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독특함으로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기원전 100년, 한나라 변방 운몽택에 무녀가 되기전 세상을 돌며 견문을 넗히는 소녀 오릉규와 규의 하인 소휴가 손님으로 방문한다. 대대로 초나라의 무녀를 배출했으나 세상이 바뀌고 깊은 숲속에 은거중인 관가의 딸 관노신과 오릉규가 우연히 사냥을하다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되어 노신의 초대로 운몽택에 잠시 머물게 된 것이다. 운몽택으로 향하던중 노신은 4년전 친척집에서 벌어진 일가족 몰살사건을 오릉규에게 이야기한다. 매섭던 4년전 겨울...아버지에게 훈육으로 매질을 당하고 창고에 갖혀있던 장녀 약영은 속옷차림으로 간신히 이웃한 노신의 집으로 도망친다. 노신의 언니 기의는 고모부에게 약영의 선처를 말하고자 사촌집을 찾아갔는데, 문앞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사촌오빠를 시작으로 마루에는 고모부가, 안채에는 고모와 6살난 조카가 칼에 맞아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사방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친척집으로 가는길은 오솔길 뿐...그리고 발자국은 약영이 집밖으로 나간 발자국외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는 상태...장녀를 제외한 일가족이 몰살당했지만 범인은 밝혀내지 못하고 홀로남은 약영은 친척인 노신의 집에 양녀로 들어온다. 이야기를 듣던 오릉규는 나름의 날카로운 추리로 범인을 지목하지만, 노신의 이야기만으로는 정확한 범인을 지목하지 못하고...노신의 집에 도착한 오릉규를 맞이하는 연회가 마련된다. 제사와 각종 학문에 폭넓은 지식을 자랑하는 오릉규는 노신의 가족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그의 가족들과 단숨에 친분을 쌓는다. 그리고 며칠뒤...개울가에서 멱을 감고 돌아가던 노신과 오릉규는 창고 앞에 쓰러져 죽어있는 고모를 발견하는데....고모의 죽음을 시작으로 관씨 가문에 또다시 피바람이 불어닥친다.....



나라의 부흥을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국운을 점치는 무녀...언뜻 떠오르는건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문소리'님이 열연했던 야망가득한 무녀의 모습 정도인데, 작품속 기원전 무녀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욱 가혹하고 가여운 운명에 놓인 여성들이었다...춤과 기예, 학문과 시에 능통하기 위해 어릴적부터 혹독한 훈련을 겪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학대에 가까운 가차없는 매질이 따라오고(관약영) 무녀가 결혼하면 가문에 불운이 온다는 설때문에 평생 홀로 늙어야 하거나(오릉규) 설령 결혼한다 쳐도 노비를 데릴사위로 들여 무녀의 데를 잇는 생식의 용도로만 쓰이는 비천한 신세라니(관기의)...-_-;;; 양반에게 몸파는 기녀보다도 더 박복한 신세라는 그녀들의 한탄이 가슴에 사뭇친달까...십대의 노신과 오릉규와 더불어 스물을 넘긴 약영, 기의 같은 여성들에게 짙게 드리운 그늘과 정신이상, 죽음 등은 피할 수 없는 무녀라는 가혹한 운명에 꺾여버린 불행을 보여주는듯 하여 안타깝게 다가온다.     

  


밀실상태에서 일가족 몰살이라는 흥미로운 미스터리도 미스터리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중국의 고대 인문학인데, 점술학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문학, 시학 등등 문화, 예술, 학문 전방위에 걸친 다양한 학문들이 꽤 비중있게 다뤄진다. 무녀에 관련된 주역, 점성술, 별자리, 고대신앙인 동황태일, 동군(그래...이거야 무당에 대한 내용이니 차치하더라도) 외에도 고전을 엮은 [예기], 초나라의 사를 엮은 [초사]를 비롯한 각종 고문들과 시문들이 주루루 나열되는것을 보면 지금 내가 미스터리를 읽고 있는건지 중국고대 문헌논문을 보고 있는건지 헷갈릴 정도로 작가는 방대하고 해박한 지식을 작품속에 마음껏 자랑한다. 고대 중국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난해함에 GG를 칠수밖에 없었는데...설렁설렁 읽으면서 넘기다 보니 얼래...이 안에 결말의 핵심 복선이 숨겨져 있는것 아닌가!! ㅠ_ㅠ '미쓰다 신조'가 언급한 전대미문의 동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오릉규가 경전과 문구들을 언급하는이유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본격 학술 미스터리라 일컬었던 '로랑비네'의 [언어의 7번째 기능]의 동양판이랄까...-_- 무구한 역사와 축적된 문화를 자랑하는 지적 미스터리로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케 하는 작품임엔 틀림없었다. 물론 그만큼의 난해함도 감수해야 겠지만 말이다...



어쨌던, 작가는 두번에 걸쳐 범인과 범인의 동기를 맞춰보라며 독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도전장을 내민다..-_-) 그만큼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와 이야기에 자신이 있다는 반증이리라. (하긴 이 살인동기를 맞출 수 있는 독자는 아마도 없을듯...) 무녀로 길러진 소녀들의 비극적 운명과 그녀들을 속박하는 관습과 금기를 깨트리고 자유를 향한 애타는 갈구, 엄격한 신분제도와 수천년에 걸친 학문들이 뒤섞여 기존의 범인찾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해법이 제시된다. 일단 결말의 납득과는 별개로 이런 식의 발상의 전환은 처음인지라 어안이 벙벙한 느낌이랄까...밀실살인의 트릭은 어찌보면 지극히 간단할지 모르지만 그 동기만은 그리 간단하게 풀지 못할 것이다. 서서히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같은 아시아 문화권이지만 한국, 일본과는 전혀 다른 정서를 통해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그 충격은 이내 신선함으로 변화한다. 학술 미스터리 답게 알면 알수록 더욱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당시의 중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작품은 더욱 재미있게 느껴질 것이다.



유독 십대 소녀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되는데, 대망의 사건의 동기도 그렇고 살짝 백합물의 향기가 어려있는것 같은데...나만 그렇게 느낀건지는 모르겠다..-_-  난해한 학술배틀을 이겨내고 대망의 결말을 납득한다면 신박할 것이요, 납득하지 못한다면 지루한 고서와 다름없을 것이다. (도 아니면 모다.) 작가가 던지는 도전장에 기꺼이 응할 지적이며 도전정신 가득한 용자들이여...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중국식 고전트릭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드아!~ 



혹독한 겨울이 가고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피어나는 새싹처럼 오릉규와 관노신은 저주받은 운몽택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 한발을 내딛는다. 그렇다...오릉규 시리즈로서 2편을 예고한다는 말이다. 유랑무녀 규와 노신은 또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될지...어떤 의식의 흐름에 따른 풀이를 보여줄지...얼마나 깊이있고 방대한 지적유희를 준비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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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지음, 강승희 옮김 / 천문장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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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내가남자를죽였어 (2019년 초판)
저자 - 오인칸 브레이스웨이트
역자 - 강승희
출판사 - 천문장
정가 - 13800원
페이지 - 259p



희대의 싸이코패스 악녀...그리고 그녀의 천사같은 언니


북미나 유럽의 스릴러는 많이 접해봤지만 뜨거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스릴러는 처음 접하는것 같다. 독특한 제목과 설정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스릴러 [언니, 내가 남자를 죽였어]이다. 사실 세상 살아가는 것이야 국가, 지역을 떠나 어디든 다를바 없을테고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이런 스릴러의 긴장과 묘미는 매한가지리라. 반면 스릴러라는 보편적 장르에도 북미와 유럽의 작품들이 각 국가의 고유의 색을 띄듯 이 작품도 아프리카 특유의 지역색을 엿볼 수 있어 한층 새롭게 읽을 수 있었다. 동생이 죽인 시체를 처리하는 언니...과연 이 자매에겐 어떤 말못할 사연이 숨어있을까....



아율라가 전화했다. 언니, 내가 그를 죽였어.
그건, 내가 다시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9page]


벌써 세 번째 시체처리...이제는 익숙해질때도 됐는데 아직도 가슴이 떨리고 불편하다.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려 해서 찔렀다는 동생의 말을 믿고 싶지만 남자의 등에 깊숙이 박힌 칼. 게다가 그 칼은 아버지의 유품으로 동생이 평소 아끼는 칼이니...일단 잡생각은 떨쳐버리고 강력한 표백제를 사용하여 핏자국을 지우고 집안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침대보에 시체를싸서 동생과 함께 차 트렁크에 실고 세번째로 찾아간 대교 아래 강물속으로 시체를 던진다...며칠뒤 남자의 실종이 화제가 되고 언니 코레드는 동생 아율라에게 당분간 조용히 지낼것을 신신당부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코레드는 짝사랑하는 의사 타데에게 온 신경을 쏟아붓고, 몇 년째 혼수상태로 가족도 외면한 513호실 남자에게 자신과 동생의 비밀스러운 사연을 하소연한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병원에 찾아온 동생 아율라....그리고 미모의 동생을 보고 한눈에 반한 의사 타데....짝사랑하는 의사를 동생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남자와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이 513호 병실의 환자는 기적처럼 정신을 차리는데....그녀의 평화롭고 안정된 일상에 금이 가려고 한다....



작품은 피를나눈 자매로서 가족의 죄를 어디까지 덮어줄 것인가에 대해, 날때부터 빼어난 미모로 뭇 남성들의 구애를 받아온 동생과 그에 반해 출중하지 못한 외모로 가족에게 조차도 비교와 무시를 당하며 살아온 언니의 뿌리깊은 열등감, 동생이 눈하나 깜빡 안하고 아무렇지 않게 애인과 교제의 끝을 살인으로 맺는 숨겨진 가족사 등등등 복합적인 심리적 갈등을 통해 긴장이 고조되고 어느새 언니의 입장에서 그녀의 판단과 결정에 대해 진지하게 고심하게 만든다. 살인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 없이 뇌가 빈듯한 여우같은 동생이 짝사랑 하는 남자까지 가로채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없는 언니의 답답하고 미칠듯한 심정이 처음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는데...그녀의 비극적 가족사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동생의 보호자로서 동생을 끝까지 지켜야만 했던 언니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된다고 해야할까...머...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 아율라가 백치 싸이코패스라는건 변함없지만서도...줄기차게 살인을 저지르는 핵폭탄같은 동생을 내쳐버리지 못하는 코레드의 기구한 운명에 조금은 동정심이 생겼다.



앞서 말했지만 아프리카 작품답게 작품 곳곳에 특유의 지역색을 배치해 놓는데, 아무리 뒷처리를 했다지만 세 명이나 죽여놓고도 자매들이 태연자약 할 수 있는 이유를 뒷돈만 밝히는 능력없는 부패경찰들 때문이라 설명하고 그와관련 에피소드를 넣어놓는가 하면 아직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부족국가의 풍습과 엄격하고 막강한 가부장제가 그려진다. 물론 이 같은 지역적 특성은 작품을 이해하고 그 정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배경이 현대임에도 불구하고 매매혼에 가까운 조혼 풍습이 남아있는걸 보면 그녀들이 여성으로 겪었을 고난이 얼마나 무거웠을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물론 그녀들이 겪은 비극이 살인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어쨌던...동생은 끊임없이 폭탄을 터트리고 언니는 줄기차게 수습하고...그러면서 동생은 얄밉게 약올리고 언니는 허벅지를 쑤시며 인내한다. 기이하게 뒤틀린 가족관계...언니는 동생의 저주같은 속박을 벗어날 수 있을까....기묘한 가족에 얽힌 잔혹 가족사가 위트와 코믹함으로 전개된다. 너무나 무겁고 극한의 상황인데도 깃털 처럼 가벼운 인물들의 행동이 씁쓸하게 다가오는...웃으면서도 등골 서늘한 심리스릴러랄까...아직 낯선 나이지리아에 대해, 그안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에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리뷰어스 클럽으로 서평의 기회를 준 출판사에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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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2019-04-03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파묻힌 거짓말 마틴 베너 시리즈
크리스티나 올손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파묻힌거짓말 (2019년 초판)

저자 - 크리스티나 올손

역자 - 장여정

출판사 - 북레시피

정가 - 16000원

페이지 - 526p




거대한 음모의 서막



노르딕 누아르를 대표하는 스웨덴의 걸작 하드보일드가 새롭게 국내 초역되었다. 스웨덴 범죄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며 북유럽 스릴러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작가 '크리스티나 올손'의 대표시리즈 '마틴 배너'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 출간된것이다. 바람둥이 변호사 배너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수임한 사건을 통해 거대한 음모의 한가운데 빠지게 되고, 자신의 인생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고군분투가 숨쉴틈 없이 휘몰아친다. 그야말로 뼈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북유럽의 차디찬 칼바람처럼 말이다...'파묻힌 진실'도 아니고 '파묻힌 거짓'이라니?...가려진 거짓을 걷어내야 비로소 숨어있던 진실이 나온단 말인가?...거짓마져 은폐 할 정도로 역겹고 추악한 진실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젊은 남자 하나가 사무실로 찾아와 부탁을 했다. 죽은 여동생의 누명을 벗기고 사라진 조카를 찾아달라고 했다. 처음엔 마지못해서였지만 나중에는 내가 이 사건에 점점 빠져들었다.

이제 나는 눈만 남기고 온몸이 늪에 빠진 꼴이 돼버렸다.....



뛰어난 두뇌회전, 그럭저럭 괜찮은 실적, 세상 모든 여자들과 잠자리를 가질 수 있는 자신감...자유연애주의 바람둥이 변호사 마틴 배너는 사고로 죽은 동생의 조카를 양녀로 맞아 기르는 미혼부 변호사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노숙자의 차림을 한 남자가 사무실로 찾아온다. 자신을 바비라 소개한 남자는 억울하게 죽은 동생의 누명을 벗기고 동생의 실종된 조카의 행방을 찾아달라 의뢰한다. 사라 텔...바비의 동생 사라 텔은 미국과 스웨덴을 오가며 다섯 명의 사람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으로 체포되어 공판직전 탈출하여 어린이 집에 있던 자신의 아들을 데리고 도주 후 그날 밤 다리에서 투신하여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경찰은 아들역시 그녀가 살해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수색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온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스물여섯 살의 연쇄살인범이 누명이었다는 오빠의 주장을 받아 들일 수 없었던 배너는 바비의 의뢰를 거절하려고 하지만, 바비는 배너에게 그녀가 무죄라는 증거라며 살인이 벌어진 시간대 살인사건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로 이동한 버스표를 내민다. 승차한 사람의 이름조차 표시되지 않는 단순한 버스표 한장이 누명의 증거라니....도저히 납득하기 힘들지만 강한 확신을 갖는 바비의 태도에 독자적으로 사건을 조사하는 배너는 생각지 못한 진실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갖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망자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사건을 파헤치다니...일단 독특한 사건의 도입부가 호기심을 일으키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다섯 살 양녀를 시터에게 맡기고 매일 저녁 눈맞는 여성과 섹스를 하고 귀가하는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보이 마틴 배너의 안정적이고 부족할것 없는 개인적 생활을 배치시키면서 사라 텔 사건에 엮이면서 배너가 얼마나 지옥의 구렁텅이의 나락으로 빠질지, 그 지옥의 밑바닥에서 어떻게 기어나올지 무척 기대하게(남의 불행을 기대한다는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_-;;) 만든다. 



그리고 그 (못된)기대는 몰아치는 반전의 반전과 끝도 없이 확장되는 스케일에 기대를 넘어서는 일종의 확신으로 자리잡는다. 사라 텔의 주변을 조사하면서 우연히 얻게된 그녀의 일기장...그리고 그 일기장에 언급된 루시퍼의 정체...텍사스와 스웨덴을 오가며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루시퍼의 이름값에 걸맞게 그의 악행은 상상을 초월하고, 매춘, 마약으로 교묘하게 연결된 검은 커넥션은 이미 국경이라는 경계를 허물어 버릴정도로 거대한 조직성을 갖는다. 줄곧 사라 텔과 루시퍼의 정체를 조사하면서 배너의 한켠에서 가열차게 울리던 경고음은 마침내 무시하지 못할 현실의 위기로 실체화되고...발을 빼기엔 너무 깊이 진창에 빠져버린 배너....이제는 사라 텔이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 사건을 해결해야만 한다....

 


제목이 [파묻힌 거짓말]이라서일까...이건 주변인들의 진술이 쌓일수록 앞선 사실은 거짓으로 뒤집히고...거짓과 진실이 끊임없이 혼재되면서 독자를 반전의 무아지경에 빠트린다. -_- 솔직히 대강의 커다란 줄기는 충분히 짐작 가능한데, 이런 스토리가 진행되야만 드러나는 사실을 통한 반전의 묘미는 전혀 예상 할 수 없는 터라 의외의 재미를 선사한다. 그와함께 미스터리한 수장의 국제범죄조직과 조직의 끔찍한 만행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젠장! 완전 잘못걸렸다' 같은 낭패감과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무기력감을 넘어서는 공포의 감정을 느끼는 배너에게 완전 감정이입 하게 만든다. 



정말로 사건은 나의 예상을 한~~~참 넘어서는 역대급 스케일로 확장되고...이 복잡한 이야기가 전혀 충돌없이 스무스하게 흘러간다. 오백여 페이지가 넘는 볼륨에도 거대한 이야기의 서막을 본것 같다. -_- 바꿔말해 이 사라 텔 사건은 [파묻힌 거짓말]에서 종료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네 그려...[파묻힌 거짓말]이 사라 텔을 위한 배너의 이야기였다면....다음 작품은 배너가 작품의 중심이 되는 진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강해진 배너의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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