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년 봄의 제사 - 무녀주의 살인사건
루추차 지음, 한수희 옮김 / 스핑크스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원년봄의제사 :무녀주의 살인사건 (2019년 초판)

저자 - 루추자

역자 - 한수희

출판사 - 스핑크스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50p



본격 샤머니즘 학술 미스터리!!



기원전 100년 고대 중국 한나라를 배경으로 무녀들의 질곡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비극적 미스터리...[원년 봄의 제사]이다. 주류에서 살짝 벗어난 컬트적이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미스터리 작품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를 출간한 스핑크스 출판사에서 뒤이어 선보인 작품이 이 작품이라는 데에서 전혀 다른 장르, 다른 나라, 다른 배경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이 독창적 신박함이란 공통분모를 갖고 있을 것이란건 굳이 작품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두 작품 모두 (내용이던, 설정이건, 트릭이건 간에) 기존에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의 미스터리이다. 띠지에 쓰인 '미쓰다 신조'의 <미스터리 사상 전대미문의 동기!>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고대 중국의 배경이 조금은 낯설고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독특함으로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기원전 100년, 한나라 변방 운몽택에 무녀가 되기전 세상을 돌며 견문을 넗히는 소녀 오릉규와 규의 하인 소휴가 손님으로 방문한다. 대대로 초나라의 무녀를 배출했으나 세상이 바뀌고 깊은 숲속에 은거중인 관가의 딸 관노신과 오릉규가 우연히 사냥을하다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되어 노신의 초대로 운몽택에 잠시 머물게 된 것이다. 운몽택으로 향하던중 노신은 4년전 친척집에서 벌어진 일가족 몰살사건을 오릉규에게 이야기한다. 매섭던 4년전 겨울...아버지에게 훈육으로 매질을 당하고 창고에 갖혀있던 장녀 약영은 속옷차림으로 간신히 이웃한 노신의 집으로 도망친다. 노신의 언니 기의는 고모부에게 약영의 선처를 말하고자 사촌집을 찾아갔는데, 문앞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사촌오빠를 시작으로 마루에는 고모부가, 안채에는 고모와 6살난 조카가 칼에 맞아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사방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친척집으로 가는길은 오솔길 뿐...그리고 발자국은 약영이 집밖으로 나간 발자국외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는 상태...장녀를 제외한 일가족이 몰살당했지만 범인은 밝혀내지 못하고 홀로남은 약영은 친척인 노신의 집에 양녀로 들어온다. 이야기를 듣던 오릉규는 나름의 날카로운 추리로 범인을 지목하지만, 노신의 이야기만으로는 정확한 범인을 지목하지 못하고...노신의 집에 도착한 오릉규를 맞이하는 연회가 마련된다. 제사와 각종 학문에 폭넓은 지식을 자랑하는 오릉규는 노신의 가족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그의 가족들과 단숨에 친분을 쌓는다. 그리고 며칠뒤...개울가에서 멱을 감고 돌아가던 노신과 오릉규는 창고 앞에 쓰러져 죽어있는 고모를 발견하는데....고모의 죽음을 시작으로 관씨 가문에 또다시 피바람이 불어닥친다.....



나라의 부흥을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국운을 점치는 무녀...언뜻 떠오르는건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문소리'님이 열연했던 야망가득한 무녀의 모습 정도인데, 작품속 기원전 무녀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욱 가혹하고 가여운 운명에 놓인 여성들이었다...춤과 기예, 학문과 시에 능통하기 위해 어릴적부터 혹독한 훈련을 겪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학대에 가까운 가차없는 매질이 따라오고(관약영) 무녀가 결혼하면 가문에 불운이 온다는 설때문에 평생 홀로 늙어야 하거나(오릉규) 설령 결혼한다 쳐도 노비를 데릴사위로 들여 무녀의 데를 잇는 생식의 용도로만 쓰이는 비천한 신세라니(관기의)...-_-;;; 양반에게 몸파는 기녀보다도 더 박복한 신세라는 그녀들의 한탄이 가슴에 사뭇친달까...십대의 노신과 오릉규와 더불어 스물을 넘긴 약영, 기의 같은 여성들에게 짙게 드리운 그늘과 정신이상, 죽음 등은 피할 수 없는 무녀라는 가혹한 운명에 꺾여버린 불행을 보여주는듯 하여 안타깝게 다가온다.     

  


밀실상태에서 일가족 몰살이라는 흥미로운 미스터리도 미스터리지만 그에 못지 않게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중국의 고대 인문학인데, 점술학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문학, 시학 등등 문화, 예술, 학문 전방위에 걸친 다양한 학문들이 꽤 비중있게 다뤄진다. 무녀에 관련된 주역, 점성술, 별자리, 고대신앙인 동황태일, 동군(그래...이거야 무당에 대한 내용이니 차치하더라도) 외에도 고전을 엮은 [예기], 초나라의 사를 엮은 [초사]를 비롯한 각종 고문들과 시문들이 주루루 나열되는것을 보면 지금 내가 미스터리를 읽고 있는건지 중국고대 문헌논문을 보고 있는건지 헷갈릴 정도로 작가는 방대하고 해박한 지식을 작품속에 마음껏 자랑한다. 고대 중국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나로서는 난해함에 GG를 칠수밖에 없었는데...설렁설렁 읽으면서 넘기다 보니 얼래...이 안에 결말의 핵심 복선이 숨겨져 있는것 아닌가!! ㅠ_ㅠ '미쓰다 신조'가 언급한 전대미문의 동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오릉규가 경전과 문구들을 언급하는이유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본격 학술 미스터리라 일컬었던 '로랑비네'의 [언어의 7번째 기능]의 동양판이랄까...-_- 무구한 역사와 축적된 문화를 자랑하는 지적 미스터리로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케 하는 작품임엔 틀림없었다. 물론 그만큼의 난해함도 감수해야 겠지만 말이다...



어쨌던, 작가는 두번에 걸쳐 범인과 범인의 동기를 맞춰보라며 독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도전장을 내민다..-_-) 그만큼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와 이야기에 자신이 있다는 반증이리라. (하긴 이 살인동기를 맞출 수 있는 독자는 아마도 없을듯...) 무녀로 길러진 소녀들의 비극적 운명과 그녀들을 속박하는 관습과 금기를 깨트리고 자유를 향한 애타는 갈구, 엄격한 신분제도와 수천년에 걸친 학문들이 뒤섞여 기존의 범인찾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해법이 제시된다. 일단 결말의 납득과는 별개로 이런 식의 발상의 전환은 처음인지라 어안이 벙벙한 느낌이랄까...밀실살인의 트릭은 어찌보면 지극히 간단할지 모르지만 그 동기만은 그리 간단하게 풀지 못할 것이다. 서서히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같은 아시아 문화권이지만 한국, 일본과는 전혀 다른 정서를 통해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그 충격은 이내 신선함으로 변화한다. 학술 미스터리 답게 알면 알수록 더욱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당시의 중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작품은 더욱 재미있게 느껴질 것이다.



유독 십대 소녀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되는데, 대망의 사건의 동기도 그렇고 살짝 백합물의 향기가 어려있는것 같은데...나만 그렇게 느낀건지는 모르겠다..-_-  난해한 학술배틀을 이겨내고 대망의 결말을 납득한다면 신박할 것이요, 납득하지 못한다면 지루한 고서와 다름없을 것이다. (도 아니면 모다.) 작가가 던지는 도전장에 기꺼이 응할 지적이며 도전정신 가득한 용자들이여...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중국식 고전트릭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드아!~ 



혹독한 겨울이 가고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 피어나는 새싹처럼 오릉규와 관노신은 저주받은 운몽택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 한발을 내딛는다. 그렇다...오릉규 시리즈로서 2편을 예고한다는 말이다. 유랑무녀 규와 노신은 또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될지...어떤 의식의 흐름에 따른 풀이를 보여줄지...얼마나 깊이있고 방대한 지적유희를 준비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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